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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0 조회수560 추천수10 반대(0)

한국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보다는 서열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자유로운 토론과 대화보다는 서열과 직책, 나이와 신분에 의해서 의사를 결정하곤 합니다. 이것은 長幼有序와 같은 동양적인 사고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직과 서열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집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군대, 조폭, 검찰과 같은 곳이 그렇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교, 사제, 평신도의 구별이 있고, 직책과 신분에 따라서 의사가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다툼이 있을 때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이도 젊은 놈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나이가 무슨 벼슬입니까? 나이를 드셨으면 나이 값을 하십시오. 내가 예전에 너의 아버지와 함께 지냈던 사람이다.’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그 일이 원칙과 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공정하고, 올바른 것인지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원칙과 법은 따지지 않고 감정에 따라 움직이곤 합니다. 그래서 서열과 직책으로 일의 시비를 따지려고 합니다.


시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천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사오니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이옵니다.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이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열과 직책, 신분과 나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서열, 신분, 직책, 나이라는 틀에 맞추어서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서열이 높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대사제인 가야파와 안나스와 같은 존경을 받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나 사두가이파와 같은 신분이 아니었습니다. 시골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대화를 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다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유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것에서는 찾을 수 없는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분의 생각과 사고는 온 우주의 질서를 바꿀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이고 창의적이었습니다.


어제는 예비 신학생 담임 부제님들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곧 사제가 될 부제님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제 생활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사제가 자유로울 때 신자들은 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마음껏 그 꿈을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1년이나 2년은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살 수 있지만 사제 생활은 평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쁘고 자유롭게 살아야 합니다.”


사제가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신앙인들이 기쁘게 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성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2가지의 이야기지만 주제는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계명을 지키면 후손들을 번성하게하고,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늘어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많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께 돌을 던졌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입니다. 실제의 삶에서 우리는 언제나 두 갈래 길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르는지, 아니면 나의 생각과 나의 목적을 먼저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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