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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7 조회수1,434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17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Master,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
If I, therefore, the master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I have given you a model to follow,
(Jn.13,6,14)
 
 
제1독서 탈출 12,1-8.11-14
제2독서 1코린 11,23-26
복음 요한 13,1-15
 

먼저 진도 해상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주님 곁으로 간 고인들과 이 사고로 큰 아픔 속에 계실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젊은 학생들의 피해가 크다는 말에 더욱 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무튼 제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오늘의 묵상 글을 시작합니다.

주님 만찬 성 목요일인 오늘이 되면 떠오르는 하루가 있습니다. 바로 신학교에 처음 들어간 첫 해에 세족례를 받은 기억입니다. 성주간 실습을 위해 성삼일을 본당에서 지냈었지요. 그런데 주님 만찬 미사의 세족례 예식 때, 본당신부님께서는 복사를 서고 있었던 신학생들에게 갑자기 세족례를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깜짝 놀랐고 또 부끄럽고 죄송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우선 이제 겨우 신학교에 들어갔기에 너무나 어린 제가 감히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발 닦임 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황송하기도 했지만, 발이 지저분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생겼지요. 아무튼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발을 닦이면서 부끄럽고, 죄송하고, 자격도 없는 내가 과연 발 닦임을 당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만 계속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제 본당신부님께서는 왜 저를 비롯한 본당신학생의 발을 닦아주셨을까요? 우리의 발이 지저분해서 씻어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본당신부님께서 신학생의 발을 씻어주기 위해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지요.

아마 이러한 감정을 이천년 전에 예수님으로부터 발 닦였던 제자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최후만찬이 이루어질 때,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쓰다가 이제는 ‘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 주님께서 자신들의 발을 씻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당시에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은 주인이 그리고 스승이 아니라, 종이었지요. 종만이 주인의 발을 씻습니다. 따라서 발 씻김을 당하는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베드로가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당신처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교만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서 겸손의 옷을 입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대접받고 싶고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것이 어쩌면 우리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본성에 충실하기 보다는 주님의 뜻에 충실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종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겸손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다시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겸손의 모습을 살고 있었을까요?

인간관계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내 반응밖에 없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바꾸고 싶다면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대하는 방식을 바꿔라(마이클 니콜스).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예수님.

 

아름다운 양보(김태겸, ‘좋은생각’ 중에서)

아래는 어떤 잡지에서 보게 된 글입니다. 이렇게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신경 쓰는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중심이 아니라 내 이웃을 두는 삶을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웃 사랑의 삶을 지향하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가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었다. 연일 이어지는 강행군에 보름쯤 되던 날 왼쪽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설상가상으로 정강이까지 부었다. 응급 처치를 위해 숙소를 찾아야 했다. 안내 책자를 펼쳤다. 마을에는 숙소가 하나밖에 없었는데 수용 인원이 40명에 불과했다.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기에 마감되면 그다음 마을까지 걸어가야 했다.

숙소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안간힘을 써 속도를 높일 때였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차 한 잔을 나눠 마신 미국인 모녀가 나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들도 먼 길을 걸어와 지쳐 보였기에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가까스로 마을에 도착해 숙소를 찾았다. 다행히 침대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점심시간이 되어 아담한 노천 식당에 자리를 잡으려는데 어제 그 모녀가 보였다. 우리는 식사를 함께하며 그동안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 나눴는데 딸이 어제 그 마을 숙소에서 묵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아주 운이 좋았다고 답했다. 한데 이상했다. 숙소에서 그들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딸의 대답을 듣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어제 그 숙소에 도착했을 때 빈 침대가 두 개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침대를 차지하면 당신이 잘 데가 없을 것 같아 다음 마을까지 걸어갔어요.”

눈물이 필 돌았다. 두 사람도 무척 지쳤을 텐데 나를 위해 밤길을 계속 걸었다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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