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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원준 박사님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18강 치유하는 피의 신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0 조회수1,603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원준 박사님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 18강 치유하는 피의 신

 

 이제부터 알아볼 것은 ‘피’다. 구약성경의 피.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가 고대 근동 종교

의 신화에서 어떻게 사용되었고, 이스라엘인과 고대 근동인들의 종교심으로는 어떻게

느꼈는지 알아보자.

 

피(血)
히브리어로 피는 ‘담’이다. ‘담’은 고대 근동의 다양한 언어에서 공통적인 말이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제국의 공용어인 아카드어로 피는 ‘다무’다.

아람어와 아랍어로도 피를 ‘담’이라 한다. 게다가 이집트 남쪽 멀리에 자리 잡은

에티오피아인들도 피를 ‘담’이라 말했다.

 

이렇듯 고대 셈어의 공통적인 낱말이라서 고대 근동 사람들은 이 낱말만큼은 통역

없이도 서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낱말에 스며있는 종교적 심성도 자연

스레 깊이 공유했을 것이다. 담의 파생어로서, 아카드어로 ‘아담무’가 있다. 피가 말라붙

었을 때의 검붉은 색을 가리키는 말로, ‘담’에 접두 모음 ‘아’를 붙여 만든 말이다. 곧,

‘피의 색’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아카드어 단어에 해당하는 페니키아어는 ‘아돔’(또는 ‘아담’)으로 ‘피의 색’이

아닌, ‘피’라는 뜻으로 쓰였다. 가나안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셈어 가운데에서도 지역

과 역사에 따라 파생어의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페니키아인과 가나안인과 히브리인은 언어적으로 가깝다. 히브리어로 ‘에돔’은 이웃

민족 에돔족의 이름인데, ‘붉다’라는 뜻이다. 원래는 이 지역의 땅이 붉은 색을 띠어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에돔과 이스라엘은 애증의 관계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과 에돔의

조상 에사우는 형제이므로 이 두 민족은 형제지간이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에돔보다는 조금 우위를

차지한 것 같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상황이 뒤바뀌었다. 헬레니즘 시대가 되자 에돔인을

그리스어로 ‘이두매아’라고 불렀다. 이들은 로마 시대에 번성하여 드디어 유다 땅까지

다스리게 되었다. 전세가 역전되었다.

 

하지만 해묵은 감정 때문인지, 이들은 형제를 곱게 통치하지는 않았다. 유다인들도

‘이두매아’의 통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이 이두매아의 임금

헤로데의 통치를 늘 탐탁치 않게 여긴 배경에는 이런 뿌리 깊은 ‘민족 감정’이 있다.

 

치유하는 피의 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펼쳐진 고대 수메르 문명의 몇몇 도시국가들, 곧 우르, 라르사이신,

기르수에서 믿던 신들 가운데, 아카드어로 ‘다무’라는 신이 있다. 바로 ‘피의 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바빌론 시대에도 섬기던 신이다. 이 피의 신은 첫째, 악령을 내쫓는

apotropaic ‘벽사’.邪또는 ‘축사’逐邪의 능력, 둘째, “찢긴 힘줄을 붙여 주는” 능력이 있었다.

 

고대 근동인은 질병이 사악한 귀신을 통해 침입한다고 믿었으므로, 이 두 능력은 사실상

하나다. 한마디로 ‘치유하는 신’이다. 그러므로 다무가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곧 생명

력의 신이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빈 다무’라는 인명도 볼 수 있다. 주로 시리아의 에블라,

북메소포타미아의 마리와 에마르 등에서 출토된 문헌에 자주 나온다.

 

이 이름의 뜻인즉, ‘피의 아들’이다. 곧 피의 신의 아들 이라는 의미다. 이 외에도 다무

신이 언급된 이름이 자주 나오는데, 왕가의 고결한 혈통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다. 다무는 이렇게 이롭고 좋은 신이다. 그래서인지 담이라는 어근과 이 신의 이름을

사용한 인명이 고대 근동 세계에 널리 사용되었다. 또한 피에 대한 종교적 심성이 고대

근동의 다양한 신화에서 확인된다.  

 

구약성경의 피에 대한 심성 - 피는 생명력 그 자체 
 이렇게 고대 근동에서 꽤 널리 섬겨진 신이건만, 구약성경에서 피를 신으로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구약성경에 약 360번 담이 등장하지만, ‘피의 신’이 아닌, 사람이나 짐승의

혈액을 의미한다. 하지만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피에 대한 고대 근동 종교의 심성은

고스란히 공유했다.

 

구약성경에서도 피는 신령한 생명력을 상징했다. 그래서 인간은 피를 먹으면 안 된다.

피는 신성한 것이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신명기 12장에서는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세 번이나 거듭하여 강조된다. 그 이유인즉, 피는 생명이고 생명을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피는 치유하는 생명력 그 자체다.

 

인간이 손을 대지 말아야 할 생명의 기氣또는 에너지라서 바닥에 쏟아 땅에 되돌려

보내야 한다. 그러면 그 생명력을 받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 다시 그 풀을 먹은 짐승이

자라나서 이 땅에 생명력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무척 생태적인 이 계명의 배경에는

고대 유목민의 경험과 지혜가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관련된 음식 관련 율법은 오늘날 유다인들에게도 유효하다. 이 율법에 따르면

짐승을 잡아 목을 딴 다음에 거꾸로 매달아 피를 바닥에 충분히 쏟아 버린 고기는

‘정결한’ 고기요, 피를 쏟지 않은 고기는 ‘불결한’ 고기다. 이 밖에도 음식과 관련된

까다로운 계명이 구약성경에 있는데, 하느님 백성은 모든 규정을 잘 지켜 생산된

‘정결한’ 식품만 먹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유다인들은 이렇게 계명을 잘 지켜 생산된 식품을 ‘코셰르’(깨끗한)라고

불러, 따로 유통시키고 보통 식품보다 비싼 값을 치른다. 물론 모든 유다인이 늘 정결한

음식만을 먹고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코셰르 음식 산업은 현대 세계의 유다인 문화와

경제의 일부를 이룬다.

 

 구약성경에서 피는 생명력이다. 이런 종교심을 이해할 때 아래 창세기의 말씀도 쉽게

다가온다. 피는 단순한 붉은 액체가 아니라 거룩함을 지닌 생명력이니 남의 피를 흘린

자는 자신의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집안의 한 사람이 살해되면, 그 살인자를

쫓아가 복수하는 사람을 ‘피의 보복자’(민수 35,19; 신명 19,6.12 등)로 불렀던 것이다

(물론, 도피 성읍에 들어가면 이 피의 보복자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다)

 

사악함을 물리치는 피
 또한 피는 ‘벽사’.邪또는 ‘축사’逐邪의 능력이 있었다. 잡신이나 악령 등 부정한 것을

쫓았다. 탈출기와 레위기에서 황소와 숫염소의 피를 받아 뿌리는 것은 ‘속죄 예식’의

일부로서, 그들의 부정과 허물 등을 씻으려는 의도다. 숫양의 피를 몸에 바르는 것도

같은 의미다. 피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고 믿은 것이다.

