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7 조회수1,158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7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Let the one among you who is without sin
be the first to throw a stone at her."
(Jn.8,8)
 
 
제1독서 다니 13,41ㄹ-62
복음 요한 8,1-11
 

며칠 전에 물건을 구입하고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집에 와보니 거스름돈이 없는 것입니다. 10만 원 권 수표를 내고 받은 거스름돈이라 꽤 많은 액수였지요. 물건을 구입했던 가게를 찾아가면서 길바닥에 떨어졌는지 살펴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포기가 쉽지 않네요. ‘잃어버린 것을 어떻게? 그냥 잊어버리자.’라고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을수록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집착만 커집니다.

그런데 외출을 위해 걸쳐 입은 겉옷 주머니에서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나왔습니다. 뜻밖의 횡재지요. 잃어버린 거스름돈보다도 더 많은 액수입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거스름돈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머니 안의 돈은 원래 내 것이고, 잃어버린 돈도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집착이란 항상 부재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이라는 물질적인 가치 안에서만 집착이 생길까요? 아닙니다. 명예의 상실, 사람과의 이별을 통해서도 생기는 것이 바로 집착입니다. 특히 집착에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여유가 없어지게 되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이 집착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을 찾아온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어떻게 할지를 묻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여자를 돌로 쳐라’라고 하면, ‘죄를 용서하러 왔다더니, 무슨 소리요?’라고 말할 것이고, 만약 그가 ‘여자를 보내 주어라.’라고 하면, ‘당신은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소?’하고 말할 예정이었습니다.

사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고발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간음한 여인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공적으로 인정받은 종교 지도자인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함이었지요. 자신을 향한 존경과 사랑이 예수님께 빼앗겼다는 생각에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집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응답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을 보지도 않고 땅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그들의 폭력에 똑같이 맞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그리고 몸을 굽히는 겸손함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자기 자신부터 의로움을 실천할 것을 요구하는 이 명령을 듣자, 그들은 예수님께서 바라보고 계시지도 않는데도 다들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로소 자신의 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아무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며, 여인을 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용서를 받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왜 집착에 매달려서 다른 이들을 단죄하며 살려고 할까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용서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보다 넓은 곳으로 불러내는 그 무엇입니다(릴케).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깨끗한 손톱을 가지려면?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깨끗한 손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학생이 답했지요.

“손톱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고 그냥 빈둥빈둥 놀게 하면 됩니다.”

또 다른 학생이 답합니다.

“하루 한 번 매니큐어로 관리하며 왕비처럼 모시면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틀렸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깨끗한 손톱을 갖고 싶으면 손톱에게 일을 시켜야 합니다.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면 손톱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설거지를 해도 손톱은 저절로 깨끗해집니다.”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면서 정말로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머리를 감을 때, 설거지를 하고 난 뒤에 깨끗해진 손톱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손톱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위한 일이 아니지요. 머리카락을 위하고 그릇을 위해서 손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이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으로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