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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길은 고통의 길/묵주 기도 9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0 조회수911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묵주 기도의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 1/2  

 

하느님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스스로 사람이 되시기를 작정하셨다.

가장 높으신 분께서 가장 낮은 신분으로 신비의 시작을 알렸다. 정말 신비이다.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하느님이심을 스스로 보여 주셔야했고

당신 나라와 당신의 뜻을 일깨워 주셔야했다.

그래서 환희의 신비가 시작되었다. 비로소 묵주기도가 시작되었다.

마리아가 선택되었다. 하느님 그분께서 마리아를 선택하였다.

인간 사랑의 단초는 이렇게 마리아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그분의 예수살이의 시작은 마리아의 환희로부터 이루어졌다.

마리아의 순종은 아기 예수를 탄생하였고, 성전에 봉헌하면서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성모님의 이 희생이 없었다면 환희의 신비는 없었을 것이다.

빛을 맞이하는 성모님의 환희와 그 빛을 더더욱 드러내기 위한 성모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그 빛은 어둠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묵주기도를 바친다. 각 단마다 신비로 이어진다.

마리아의 예수님 잉태인 환희의 신비 1단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천상 모후의 관 씌움인 영광의 신비 5단까지 신비 아닌 게 없다.

이 두 시작과 끝단은 신비에서도 특히 백미이다.

묵주기도에서 성모님의 존재는 이렇게 빛난다.

일찍이 성모님은 나자렛에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신 분이시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가 시키는 모든 일을 하여라.’라고 우리에게 한결같은 그분 사랑을 일러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은 그가 시키는 일을 옳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머님께 매달린다.

어머요, 그라몬 우짤끼요? 이번에도 잘못했다고 아부지께 잘 좀 일러 주이소.”

성모님은 웃으신다. “그래 알았다 안 카나.”

그 옛날 예루살렘의 축제 기간에

어린 예수를 사흗날에 찾아내고는 꾸지람을 하신 그 말투가 아니시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빛이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공적인 생활은 빛 그 자체였다.

죄 없으신 분이 몸소 세례를 받으셨고

가난하고 소외받은 자들을 찾아다니며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 세상보다 저 세상이 있음을 알리셨고 현세보다는 내세를 더 강조하셨다.

그 기간에 성모님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다.

그분의 빛은 어둠 속에서 어둠을 살라 먹고 빛으로 우리와 함께 계셨다.

가장 낮은 자세로 다가오신 하느님의 그 크신 빛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러나 그 빛은 더 큰 어둠의 고통이 끝나야 더 밝게 영원한 빛으로 빛날 것이다.

이 빛을 확실히 빛으로 비추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온갖 고통을 겪으셨다.

빛으로 오신 그분의 빛을 더 빛나게 해 줄 고통의 신비를 몸소 감내하였다.

고통이 없는 영광이 있겠는가. 더 큰 영광을 위해서는 그 고통 또한 더 커야 하는 모양이다.

예수님의 고통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다. 지금 하느님의 영광이 온 누리에 빛나고 있다.

이 영광은 예수님의 고통으로 얻었다.

예수님의 고통은 하느님이 손수 창작하시고 연출하신 작품이다.

그분은 이 고통을 영원히 남을 영광으로 이끄셨다.

이 커다란 고통 속에는 성모님의 숨은 뒷바라지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주위로 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하느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으면서

성모님을 찬양하는 묵주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바칩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아니 가끔은 우리 스스로도 그걸 느낀다.

하느님을 믿는 것인 지, 예수님의 어머님 성모님을 믿는 것인 지!

이 점에 어떤 때는 당혹감을 가진다.

개신교 신자들로부터

'당신네 교는 마리아 교'라는 핀잔을 들을 때도 뚜렷한 반박거리를 가지지 못할 때도 간혹 있다.

더더구나 우리 스스로도 묵주기도 중에는

성모님께 전적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솔직히 말해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님을 많이도 찬송하는 것 같지만

면면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성모님을 찬송하면서 우리 주 예수님을 떠받든다.

기뻐하십시오, 성모님! 태중의 아들 예수님은 정말 복되십니다.’라고

하느님께 대한 경배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우리 못난 죄인이 이 세상 하직할 그때에

성모님 당신은 그분께 저의 잘못을 잘 좀 예기 해 주십시오.’라고 어리광으로 끝난다.

자식이 어머니를 통해서 아버지께 부탁 좀 해 주길 간구하는 기도이다.

 

진정한 한국적인 정서가 담뿍 깔린 호소이다. 가부장적인 우리네 전통 생활이 배어있는 기도문이다.

결국은 우리가 의지하고 귀의하는 곳은

아버지 하느님이지 어머님이신 성모님이 아님을 나타내는 기도이다.

단지 어머님을 통해서 우리 잘못을 그분께 용서해 달라고 전구하는 것이다.

성모님도 이 못난 자식의 뜻을 이해하여 함께 기도를 해 달라는 뜻이다.

그 엄한 아버지한테 다가가기는 너무 많은 죄를 지은 우리이기에 말이다.

어머님의 내조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자하는 인간적인 호소이다.

이 성모송 속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담겨 있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그분께 당신이 대신 좀 빌어달라는 이 애절한 호소에 하느님도 기꺼이 응해 주실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성모님을 믿는다.

복음 전체를 통해서 성모님만큼 예수님께 순종하신 분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그 십자가 고통 속에도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유언을 남기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

 

하느님의 예수 삶은 하느님의 선교 사업의 시작이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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