 

피가 악령을 쫓는 능력은 탈출기에서 볼 수 있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위해 파라오에게 청하였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느님은 모세를 시켜 갖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지만 파라오는 결국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은 가장 강력한

표징을 보여 주시는데, 이집트의 맏배를 모조리 치신 것이다.

 

사람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하룻밤에 모두 죽어 나갔다. 이집트에서 초상이 나지

않은 집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일이 히브리인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일까? 주님께서 바로 전날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문설주에 피를 발라

놓으면, ‘파괴자’가 그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할것이다. 피가 죽음의 영을 막기 때문이다.

 

피가 결국 생명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피가 악령을 쫓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피를 바르라고

명령하신 분도, 악령(=파괴자)이 그 피를 알아보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도 하느님

이시다. 곧, 생명을 지켜 주는 피의 역할은 고대 근동의 신화와 똑같지만, 피는 신이

아니다. 생명을 지키는 피의 능력의 근원은 철저히 하느님이다. 구약성경은 피를 탈신화

하고, 야훼 신앙안으로 재신화한 것이다

 

제18강 치유하는 치유하는 피의 신

 

안녕하세요? 한님성서 연구소 주원준 토마스아퀴나스입니다.

성호경 같이 바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은 18회 강의입니다. 저는 이 계속 강의를 통해서 우리 한국 천주교가 선교 3백 년대

에 그리고 신자 5백만 시대를 맞아서 한국에서 더욱더 한국 문화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이제 성경과 교리를 충실히 알면서 동시에 사회와 문화와 지식을 넓히는데 신자

들의 교양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고요. 그러면서 신자 여러분 스스로

가 교양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되겠다 해서 이런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를 들자면, 구약성경을 읽으실 때 구약성경 자체도 열심히 읽으시고, 동시

에 구약성경과 관련된 그런 교양도 같이 이제 넓히신다면, 신앙에도 도움이 되고 여러분

교양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

고대 근동 세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될 교양

으로서 자리 잡으면 좋겠고, 그런 교양을 쌓는 첫째 그룹으로서 여러분들이, 시청자분들

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네 가지 표상을 지금까지 봤습니다. 하늘과, 달과, 바람과, 강이라는

표상을 봤는데요. 고대 근동의 본래의 표상 중에 우리 민족의 고유한 심성과 매우 가까운

것이 있었지요? 하늘 표상은 굉장히 비슷했었고, 반면에 굉장히 먼 것도 있었습니다.

 

달은 원래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고, 또 고대 근동의 자연 환경을 우리가

알아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람이 있었지요? 동풍, 서풍 이런 의미가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고, 아, 참으로 현대인들이 이해하기에 어떤 면에서 힘들다 하는 게 강과

관련된 표상이었습니다. 특히 정의와 심판의 강, 신성 재판하는 굉장히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강에 풍덩 빠뜨리는 이런 것들도 현대인의 감수성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  피(血)

 

자, 그래서 오늘은 다섯 번째 주제로 무엇을 알아볼려고 하느냐 하면요. 피에 대해서

알아볼려고 합니다. 우리 몸에 흐르는 피, 붉은 색 피입니다. 이 피가 고대 근동의

종교의 신화에서는 어떻게 사용되었고, 이스라엘과 구약성경에는 어떻게 어떤 식으로

들어와 있는지 그래서 우리 신앙을 어떻게 살찌웠는지에 대해서 알아 놓고 시작하겠

데요. 우선 ?우리가 처음에 시작할 때 히브리어 하나 알아 놓고 사작하겠는데요. 이거는

굉장히 간단합니다.

 

 

 

히브리어로 피를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이렇게 쓰는데요. 간단합니다. '담'이라고 읽어요.

그런데 그 ㅏ가 장음이예요. 담을 짧게 하지 마시고 살짝 길게 담- 하시면 되거든요.

 

 

 

이 담이 히브리어에서는 '담'이라고 했잖아요. 아카드 제국과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제국

에서 썼던 언어가 공통적으로 아카드어인데요. 고대 아카드어로는 '다무'라고 하는데요.

'우'는 사실 주격 조사예요. 우는 조사니까 떨어뜨리면 똑같이 담이예요. 이게 셈어 공통

적인 낱말이예요. 그리고 아람어, 아랍어, 달라요 아람어 하고 아랍어 하고. 그리고 에티

오피아도 역시 '담'이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넓은 지역이라고 그랬죠? 고대 근동은 굉장히 넓은 지역이었는데 이

넓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이 '피'에 대해서는 똑같은 말을 사용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의 바로 옆나라에서는 우가릿어가 있는데 우가릿어는 모음이 있기는 있는데 다 쓰지를

않아요. 어떤 때는 쓰고, 어떤 때는 쓰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안 쓰거든요. 그러니까

dm만 나왔는데 이 dm을 어떻게 읽을까요? '담'이라고 읽으면 되죠.

 

우가릿어도 셈족의 일부니까 전부 다 '담'이라고 쓰니까 모음을 안 적었어도 이거는 그냥

'담'이다 그렇게 학자들이 '담'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고대 셈어의 공통적인 낱말이라서

아마도 옛날에는 이집트 사람이 아시리아 사람을 만난다든지 하는 일은 많이 없었거든요.

옛날에는 교통 수단도 좋지 않았고, 사람들이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별로 없었어요.

 

큰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나라 일을 하는 사람들, 큰 관리들 아니면 거의 자기 고장을

떠나자 않고 평생을 보냈거든요. 그래서 아마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겠지만 만약에 이야

기를 했었어도 이런 아주 기본적인 단어는 서로 어느 정도 말이 똑같으니까 이해를 했었

을 것입니다. 사실 인종적으로도 비슷하고, 이렇게 언어적으로도 비슷한 사람들이 셈족

이죠. 말이 비슷하면 그 말에 스며 있는 생각과 느낌도 비슷하게 느껴요.

 

우리가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정서를 알고 있죠? 한민족의 정서가 있잖아요?

한민족의 정서는 어떻게 전달 되냐 하면? 우리 피나 DMA를 통해서 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말을 통해서 서로 전달 되거든요. 그래서 한국 아이인데 한국말 거의 잊어

먹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 사람들이 가끔 고향 찾아 오면은 말할 때 어때요?
TV 같은데 보면은? 우리나라 사람이 겉모습만 우리나라 사람이지 속은 많이 드리지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하고 느끼는 게 똑같애요. 피부색은 달라도. 그만큼 언어가 중요하고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을 대할 때 좀 생각해 봐야 될 말이죠. 그런 면에서 그들은 한국 아이죠.

