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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참 죄인만이 죄가 없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7 조회수1,162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사순 제5주간 월요일


<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복음: 요한 8,1-11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6), 제노바 롯소궁전


     < 참 죄인만이 죄가 없다 >

          

이탈리아 나폴리의 부왕으로 유명했던 오수나 총독이 한때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항구 밖에는 죄수들이 노를 젓는 배가 있어서, 총독은 죄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경위로 이처럼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죄수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결같이 누명을 섰다느니 함께 죄를 지은 자가 자기에게 죄를 다 뒤집어 씌웠다느니, 판사가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했다고 하는 등, 모두들 자기는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끌려 들어왔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습니다. 부왕은 이상하여 너는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이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말 제가 범한 죄 때문에 이 곳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될 몸입니다. 총독님, 저는 돈이 탐나서 남의 지갑을 훔쳤습니다. 그 대가를 지금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총독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죄수의 잔등을 치며 이 밉살스러운 놈 같으니. 지금 내가 듣자 하니 이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죄한 사람들인데 너 한 놈만이 죄인이라니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얀 놈. 이런 자를 무죄한 자들과 함께 둔다면 무죄한 자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를 당장 밖으로 내보내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죄가 있다고 고백한 사람은 살게 되었고, 죄가 없다고 주장한 이들은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 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인들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병자가 아니라면 의사가 필요 없듯이, 죄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구원자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더 어울리셨습니다. 그러나 본인들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며 남을 판단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역시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판단하지 않는 법도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내 자신의 죄를 성찰하면 남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남에게 돌을 던지는 이유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수산나가 나오는 복음에서도 노인 두 명이 함께 수산나를 모함했기 때문에 수산나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죄인은 수산나에게 돌을 던지려던 두 노인이었습니다. 이 때 다니엘이 나서서 수산나의 누명을 벗겨줍니다. 머리를 써서 그들의 죄를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장면도 똑같은 장면입니다. 실제로는 돌을 던지려던 이들이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죄가 없다면 돌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돌은 던지지 못합니다. 그들의 죄를 온 세상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유일한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아무리 완벽하게 살고 많은 공부를 하더라도 남을 판단하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구원받는데, 가장 좋은 길은 나의 죄를 깊이 인식하여 다른 이들을 크게 보여서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죄를 깊이 반성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배신하여 죄를 지었을 때를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난 전날 베드로에게, “네가 새벽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십니다. 베드로는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님이 잡히자 베드로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거짓말로 일관합니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오.”

그러자 닭이 두 번 울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베드로 성당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그 지붕 위에는 금색의 닭 모양이 달려 있습니다. 닭은 끊임없이 베드로의 배신을 되새겼고, 베드로는 매일 아침마다 자신의 배반을 되새기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말년의 베드로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홈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로 베드로를 교회 수장으로 뽑으신 것입니다. 자신만큼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자비로운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용력입니다. 예수님도 판단하시지 않고 그 여자를 보내주십니다.

교만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되느니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간음한 여인이 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심판받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큰 죄를 지은 상태에서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도 만약 오늘의 일을 잊고 남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다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죄를 계속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베드로처럼 규칙적으로 나의 죄와 나의 보잘 것 없음을 되새길 수만 있다면 남을 판단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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