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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0 조회수896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10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Amen, amen, I say to you,
whoever keeps my word
will never see death."
(Jn.8,51)
 
 
제1독서 창세 17,3-9
복음 요한 8,51-59
 

저는 주로 끝기도를 하고나서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걷다보면 저절로 운동도 되고, 묵주기도 20단을 바치는데 그리 힘들지가 않지요. 그런데 요즘 제가 걷는 길에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벚꽃이 만개를 해서 밤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젊은 연인들도 많고, 가족이 나와서 사진을 찍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지요.

어제도 많은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면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오던 젊은 연인 중에 한 명이 저를 보더니만 “신부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두운 밤 시간에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틈 사이에서 저를 알아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신부님”이라고 크게 부릅니다.

며칠 전의 일도 떠올려 집니다. 그때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동네를 돌아다니며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맞은편에서 제가 아는 자매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가 뭐해서 제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지요. 그런데 이 자매님의 표정이 ‘누구지? 왜 나한테 인사를 하지?’라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저, 조명연 신부에요.”라고 하자,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신부님! 사복 입고 계시니까 못 알아봤어요. 웬 젊은 아저씨가 제게 관심이 있어서 인사를 하나 했죠. 호호~~”

누구는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인데도 알아보고, 누구는 먼저 인사를 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눈썰미가 좋아서 그렇겠지요. 그런데 이 눈썰미도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만약 눈썰미가 없다면 대신 깊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애쓰십니다. 그런데 직접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으십니다. 또한 직접 당신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의 이웃을 통해 당신께서 함께 하시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웃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로 생각하면서 사랑보다는 미움으로 대하고, 이해하기보다는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유다인들을 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나 예언자들보다 예수님을 훨씬 못한 존재를 생각하면서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주어도 그러한 부정적인 마음으로 인해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눈썰미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우리도 똑같은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떠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작은 생각만을 내세워 판단하고 단죄하려 할 때,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썰미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의 눈썰미를 키워봅시다. 만약 도저히 키울 수 없다면 내 마음이라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주님을 알아볼 수 있도록…….

이른바 사랑을 경험하려면 당신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독특함과 아름다움에 민감해야 합니다(앤소니 드 멜로).

 
'A. P. 로셴코, 아브라함이 이삭악을 바침'. 그의 믿음을 봅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장차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대통령, 과학자, 의사, 판사, 장군, 경찰관 등등 참으로 다양한 직업군이 나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를 자신의 꿈으로 생각했지요. 저 역시 초등학교 다닐 때, 장래 희망을 물으면 항상 ‘신부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신부님’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 꿈이 완성된 것인가요? 예전에는 목표가 꿈인 줄 알았지요. 그래서 신부가 되면 꿈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꿈은 목표 너머에 있는 것이지요. 목표를 너머서 있는 어떤 이상이 바로 진정한 내 꿈인 것입니다.

요즘 보면 목표만 있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겠다.’라고 말하지만, 목표 너머에 있는 비전이 없는, 그저 돈 많이 벌고 사람들의 인기만을 얻고자 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게 되는지요. 오로지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 꿈이라면 그 삶은 얼마나 초라한 삶입니까?

목표 너머에 있는 진정한 ‘꿈’을 키워야 합니다.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에 맞게 움직이는 진정한 하느님 나라를 만들 것인지를 꿈꾸는 것. 이 꿈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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