진짜로. 그래서 고대 셈어에서 심성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담'의 파생어를 ?볼려고 하는데요. 아카드어로 '아담무'라는 단어가 있어요. '담'에서

파생한 단어인데 이게 색깔을 가리키는 거예요. 피가 가리키는 색깔이 뭘까요?

빨간색이예요.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아담무'  그러면 붉은색인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검붉은 색'이예요. 왜 그러냐 하면은 피가 오래 지나면 말라 붙어가지고 검붉은 색이

되죠. 그 검붉은 색을 말하는 거에요.

 

'담'에 그냥 앞에 ㅏ를 하나 붙인 거죠. 아담, 아돔인데 이렇게 부르면 붉은색이라는

뜻이 돼요. 이거는 '아담'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최초의 인간 '아담' 하고 다른 그냥

발음만 비슷한 거예요. 그 아담은 아니예요. 그거는 흙에서 나왔다 해서 아담이고,

여기서는 그냥 발음만 똑같이 아돔, 아담- 이라고 해요. 이렇게 아돔, 아담이라는 말로

붉은 색을 가리켰던 것은 페리키아에서도 그랬고, 가나안에서도 그랬고, 히브리에서도

그랬어요. 그래서 아돔, 그러면은 붉은색이예요.

 

페니키아인, 가나안인, 히브리인들은 언어적으로 더 가까워요. 셈어 안에서도 더 가까워요.

그래서 에돔족 있죠? 에돔족이 그 붉은색에서 나온 말이예요. 원래는 왜  에돔족의 에돔이

란 말이 붉다는 말이 쓰였을까 하는데 학자들이 보기에는 그쪽 땅이 붉으죽죽 하대요. 약간.

그래서 땅이 붉은 땅에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아마 검붉은 땅이죠. 붉으죽죽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다 해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창세기는 그거와 달리 에돔족이 에돔족인 이유를

따로 설명을 합니다.

 

이 교재 146쪽인데요. 창세기 25장 30절의 말씀입니다.

* 창세 25,30: 에사우가 야곱에게 "허기지구나 저 아돔(붉은 것; 붉은 죽),

  그 아돔(붉은 것, 붉은 죽) 좀 먹게 해 다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 하였다.

 

"그 붉은 것(에돔)을 좀 먹게 해 다오." 그 붉은 것이 에돔이예요. 히브리 말로.

저 에돔을 먹게 좀  해 다오. 개신교 성경은 (붉은 것) 그러니까 붉은 죽으로 번역을

했어요. 죽이라는 말은 없고 그냥 어떤 붉은 음식을 얘기 했던 거 같은데.

"그리하여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고 하였다." 창세기는 붉은 것, 붉은 것 이렇게 말해서

에돔이 되었다 하는 것이죠.

 

에사우 하고 야곱, 에돔하고 이스라엘은 애증의 관계예요. 형제 관계거든요. 그런데 이

두 민족은 형제간인데 사실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요. 에돔 나오는 김에 제가 잠깐 옆길로

새나가서 에돔과 이스라엘 관계를 말슴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형제 관계인데 사이가 안

좋은 마라, 민족은 이 세상에 굉장히 많아요. 이상하게 가까울수록 사이가 안 좋은 게 좀

있어요. 오히려 먼 나라하고 친하고 가까운 나라 끼리는 조금 티격티격 하고 그러는데

이스라엘과 에돔도 마찬가지였어요.

 

두 나라가 구약성경에 보면 전쟁도 많이 치루고 티격태격도 많이 하고, 물론 협력도 많이

한 적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조금 우위에 선 것 같애요. 자기 형제 에돔

보다는. 그런데 이제 세월이 흘러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새옹지마라고 여러분 아시죠?

이렇게 됐다가 저렇게 됐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렇지요?

 

헬레니즘 시대가 되었어요. 페르시아 제국이 망하고 그리스 사람들이 들어오고, 로마제국

이 들어오는 그 시대가 됐는데 그리스 말로 에돔을 이두매아라고 불렀어요. 이두매아.

그런데 그 사람들이 로마시대 때에는 번성해서 유다 땅을 다스리게 되었죠. 그래서 이두매

아 사람들이 유다를 다스리는. 헤로데죠. 그럴 때 학자들이 보기에 이 사람들이 자기네

하고 형제지만 구약시대 내내 자기를 괴롭혀 온 이스라엘을 곱게 통치하지 않은 거 같애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두매아 사람들의 통치에 반감을 가졌거든요. 왜 반감을 가졌을까

하면은 두 민족이 이런 아주 해묵은 그런 감정이 있었다. 형제간에 사이가 안 좋은.

그래서 이제 예수님 시대에 이두매아 사람들한테 그런 게 있었다 하는 것. 그래서 유다인

들도 당시의 이두매아 사람들의 통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어요.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이 이두매아 사람 헤로데의 통치를 좀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이유

는 좀 이런 배경이 있어요. 여러분, 이제 에돔이 나왔다고 해서 잠시 옆길로 샜는데 이렇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서로 연결해서 읽으면은 훨씬 더 교양도 많아지고 성경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어요.

 

하여튼 이두매아라는 말도 그러면 그 뿌리에는 이 피, 담이 에돔이 되고 이두매야가 되는.

그런 피가 서려 있는 것이죠. 피에 대한 첫 시간이고 해 가지고 제가 여러분들한테 또 곁길

로 하나 더 새서 다른 얘기를 하나 더 해드리려고 하는데요. '담'이라고 하니까 우리 몸에

'담'이 있어요. 담. 한자에도 담이 있지요?

 

 

 

우리 말에 한의학에서 보면 담이 있어요. 痰 이렇게 써요. 불화(火)자가 2개 있는 거로

봐서 아마 화기가 떠 오르는 거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사전을 찾아 봤더니 담은 체액

인데요. 가래담자래요. 그래서 체액 가운데, 우리 몸에 흐르는 물 가운데서 몸의 분비액

이나 맺힌 응결을 가리킨대요. 몸에 응결이 맺혀 있으면 담 걸렸다고 할 때 담이예요.

히브리어 '담'하고 이 '담'하고 발음이 같애요. 그쵸?

 

그러니까  "야, 이거 대단한 거 발견했다. 우리 조상이 옛날에 저 이스라엘에 가가지고."

이렇게 자꾸 연결짓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사실은 사이비 학문에 가까운데

또 그런 걸 하시는 분들이 나오니까 좀 사람들이 혹하곤 하거든요. 그렇게 할 건 아니죠.

 

히브리어 하고 발음이 비슷하고 우리가 연상 작용을 하기 때문에 아, 우리 말에 담은

히브리어 말의 피다. 이렇게 히브리어 단어 외울 때 연상작용 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이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우리 조상의 담이 히브리어 담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

필요는 전혀 없죠. 제가 이렇게 얘기 하니까 "아이 뭐" 하며 다 웃으시는데 사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 많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어떤 말 하나가 저 뭐 고대 근동의 수메르 말 하나 하고 비슷하다고 해

가지고 우리 조상이 뭐 거기에서 온 것이다. 뭐 내지는 우리 조상이 거기까지 진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되게 우수운 생각이거든요. 제가 예를 하나 더 드릴께요.

