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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부활은 희망이고, 치유이며 해방입니다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0 조회수921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은 희망이고, 치유이며 해방입니다
 

 

 

 

 

 

† 찬미예수님

부활한 예수님은 참 바쁘게 다니면서 여러 사람 만나신 것 아시지요?

마리아 막달레나, 오늘 복음에 나온 다락방에 있던 열두 사도,

사도 토마,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밤새 고기를 잡던 수제자 베드로와 같은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셔서 친절하게도 숯불에 고기까지 구워먹였어요.

 

부활한 예수님은 어떤 사람에게 나타나셨으며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가 중요할 것 같지요?

 

가장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간음하다 잡혀서 동네사람들에게 돌로 치는 죽임을 당하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끌어안으면서

“죄 없는 사람부터 이 여인을 쳐라!”

하니까 노인네들부터 슬슬 빠져나갔어요.

 

막달라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성모님의 힘든 마음을 위로해 준 여인이며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인!

그러나 예수님을 보고도 동산지기인줄 알았어요.

막달라마리아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과 등을 지고 있어서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끊임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들이 흘리는 눈물은 자기위주의 눈물이 참 많지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걱정, 두려움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못 본 첫 번째 이유는

자기위주의 눈물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과 등을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고 살아야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산다면 시궁창에 빠져도 살아날 수 있지만

예수님과 등을 돌리고 산다면 유다스처럼 예수님을 떠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눈물에 가려서 예수님을 동산지기인 줄 알고

“우리 당신이 그분을 옮겨갔거든 어디에다 모셨는지 알려주세요.”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예수님이 목소리를 알아듣고

“라뽀니!” 하고 불렀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슬픔을 가지고 끝까지 예수님과 등을 돌리고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그 “마리아야!” 하는 소리는 못 들었을 겁니다.

 

열심하고 충성하는 자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살면서 원하지 않는 슬픔이 올 때마다

슬픔 그 뒤의 부활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고통스럽기만한 십자가는 거부합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살면서 원하지 않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눈물 흘리며 주저앉아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을 향하여 올라가는 에너지가 충만한 예수님을 보고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부활한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째, 다락방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강림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차례가 될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다른 말로 하면 “너희에게 담대함이 있기를!”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주십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는 사형수들이 있을 것이요,

호스피스병동에는 마지막 생명을 좀먹고 있는 암과 싸우는 환자도 있을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도 언젠가 겪을 임종에 대해 늘 기도합니다.

어떤 분들이 제 죽음을 지켜볼지 모르지만

담대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우리는 누구나 죽음의 공포, 환경에 대한 공포,

때로는 나를 두렵게 하는 사람에 대한 공포 등,

온갖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게 바로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아오스딩,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베드로야, 내가 너의 구원자임을 잊지 말아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벌벌 떨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에 강한 에너지를 받아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누가 없었습니까?

유다스는 이미 죽은 뒤이고, 열한 제자 가운데 사도 토마가 없었습니다.

 

토마는 지극히 이성적인 성격이라 마음으로부터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마의 의심은 확신을 이기기 위한 의심이었지

피해가려는 의심이 아니었습니다.

 

토마에게는 약점이 있었는데 공동체로부터 멀어집니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살 수 있을까!’

이성적인 그는 다락방에서 멀어집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냉담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점집을 드나들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힘이 들지만 예수님이 계신 다락방을 떠나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어디 가서 혼자 헤매고, 혼자 고민하다가 토마가 돌아와 보니까

제자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머리 뒤에는 아우라가 번쩍번쩍~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나는 내 눈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나중에 토마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는 무릎을 꿇으며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네 번째,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세 시간씩이나 같이 다니시면서 성서를 풀이해주시고 빵까지 떼어주십니다.

그 두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자마자

‘우리도 살길을 찾아야 한다’

낙향길에 올랐던 겁니다.

 

살다보면 주님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못 배웠다고, 가난하고 재주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며 숙명론자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달라집니다.

 

엠마오로 갈 때는 절망의 길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희망의 길이 됩니다.

그들은 기쁨의 줄달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다섯 번째,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제자들과 대면합니다.

밤새 고기를 잡지 못해 기진맥진해 있는 제자들에게

요깃거리를 제공해 주시며 주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네,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세 번 묻고, 베드로가 세 번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하고 맏형노릇을 못해서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베드로에게 세 번 묻고 세 번 대답함으로써

영적인 명예회복을 시켜주시고 다시 사도직을 맡깁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슬픔과 눈물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다락방을 찾아가셔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해방시켜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의심과 불신과 회의에 빠진 토마를 만나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낙담과 절망에 빠져 낙향하고 있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찾아가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살길이 없었던

베드로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부활은 희망이고, 치유이며 해방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오늘 묵상한

여러 가지 어두움으로부터의 그 자유를 진정으로 누리시기를 원하신다면

바로 여기 앞에 계신예수님을 쳐다보십시오.

 

곧 빵의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오실 예수님을 겸손하게 맞이하십시오.

이 거룩한 성지에 내가 내발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죄덩어리인 나를 불러주신

주님의 그 깊은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돌아갑시다.

 

내 자신이 막달라마리아일 수 있고~

내 자신이 다락방에서 벌벌 제자 토마일 수 있고~

내 자신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일 수 있고~

내 자신이 수치심으로 가득한 베드로일 수 있다면~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부활하신 주님을 닮아서

매일매일 영적인 부활을 하십시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 (2013. 04. 06 배티은총의 밤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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