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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복음 묵상(두 발을 모두)
작성자오승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8 조회수940 추천수0 반대(0) 신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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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들어갔을까요? 무덤이라 꺼림찍해서? 부활을 믿을 정도로 확신하지 않아서? 숨이 차서?

먼저 다다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활의 확신은 먼저 들어간 사람부터 시작합니다. 달리 말하면, 머리로 깨닫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깨달아야만 부활의 놀라움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먼저 사랑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깊이 사랑한 사람이 정말로 사랑한 것이지요.

 

우리는 종종 이렇게 '한 발 빼고' 사태를 지켜 봅니다. 신중한 것은 실수를 하지 않아서 좋지만, 무엇인가 변화를 이루려면 한 발만 가지고는 턱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두 발을 다 넣고 몸을 던져도 될똥말똥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나 현실적인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른바 '옵션', 안 하자니 아쉽고, 하자니 투자가 필요한 계륵 같은 것. 우리는 복음의 가치를 종종 이렇게 받아들이고는 합니다. 복음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저 남에게 일등을 내주고, 나는 뒤따라가는 익명성에 파묻힙니다. '다른 제자'도 자신의 이름을 숨깁니다. 이 묵상 글에서도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다고 씁니다. 왠지 비겁합니다.

 

나 자신을 하느님 앞에 온전히 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숨지 말고 드러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 무리 중의 하나로서 존재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나는 단독자로서 존재하는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예언자들처럼, 그래야 하느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올해 부활의 의미는 두 발을 모두 들여 놓는 의지였으면 좋겠습니다.

 

- 퍼시아저씨(201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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