 

우연히 어떤 말의 음이나 뜻이 비슷하다고 해 가지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의 조상

이 거기에 진출했다면, 반대로 그 사람들이 여기에 있었다고 하는 거는, 언어학에서는 그렇

게 하지를 않아요. 일부 인간의 말이라는 게 어차피 구강 구조로부터 나오는 말이 한정이

되어 있어요. 자음의 숫자, 모음의 숫자가 한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낱말이 형태적으로

발음적으로 비슷하다고 해 가지고 그게 역사적으로 연결이 반드시 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찾아낸 게 '많이'예요.

 

 

 

우리나라 말 '많이'는 많다는 뜻이죠. 많이에 해당하는 영어는 many죠.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런데 many는 우리가 메니라고 읽지만 아마 중세 때나 옛날에는 마니로 읽었을 거예요.

이게. 현대 영어에서는 메니로 읽지만. 혹은 지금도 영어를 쓰는 어떤 다른 나라, 스코틀랜

드나 아니면 미국 어느 지방이나 아니면 호주에 가면 이걸 마니로 읽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 조상이 옛날에 영국에 진출해서 영국이 다 우리 땅이었다. 이렇게 얘기 하면

안 되는 것이죠. 독일어의 여기에 해당되는 단어는 manch거든요. 영어하고 비슷하죠?

독일어는 원래 영어랑 비슷해요. 독일어 만히는요 ㄴ, ㅎ 발음까지 똑같애요. 맨 끝에 ch가

ㅎ 발음하고 비슷하게 나거든요. 와, 독일어는 더 똑같애요. 우리랑.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

은 원래 독일에서 왔어.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해도 안 되는 거죠.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대단하지 않냐? 뭐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우리 조상이

엥글로섹슨도 아니고 게르만족도 아니예요. 섹스피어도 우리 조상이 아니예요. 약간의

피가 섞이지도 않았어요. 이런 생각은 억측이죠. 그리고 이런 식으로 만약에 찾아내면은

별거 별거 다 찾아낼 수 있어요. 정말 많이 나올 수도 있어요. 이렇게 아무리 많이 찾아

내더라도 베토벤도 우리 조상이 아니고, 섹스피어도 우리 조상이 아니고요.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사람들한데 많이 퍼진 이론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이스라엘 열두

부족 중에 단이 있어요. 단 부족이라고. 뭐 베냐민도 있고 뭐도 있고 많이 있잖아요. 그 중

에 단 부족이 있는데 어떤 학자들이 우리나라 조상이 단군이잖아요. ^^*~~ 단군에서 '군'

은 이제 '군'해가지고 쓰는 것이고 앞에 단이 중요하잖아요. "아, 열두 부족 중에 한 부족이

구나. 우리 부족이. 이 한민족이 정말 대단한 부족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데.

 

그것도 역시 '단'이라는 음만 비슷한 것이죠. 옛날의 그 단 부족이 우리 조상이 된 것도

아니고,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 중에 열 부족이 사라진 열 부족이라고 해서 북

왕국 멸망할 때 없어져서 지금 후손들이 남아있지 않고, 그래서 사라진 열 부족이 어디로

갔을까 하는 그런 얘기들이 막 소설도 많고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단군이 어찌 단 하고 똑같다는 걸 어떻게 찾아내 가지고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발음은 비슷하고, 생각은 재미있는데 역사적인 사실이나

아니면 학문적으로 우리가 진지하게 정말 그렇다라고 받아들이기는 좀 힘든 주장이고,

학계에서도 거의 얘기가 한 되는 주장이죠.

 

진지하게 공부하는 분이라면,-  이런 건 재미있죠. 그렇게 끼워 맞추는 건 - 그것보다는

제가 지난 시간 특강에서 말씀드린대로 성경 구절 하나를 진짜 있는 그대로 외우시든가,

한번 직접 보시는 게 훨씬 좋아요. 그걸 갖고 자꾸 이상한 생각하는 것 보다는 차분하게

묵상하고 공부하시는 게 좋습니다.

 

자, 그러면 다시 피로 돌아가서, 피의 신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서

고대 도시국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우르도 있고, 우리가 우르는 달신 할 때 봤었지요?

아르산, 이산, 기르슈 이런 여러 도시들이 있는데 거기에 아까 아카드어로 본 '다무'라는

신을 믿었어요. 그 당시 우르는 달신의 중심지라고 했잖아요. 우르에서는 달신만 믿은 게

아니라 사실은 다른 믿음도 있었어요. 주된 신이 달신이었지요.

 

기본적으로 이 모든 고대 근동의 종교는 다신교라고 여러분들이 이해하셔야 되요. 주된

신이 있어도 다른 신을 믿었던 것도 같이 있었어요. 아브라함이 이끌던 집단은 우리가

달신 할 때 추측을 했었지요? 증거 사실은 없지만 합리적인 추측을 해 보자면, 거기서

75년이나 사셨고, 단체로 움직였고, 또 종들 하고 아들 딸도 같이 움직였으나까, 아마

우르에서 어떤 종교를 믿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을테지요?

 

그러니까 달신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고, 고고학적으로 '우르에서 이 피의 신을 믿었다'

하는 기록이 나오니까 아마 아브라함이 이것도 알고 있었을 수도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아브라함은 그 당시에 많이 배우신 분이었고, 지도자 같은 분이셨기 때문에, 또 거기서 75

년이나 사셨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종교적인 어떤 갈등으로 인해서 나오시지 않았을까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었느니까, 그러니까 아마 이 피의 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의 신과 처음 아마 인연을 맺은 것도 달신처럼 아브라

함일 수 있죠.

 

 

 

이 피의 신이 하는 역활이 무엇이냐 하면요. 벽사(壁師), 축사(逐師) 같은 말이죠.

영어는 apotropain 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게 이제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라를 것이고요.

두 번째 역활은 "찢긴 힘줄을 붙여 주는" 능력이 있었어요. 여러분들 어디 다치잖아요?

칼이나 뭐 날카로운 물건에 베이면 힘줄이 찢어지잖아요?

 

요즘은 우리가 그걸 꼬매 가지고 잘 붙이고 소독도 하고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그걸

몰랐어요. 그러니까 힘줄이 찢기면은 자연적으로 붙도록 놔두는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그 사람들도 무슨 약초를 바르고 뭐 된장 비슷한 거를 바르거나 진흙을 바르거나

했겠지만, 그리고 약간 소독작용이 있었겠지만 잘 몰랐죠.

 

그래서 이 두 능력이 사실은 하나예요. 왜 그러냐 하면, 병이 왜 들어올까? 사람한테.

