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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3 조회수1,293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제1독서 이사 50,4-7
제2독서 필리 2,6-11
복음 마태 27,11-54
 

언젠가 제게 세례를 받은 형제님께서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저 세례 받은 것 취소하렵니다. 무효로 해주세요.”

세례성사는 우리에게 주님의 인호가 새겨지는 성사이기에 취소할 수도 또 무효로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취소해달라니 어떻게 당황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제가 사제로 살아온 시간이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인데, 처음으로 겪게 된 일이기에 더욱 더 놀랍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이 형제님이 다른 종교로 개종하기 위해서 그런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간단히 말해서 ‘실망’했기 때문이더군요. 무엇보다 자기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하느님께 실망을 했고, 교우라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또 실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망이 쌓이다보니 받은 세례를 취소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세례를 취소해달라고 했던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이 형제님처럼 실망을 하는 사람들은 꽤 되는 것 같습니다. 내 뜻을 들어주지 않는 하느님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 같은 하느님께 실망을 얼마나 많이 느낍니까? 또한 성직자와 수도자의 모습에 실망했다는 말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성당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라는 실망을 표현하시는 분들도 많이 접합니다. 이렇게 실망하시는 분들은 결국 냉담으로 이어지더군요. 실망이 쌓이고 쌓여서 도저히 성당에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망을 해결하는 방법이 과연 이렇게 피하고 도망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실망을 준 사람을 미워하고 단죄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을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요. 이렇게 입성하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려나무를 들고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면서 환호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뜨거운 환호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말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실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하는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 줄 힘 있는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실망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렇게 많은 표징을 보여주셨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실망의 결과로 예수님을 제거하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실망의 결과로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더 큰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실망했기에 미워하고 단죄하는 모습이 아닌, 실망했음에도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신 주님의 모습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이지요.

실망했기에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실망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때에 비로소 주님을 온전히 닮을 수 있습니다.

베푸는 행동에 담긴 배려는 사랑을 만들어 낸다(노자).

 
예수님을 환호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층간 소음 해결법

신영복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아파트 층간 소음 해결법을 제안했습니다.

“위층에서 아이가 쿵쿵 뛰는 소리가 들리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주면서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물어보십시오.”

과연 이렇게 하면 층간 소음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해결이 된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위층의 아이를 알게 되면 될수록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뛰는 소리가 덜 시끄럽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생긴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생겼기에, 소음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랑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보편적인 상식을 내세우고 법적인 이유를 내세워서, 통제하고 단죄하려고만 합니다. 그 결과 서로의 마음 안에 불평불만을 그리고 갈등과 다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실망한 나를 상대방이 이해해주고 바뀌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싸 안아줄 수 있는 ‘나’로 만들 때 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층간 소음 해결법’. 바로 내 안에 그 해결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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