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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0 조회수1,258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9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If you remain in my word,
you will truly be my disciples,
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Jn.8,31-32)
 
 
제1독서 다니 3,14-20.91-92.95
복음 요한 8,31-42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은 베스트셀러로 장안에 큰 화제입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무척 재미있으며, 또한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매우 흥미 있게 잘 보고 있지요. 그러다가 이 책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서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책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베스트셀러이니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것은 제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베스트셀러 제조기라고도 불리는 이 책의 저자를 모르는 사람도 꽤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만 제 주변에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구입하고 읽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겠지만, 모든 이들이 구입하고 읽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착각했던 것입니다. 즉, 베스트셀러라는 호칭 때문에 그냥 단순하게 ‘많은 사람’을 저는 ‘모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책을 구입하는 인터넷 서점에 가보니 베스트셀러라는 제가 보고 있는 책의 월 판매량이 만 권이 되지 않더군요. 우리나라 전체 국민 중에서 만 명도 보지 않은 것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에는 만 명이라는 숫자가 큰 숫자지만, 전체 국민 안에서 만 명이라는 숫자는 아주 적을 수밖에 없지요. 따라서 제 주변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이 전혀 없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입니다.

쉽게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쩌면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결론짓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조금 더 생각하지 않고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기준만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죄의 굴레에서 쉽사리 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결론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 내 기준이 주님의 뜻보다도 더 위에 있기 때문에 절대로 주님의 뜻을 온전하게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주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죄 안에 머무르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면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냥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아주 나쁜 우리의 습관들에게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말씀과 그 뜻을 온전히 따를 수 있으며, 진리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만은 타인이 나를 사랑하는 데 장벽이 되는 반면, 편견은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데 장벽이 된다(심영섭).

 
책 '나무를 심은 사람' 예전에 감명깊게 본 영화가 생각나서 구입했습니다.

 

 
내가 낮추어야 할 것.

자신을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다는 말을 아주 심각하게 하시는 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전자 우편을 해킹 당했으며, 증거는 없지만 도청도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무서워서 살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회적으로 유명인사도 아닌 분, 아무런 일도 없이 그냥 집에서 실업자로 지내는 형제님을 왜 누군가가 감시할까요?

또 어떤 분은 자기를 누군가가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 사랑이 너무나 뜨거워서 도저히 거절할 수 없다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십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를 사랑한다는 그 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그 사람이 스스로 착각하고 있어서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십니다.

소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또 스스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믿는 이유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증거가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외침으로써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괜찮은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을 때, 정말로 이루어질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하게 됩니다. 괜찮은 사람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한 삶, 즉 사랑의 실천을 하면서 살아가다보면, 다른 사람들이 언젠가는 직접 인정해 줍니다. 굳이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삶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삶이 결국 자기를 높이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높여주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사는 모범을 보여주심을 기억하면서 내가 낮추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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