고대 근동 사람들은 왜 우리가 병에 걸리냐 하면, 사악한 게 들어와서 걸린다. 어찌보면

이거는 과학적인 거 하고 통하는 말인데 왜 그러냐 하면, 결국 세균이 들어와서 병이

걸리는 거니까, 그 사람들은 세균은 몰랐지만 뭔가 사악한 게 우리한테 들어와서 걸린다.

 

그런데 피의 신은 사악한 거를 물리쳐 주는 신이예요. 나쁜 악령이 못 들어오게, 우리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굉장히 좋은 신이죠. 거기다가 내가 다치면은 그 다친 걸 고쳐주는

신이예요. 몸 안에 피가 잘 돌면 병에도 안 걸리고 상처도 빨리 낫고 하니까 피의 신은

그런 역활을 했던 거죠. 되게 좋은 신이었어요. 그래서 피의 신 다무가 하는 일이 뭐냐

하면,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생명력의 신이었어요. 사실 굉장히

좋은 신이었던 거예요. 다무는.

 

* 피의 신 '다무'는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생명력의 신이었다

 

신화에 따르면 다무신의 어머니가 있는데 다무신의 어머니는 니니시나라고 하는데,

니니시나의 별칭이 뭐냐 하면, '검은 머리들의 위대한 의사' 검은 머리는 사람을 뜻하는

수메르 단어예요. 사람을 그냥 사람이라고 안 하고 검은 머리라고 했어요. 짐승은 검은

머리가 없으니까. 우리의 사람도 비슷하죠? '검은 머리 짐승'이라고 하는데. 그 표현은

우리하고 비슷해요.

 

검은 머리의 위대한 의사. 그러니까 다무 신은 엄마 신도 치유하는 신이었어요. 모자신이

다 아주 우리한테 긍정적인 신이었고 아, 이러니 얼마나 사람들한테 인기가 좋았겠어요?

내가 다무 신을 믿으면 내 피도 잘 돌고, 병도 안 걸리고, 병에 걸린다 해도 잘 낫고.

 

그리고 다무신의 엄마도 낫게 해 주는 신이니까 인기가 좋은 신이었죠. 그래서 빈 다무라는

사람 인명이 있는데 오사마 빈 라덴 하듯이, 빈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이고, 다무의 아들

이다. 나는 다무의 아들이요 하는 빈 다무라는 이름이 출토가 되요.

 

아, 왜 다무 신의 아들이라고 자기를 칭했을까? 아, 그만큼 다무가 인기가 좋았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빈 다무는 직역을 하자면 '피의 아들'이예요. '피의 아들' 그 외에도

많이 나오는데 왕가에서 어떤 왕족이 우리 왕가는 다무가 지켜준다. 이런 말도 많이 하고요.

 

다무는 참고로 '돌고래 자리'와 관련이 있었다고 해요. 우가릿의 바알 신화에 보면은 전쟁

여신 아나투가 나오는데 이 아나투가 여자예요. 그런데 고분고분한 여자가 아니예요.

전쟁의 신이예요. 정말 잘 싸워요. 엄청 호전적인데. 바알은 최고신 엘한테 가가지고 조금

쭈볏쭈볏 할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최고신은 크고 자기는 작은 존재니까.

 

그런데 그때 아나투 여신이 나서 가지고 최고신 엘신과 싸워요. 최고신 엘을 위협을 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여성이 그렇게 낮은 존재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때 최고신 엘 하고

나는 싸우겠다. 바알 편에서 최고신 엘과 싸우겠다. 그래서 되게 무서운 얘기를 하는데,

"엘의 흰머리로 피가 흐르게 하리라."

 

엘은 할아버지 신이예요. 늙어서 힘이 없다고 그래요. 그 하얀 머리 위로 붉은 피가 흐르게

하리라. 엘의 생명력을 빼버리겠다 이런 표현이예요. 아, 그래서 피가 몸에서 빠져 나가는

건 생명력이 쇠잔해지는 것이고, 피의 신이 나와 같이 있는 건, 피가 들어오는 거니까 나한

테 좋은 것이고.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했던 거 같애요. 결론적으로 다무는 이롭고 좋은

신이예요. 그래서인지 이름도 많이 나오고, 다무신이 여기 저기 많이 사용되었어요.

 

* 고대 근동에서 '다무'는 이롭고 좋은 신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에서 따온 인명이 널리

  사용되었다

 

자, 우리는 이제 구약성경을 지금부터 볼 거예요. 하지만 다무신이 굉장히 좋은 신이었다.

생명력의 상징이었다는 걸, 그리고 악한 악귀들을, 사악한 기운들을 물리치는 신이었다.

그러니까 고대 근동 사람들은 아까 모든 거의 셈족의 피를 지칭하는 말이 '담'이라는 걸

여러분 아셨잖아요? 그러니까 담에 대한 이런 종교심, 피의 신에 관련된 이런 마음들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한국 사람이 한국말 쓰면 한국인의 어떤 마음을 알듯이, 이 말을 비슷하게 썼으니까

마음을 알 수 있었을 거고. 이 중에 히브리인들도 역시 '담'이라고 했었기 때문에

그 담과 관련된 그런 뉘앙스, 이미지 체계를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 구약성경의 피에 대한 심성

 

자, 그런 것을 전제로 하고 구약성경을 읽어 보시며 구약성경에서 피가 어떤 의미로

사용 되는지 여러분이 알 수 있어요. 지금부터는 구약성경에서 피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말씀드릴께요. 피의 신 다무. 다무는 고대 근동에서 굉장히 널리 알려진  유명한 신이었

는데, 구약성경에서는 단 한번도 신으로는 나오지 않아요.

 

* 피의 신 '다무'는 고대 근동에서 널리 섬겨진 신이었지만 구약성경에서 피를 신으로

  표현한 적은 한번도 없다

 

여러분, 계속 이 시간을 통해서 말씀드리지만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 밖에 없고, 신화

비슷하게 나오는 것도 전부 다 탈신화 하거나, 재신화해서 나오는데 그 과정을 말씀

드릴거예요. 구약성경에 - 사전을 찾아 봤더니 담이 360번이나 나와요. 피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 거죠. 피의 신이 아닌 사람이나 짐승의 혈액의 의미로 거의가 나오죠.

 

그 다음에 하지만 피에 대한 어떤 마음은 우리가 거기서 읽을 수 있어요. 구약성경 안에서

피는 생명력을 상징했어요. 그래서 인간이 피를 먹으면 안 되요. 왜냐하면 생명력을 우리가

먹으면 안 되니까. 생명력은 하느님한테 속한 거니까. 피의 신은 없지만 그 생명력이라는

그 마음은 공유했어요. 피는 신성한 것이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되요. 선지국을 그래서

드시면 안 되는 거예요. ^^*~ 정말이예요. 피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신명기 12장에 보시면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12장에서 세 번이나 얘기하시거든요.

