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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슬픈 부활절에...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19 조회수1,135 추천수16 반대(3)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슬픈 부활절에...

 

차츰 드러나고 있는 세월호 대참사에 얽힌 소식들을 접하며 치미는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부끄러운 일이 발생했는지, 역사와 후손들 앞에 길이 남을 부끄러움입니다. 대형 참사 후에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인재, 초기대응의 미흡, 얄팍한 상술, 무책임, 안이한 대처, 애꿎은 희생자들...

 

금쪽같은 자녀들, 삶의 희망이요 보루이던 자녀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황당함과 비통함에 울부짖는 부모님들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잊습니다.

 

마치도 예레미아 예언서의 한 장면 같습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예레미아 3115) 거짓말 같은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데 아직도 자녀들의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님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생길 수 있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늘 먼저 드는 생각이 혹시라도 이게 꿈이었으면, 혹시라도 시계바늘을 뒤로 되돌렸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 교회가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내가 만일 지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큰 슬픔을 겪고 있다고 할 때 가장 얄미운 유형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 이런 찢어지는 가슴은 조금도 안중에 없는 사람이겠지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평소처럼 희희낙락하며 즐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대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 이 큰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내 마음을 헤아려주고 나와 함께 눈물 흘려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따뜻한 연민의 마음을 지닌 사람일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큰 슬픔에 다양한 방법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마치 내 일처럼 만사 제쳐놓고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 활동의 최일선에 서서 움직였습니다. 피해자들의 구조 활동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피해 당사자들과 한 마음이 되기 위해 미리 계획해놓았던 스케줄들을 취소하고 있습니다.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기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큰 슬픔 중에 있는 가족들에게 분명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변방’, ‘변두리’, ‘경계란 단어입니다. 이 시대 사목자들은 이 세상의 가장 변두리로 나아가야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는 그 변방, 세상의 끝은 가장 고통스런 삶의 현장, 이 세상에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곳, 가장 우선적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한국 교회와 사목자들이 나아가야 할 변방,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요?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세월호 참사 현장입니다. 생때같은 자식들 잃고 혼절한 부모들이 자리한 곳입니다. 쓸쓸한 희생자들의 영안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희생된 아이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이들이만 모두 우리 아이들입니다. 영안실을 찾아가 정성껏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큰 슬픔에 잠겨있는 유족들, 아직도 자녀들 생사를 확인 못해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부모들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드리는 일입니다. 각 본당이나 수도회 차원에서 기도운동을 시작하는 일입니다.

 

점점 희박해져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습니다. 간절히 함께 기도해봐야겠습니다.

 

다시 돌아온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다른 해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드러내놓고 부활 축하 인사를 드리기도 민망합니다. 수많은 우리 어린 영혼들이 희생된 대형 참사 앞에, 전 국민적인 비극 앞에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이번 부활절 다른 무엇에 앞서 영성적 회개, 공동체적 회개, 범국민적 회개의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안전 불감증으로부터의 회개, 적당주의로부터의 회개, 물질만능주의로부터의 회개, 극단적 이기주의로부터의 회개...

 

예수님 부활절 때마다 드는 생각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인류를 위한 엄청난 선물인 예수님 부활, 너무나도 감동적인 주님의 부활이건만 별 감흥 없는 부활, 별 의미 없는 부활, 나와는 거리가 먼 부활은 웬일입니까?

 

부활의 개별화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부활에 대한 개인 체험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내 안의 변두리, 내 안의 변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한계, 내 비참함, 내 죄, 내 적나라한 현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포장들을 모두 벗겨내야 합니다. 내 영혼에 덕지덕지 덧칠해져있는 거짓과 위선, 교만과 아집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 내 부끄러운 알몸, 나의 정확한 현주소를 파악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거짓 자아에 완전히 죽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어제의 나, 그릇된 나, 우상숭배의 나에서 완전히 죽을 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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