교재 148쪽이예요.

 

* 신명 12,15-24 : 너희가 원하는 대로 어느 성에서든지 짐승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다. ... 그러나 그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물처럼 땅에 쏟아야 한다. ... 영양

  이나 사슴을 먹듯이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피는

  먹어서는 안 된다. 피는 생명이고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물처럼 땅에 쏟아야 한다(레위 3,17; 19.26 등).

 

12장 안에서 계속 반복 돼 가지고 피를 먹지 마라. 피와 고기를 함께 먹지 마라. 피는

치유 하는 생명력 그 자체예요. 인간이 손을 대지 말아야 되는 생명의 기, 생명의 에너지,

그 자체 . 그래서 땅에 쏟아서 땅에 돌려 보내면 아까 다무의 역활이 나무와 풀을 자라게

하는 거라고 그랬죠?

 

다무는 땅에 들어가서 그 피가 거름이 되서 나무와 풀이 자라요. 그 나무와 풀은 그 생명력

을 염소나 말이나 소가 먹고 그걸 먹은 또 다른 짐승, 사람도 그 짐승을 잡아 먹는 거예요.

그럼 그 짐승만 먹고 피는 다시 땅으로 돌려 보내야 되요. 이렇게 순환적인 세계관을 사람

들이 생각했던 거예요. 자연의 순환을.

 

하느님이 주신 이 순환의 구조를 우리가 그대로 잘 지켜야 된다. 요것을 인간이 중간에 딱

싸이클을 끊고 홀라당 다 먹어 버린다 그러면 다시 돌지 않게 되는 것이죠. 생명력을 부여

받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서 다시 그 풀을 먹은 짐승이 자라나서 이 땅에 생명력이 끊임없

이 돌아가야 된다. 이게 무척 생태적인 계명이기도 하고요.

 

이 생태적인 계명의 배후에는 고대 유목민들의 삶의 지혜가 있어요. 그들은 유목하는 땅은

메마르기 때문에 어떤 거름 같은 게 없으니까 피를 돌려 보내려고 했던 거 같애요. 여기서

잠시 유다인들의 유명한, 현대 유다인들도 이거를 지키고 살잖아요? 유다인들은 그래서

짐승을 잡을 때 짐승의 목을 따서 그 피를 바닥에 쏟죠. 지금도 그렇게 먹어요. 바닥에 피

버려야 되요. 거꾸로 매달아서 피를 충분히 쏟아낸 다음에 먹어야 되는 거예요.

 

 

 

이거를 코셰르라고 읽어요. 깨끗하다는 뜻이예요. 그러니까 고기를 잡았는데, 이제 랍비의

율법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짐승을 죽일 때 랍비들이 진짜 제대로 하는 랍비들은 외우는

경이 있어요. "이걸 잘 먹고 우리가 하느님을 잘 믿고 우리가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간단한 기도를 외우고 칼을 검사해요. 칼을 검사해서 이 칼로 한번에 죽이게. 곧 짐승의

고통이 최소한으로 되게. 그래서 찌르는 부위가 있어요. 거기를. 칼의 규격이 다 있어요.

 

너무 짧거나 길거나 하면 한번에 못 죽이니까 한번에 죽여서 목을 따요. 그래서 뒤집어

지고 얼마 이상 세워 놔요. 그러고 난 다음에 랍비가 그걸 해체할 거 아니예요. 가죽

이랑 고기랑 해체할 때 보는 내장의 부위가 있어요. 뭐 간은 어떻고. 그래서 기형을 먹

으면 안 되요. 기형은 우리가 먹어서 안 되는 것. 유전자 조작 같은 거 생각도 못하는

거예요. 하느님이 온전하게 주신 것만 먹고.

 

열어 봤는데 뭐 예를 들어서 위가 두 개예요. 위가 하나 더 있다? 또는 폐가 좀 이상하다.

그러면 그거 먹고 탈이 날 수가 있죠. 그런 거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랍비가 보고

율법에 어느 부위는 어떻게 생겨야 되고, 어느 부위는 어떻게 생겨야 되고 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그걸 다 보고 그 다음에 어느 부위는 먹고 이런 게. 그걸 모두 그 율법 규정을 다

지켜서 고기를 만들면 그 고기는 코셰르 고기예요. 깨끗한 고기. 그걸 안 지키면 그냥

보통 고기예요.

 

지금도 유다인들은 이거를 지킬려고 해요. 그래서 유다인들이 사는 지역에 가면은 코셰르

고기를 따로 파는데 여러 가지 마크가 붙어 있어요. 그 마크에 반드시 이 글자(코셰르)가

들어가야 되요. 이 글자가 히브리어로나 아니면 영어로다 kosagr 라고 들어가서 딱 찍혀

있으면. 그리고 코셰르 고기는 그 도장을 누가 찍어 주느냐? 랍비가 찍어 줘요. 현대 랍비

가. 그리고 찍어 줄 때 도장 하나당 얼마씩 받아요. 그 랍비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해요.

그거 해 주는 것이 그래서 랍비마다 좀 달라요.

 

어떤 랍비는 파마다, 유대교는 그 내부에 수많은 파가 있었서 굉장히 엄격하게 하는 게

고, 또 어떤 랍비는 좀 기계화 했어도 그걸 잘 지키기만 하면 코셰르가 된다고 찍어주는

랍비가 있어서. 제가 보는 어떤 유럽 사는 유대인은 굉장히 경건한 유대인인데 어떤 랍비

가 찍은 도장만 믿어요. 그 사람 외에는 일을 잘 안 한다. 이거예요. 그런 식으로.

 

그런데 코셰르라는 거는 고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포도주에도 해당되고요. 포도에는

우리 성서에 보면 안식년을 둬야 되잖아요. 땅에. 그리고 여러 가지 곡식도 섞어 심으면

안 되요. 그걸 다 지켜서 농약도 치면 안 되고, 또 포도주를 만들 때 물과 포도와 이것 말고

아무것도 첨가제를 넣으면 안 되요.

 

그거를, 생산 공정을 랍비가 다 와 가지고 체크하고, 중간에 불시에 밭에 와 가지고 여기

농약을 쳤는지, 뭐 7년에 한번씩 쉬게 하는지 다 보고 그걸 통과한 데는 코셰르 마크를

쾅 찍어 줘요. 그렇게 되면 코셰르가 붙은 음식은 비싸요. 당연히 그렇지 않겠어요?

대량 생산해서 막 빨리빨리 해야지 되는데 이걸 하나하나 랍비가 와서 체크하고, 랍비

인건비도 나와야 되죠. 이걸 다 하려면 비싸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서 경건한 사람들은 비싸게 이걸 사 먹어요. 이거는 율법에 맞게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질서에 맞게 다 지켜서 나온 것이니까 조금 돈을 주고 사 먹어도

된다. 그래서 이거는 아무데서나 안 팔고 코셰를 가게가 있어요.

 

한국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없어서 코셰를 가게가 없는데 유대인들이 많이 사는 유럽이나

미국에 가면 코셰를 가게가 따로 있어 가지고 코셰를 찍힌 것만 유통을 해서, 하다못해

젤리 하나도 코셰를 젤리가 있고, 옷도 그렇고, 음료수 다 뭐든지 코셰르 마크가 붙어 있

어요. 사람들 먹는 거를 다 통제하는 거죠.

 

보통 식품보다 비싼 이 코셰르 마크를 하는데 사실은 전 세계 유대인들이 다 100% 이

코셰르만 먹지는 않는데, 그래서 이제 코셰르 산업이 있어요. 코셰르 산업이 한 때는

위기에 닥쳤어요. 이걸 누가 이렇게 사먹겠냐?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니까

고기 같은 걸 저 유럽으로 보냈다가, 호주로 보냈다가 이러면 다 상할 수도 있고 이러

니까. 그런데 요즘 코셰르 산업이 더 인기예요.

 

왜 그러냐 면은 그렇게 율법을 다 지켜서 코셰르 마크가 붙은 걸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생태적이라고 바이오 샵에서 사 먹어요. ?더 잘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유전자 가공도

안 하고, 농약도 덜 치고, 코셰르 마크가 붙으면 유대인 랍비가 꼼꼼히 하니까 믿을 수 있

다 그래서 사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제가 신문에 보니까 전라남도 영암인가에서 천일염이 나오거든요.

그 천일염이 코셰르 마크 인증을 획득했어요. 미국에 가서 랍비한테 비행기표 다 주고

모셔 왔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보고, 왜냐하면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햇볕 아래서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만드는 천일염은 이 구약성경에 나온 율법에서 봐도 틀린 게

없는 거예요. 자연 그대로 만드니까. 그래서 그 랍비를 해 가지고 코셰르 마크를 획득

했다고 기사가 나왔어요. 여러분, 인터넷으로 코셰르 소금 한국 이렇게 쳐 보시면 찾으

실 수 있을 거예요. 집에서.

 

그래서 정말 저는 머리를 잘 썼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거는 미국으로 수출 하는데 코셰르

샵에 들어가요. 비싸게. 같은 소금이라도 비싸게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새로운 머리를 쓰는

거예요. 이런 것도 잘 알아 두시면 교양이 많이 넓어지면, 여러분들이 다시 머리를 쓰실 수

도 있어요. 종교적인 음식 규정은 전 세계에 코셰르만 있는 게 아니라 무슬림도 있어요.

 

무슬림은 이거를 '할랄'이라고 불러요. 할랄 음식. 똑같이 그 사람들도 거의 같애요.

고기를 잡을 때 최소한의 고통을 주고, 그 고기의 피는 다 빼고, 그리고 내장 같은 거를

열어 봐서 기형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온전히 다 있고, 그리고 그것을 유통하는 사람들도

전부 율법에 관련해서 하나도 흠 없이. 뭐 곡식도 마찬가지고, 빵도 그렇고, 그런 걸

할랄 음식이라고 그래요.

 

한국에는 할랄 가게들이 있어요. 파키스탄 사람들 뭐 이런 무슬림들이 들어오면, 가게에

보면 할랄 음식이 분명 있어요. 그 사람들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돈을 더 주고라도

할랄 음식을 먹으려고 해요. 그래서 농담하는 게 있죠. 할랄 샵에 가가지고 돼지고기 찾

으면 안 되요. 그쵸? 넌센스죠. 할랄 가게에 할랄 돼지고기 같은 거는 없어요. 그런 거

잘못 물어 봤다가는 무슬림들은 기분 나빠해요.

 

자, 그런데 제가 이제 약간 곁다리로 또 새 가지고 독특한 종교적인 음식 문화에 힌두 음식

이 있어요. 힌두 음식은 소를 안 먹는 거예요. 그래서 소를 어떻게 안 먹느냐 하면, 젤리도

안 먹어요. 소 젤라틴이 들어가면 안 되요. 돼지 젤라틴으로 만드는 힌두 젤리가 있어요.

실제로. 그리고 이거는 종교적인 규정은 아니지만 베제타불, 채식 문화, 고기 안 먹는 분들

 

그러니까 독일 살 때 어떤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메뉴판이 큰데 코세르 메뉴판, 유대인들이

오면 코셰르 음식 우리 할 수 있다. 아랍인들이 오면 할랄 음식, 우리 아랍 음식도 할 수 있

다. 한장 넘기면 베제타불, 우리 채식도 한다. 큰 호텔에 가면 힌두, 인도인들이 와도 괜찮

다. 그런데 우리 동아시아는 다 먹죠. 우리는 아무것도 안 가리고 다 먹죠. 소든, 돼지든,

선지들, 고기든, 온갖 잎사귀와 풀뿌리까지 우리는 데치고, 절이고, 무쳐 먹고 다 먹죠.

세계 음식 문화는 종교적으로 봐도 굉장히 화려하죠.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면은 다시 한번 피에 관련해 가지고 구약성경은 이제 생명력이다

하는 게 있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사실은 무슬림의 할랄 음식도 이 규정에서 비롯된

거예요. 피를 먹지 않으려고. 그리고 모든 음식을 통제하는 것이죠. 피는 단순한 붉은 액체

가 아니예요. 생명력이예요. 붉은 주스가 아니라고요. 거룩함을 지닌 생명력이예요.

 

내가 피를 먹어서도 안 되지만 남의 피를 흘려서도 안 괴요. 당연하죠. 왜냐하면 그 사람

한테서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 구약성경에서 피는 단순한 붉은 액체가 아니라 거룩함을 지닌 생명력으로 피를

  먹어서도 안 되지만 남의 피를 흘리는 자는 자신의 생명으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여러분 알겠지만 구약성경 시대에는 사법 정의가 지금과 달랐어요.

그래서 지금은 경찰이 있어 가지고 우리가 국법에서 사적인 복수는 금지돼 있죠?

우리가 만약에 도둑질을 당했다. 아니면 누가 날 때렸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한데 한대

맞았으면 한대 때리고 이러면 안 되죠? 경찰을 불러서 우리는 사법 기관에 가야 되는데

고대 근동에는 그런 국가 체제가 없었잖아요.

 

도시 국가로 나눠져 있어 가지고 정당한 사적 복수라는 개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한 대

맞으면 한 대만 때리면 되는, 두 대 때리면 안 되요. 그건 오버하는 거예요. 그래서 살인자

가 있다면 살인자를 쫓아가서 복수하는 게 어느 조건 하에서 어떠 어떠한 조건 하에서는

이게 합법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그거를 뭐라고 불렀냐 하면은 '피의 보복자'라

고 불렀어요. 살인 사건을 했을 때 그거를 정당하게 복수하는 사람을 창세 9,5에 보면,

 

* 창세 9,5: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 물을 것이다.

 

피를 흘렸으면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피가 사악함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그랬죠? 악령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다고 그랬는데 거기까지만 오늘 말씀

을 드릴께요.

 

# 사악함을 물리치는 피

 

부정한 것을 쫓는 능력이 있어요. 피가. 탈출기와 레위기에서 황소와 숫염소의 피를 받아

서 뿌렸어요. 제단 주위에. 제단 주변에 왜 뿌렸겠어요? 그 제단이, 하느님의 제단이 거룩

하게 전례를 잘 지내야 되는데 사악한 것들이 들어오면 안 되니까 그 제단 주위에 피를 뿌

리는 게 있는데 이것도 역시 왜 숫양의 피를 부릴까? 피가 나쁜 기운을 몰아내기 때문이예

요. 탈출기 29장을 읽어 드릴께요. 교재 150쪽에 있어요.

 

* 탈출 29,11-12: 너는 만남의 어귀 주님의 천막 앞에서 그 황소를 잡아라.

  그리고 그 황소의 피를 받아다 손가락으로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

 

* 탈출 29,20: 그 숫양을 잡이 그 피를 받아서 오른쪽 귓불과 그 아들들의 오른쪽 귓불,

  그리고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발라라. 그리고 나머지 피는 제단을 돌면서

  거기에 뿌려라.

 

아론은 제사장이고 그 아들들도 제사장이니까 그 사람들 귀나 이런데 바라서 악귀를 쫓고

또 제단 주위에도 얼마간 뿌려라. 이런 거죠. 그 다음에 레위기 16장에서는,

 

* 레위 16,15-16: 이어서 백성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될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와서, 황소 피를 뿌릴 때와 마찬가지로 속쇠판 위와 속죄판 앞에 뿌린다. 이렇게 그는

  성소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부정과 허물, 그리고

  그들의 모든 잘못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부정과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려고 하는 것이죠. 지금은 이런 전례를

하지 않죠. 귓불에다가 피를 바르고 그러면 지금은 좀 우숩겠죠? 그런데 지금은 우숩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진지하게 생각했었던 거 같애요. 당연하겠죠.

 

자, 그러면 오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피가 악령을 쫓는 결정적인 능력을

여러분들이 탈출기에서 보실 수 있어요. 이집트 탈출할 때. 히브리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파라오한테 번번이 청을 했죠. "파라오여, 우리를 제발 좀 나가게 해

시오." 그런데 파라오는 번번이 거절했죠. 들어주는 척 하다가 안 들어 주고. 그래서

이제 조금 하느님의 화도 돋구고 그랬죠.

 

그래서 하느님은 모세를 시켜서 갖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어요. 파라오는 결국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가장 강력한 표징을 보여 주셨어요. 결국은 맏배를

치신 거죠. 맏이들을 다. 그렇게 맏배를 치셨는데 가부장제 사회에서 옛날 우리나라도

100년 전만 하더라도 지독한 가부장제 사회였는데 가부장제 사회에서 최고는 대를 잇는

아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아들을 다 죽였다는 것은 이집트의 미래를 다 없애는 굉장히 강력한 것이었는데,

그전에 결국은 경고를 다 듣지 않아서 이제 파라오가 그런 큰 일을 당하게 됐죠. 그래서

이집트에서 초상이 나지 않은 집이 없었다라고 탈출기 12장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 탈출 12,29-30: 한밤중에 주님께서는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곧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로부터 감옥에 있는 포로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조리 치셨다.

  ... 이집트에 큰 곡성이 터졌다. 초상나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사람의 맏아들을 다 죽이고, 짐승도 맏배를 다 치셨어요.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일이 히브리

사람들한테 안 일어났어요. 왜 안 일어났죠? 하느님이 요전날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탈출기 12,22-23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탈출 12,22-23: 그 대야에 받아 놓은 피를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을 치러 지나가시다가,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피를 보시면, 그 문은

  거르고 자나가시고 파괴자가 너희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즉 피를 문 앞에 문설주 같은데 발라 놓으면 괜찮다. 이거죠. 여기서 주님이 직접 오셨다고

하셨지만, 주님이 악령을 보내셔 가지고 첫째를 다 죽이도록 하셨어요. 그런데 그 악령을

피가 막았어요. 피를 발라 두니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거는 피의 신이 없어졌어요.

 

피의 신이 없어지고, 피의 신이 하는 역활만 남았어요. 그랬는데 보면은 피가 악령을 쫓는

역활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은 주님이세요. 피를 바르라고 명령

하신 분도 주님이시고, 그 악령이 피를 알아보고 들어가지 말라고 악령한테 말씀하신 분도

하느님이시고, 이 모든 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켜기 위한 것을, 모든 것을 다 크

게 디자인 하신 분은 하느님이시거든요.

 

생명을 지켜주는 피의 역활은 고대 근동 신화 하고 똑같애요. 그런데 피는 신이 아니예요.

생명을 지키는 피의 능력은, 그 근원은 하느님이세요. 하느님이 다 하신 일로 되었어요.

구약성경은 이런 면에서 피를 탈신화 하고 야훼 신앙 안으로 재신화 한 거예요.

 

* 생명을 지켜 주는 피의 역활은 고대 근동의 신화와 같지만, 생명을 지키는 피의 능력의 

  근원은 철저히 하느님이시다

 

지금까지 오늘 강의한 거를 여러분들한테 정리해 드리면, 피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새로운

느낌을 가지시기 바래요. '담'은 우리나라 담 걸릴 때 담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냥 피

예요. 하지만 비슷하니까 외우실 때는 도움이 되시고,

 

성경을 직접 읽으시다가 아, 피는 원래 굉장히 사랑받는 신이었구나. 굉장히 큰 신이었구나.

그리고 우리한테 좋은 신이었구나. 그러고 보면 당연하죠. 피는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이고,

생명력의 신이었는데. 그 신이 하는 역활도 말이 똑같은 담이라는 말을 쓰는 히브리 사람

들은 알고 있었었고 그와 비슷하게 썼어요.

 

그런데 그 피의 신이 하는 역활은 오직 하느님한테 다 돌렸죠.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규정

하나가 거기서 나왔어요. 거기서 바로 피는 먹지 말라는 규정이었고, 그 규정으로 인해서

구약성경이 얼마나 큰 인류사의 역활을 했는지 여러분이 아실 수 있으실 거예요.

 

유대인들이 그 큰 규정을 만들었고, 또 이슬람의 큰 규저이 거기서 나오게 되었어요.

물론 우리는 그런 음식 규정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한국에서 태어나서 모든 걸 다 먹는

민족이지만, 하여튼 그런 문화적인 차이도 생각하시면서 구약성경을 읽으시면 좋을 거

같애요. 다음 시간에는 왜 하필이면 그리스도의 피인가?  신약성경까지 잠시 들어가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잘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다음 시간 예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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