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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5 조회수1,421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4월 2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Cast the net over the right side of the boat
and you will find something."
(Jn.21,6)
 
 
제1독서 사도 4,1-12
복음 요한 21,1-14
 

오늘 묵상 글은 조금 일찍 올립니다. 잠시 뒤에 인천교구 마전동 성당의 전 성소후원회 회장님이셨던 정원재(대건안드레아) 형제님의 장례미사를 하러 인천국제성모병원으로 가야 하거든요. 고인이 되신 대건안드레아 형제님께서는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의 희생자이십니다. 대건안드레아 형제님과 세월호의 모든 희생자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길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전 국민이 모두 그렇겠지만 저 역시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실종자의 숫자는 계속 줄어드는데, 구조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망자 숫자만 늘어나는 상황, 세월호 침몰의 각종 원인들이 미리 조치할 수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나라가 이 모든 희생자들을 제대로 구해내지 못했다는 현실에 슬픔이 커질 수밖에 없네요. 여기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동과 말이 덧붙여서 국민의 한 사람인 저 역시 분한 마음을 삭히기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저도 이러한데 희생자들의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은 얼마나 클까요?

살아 있음이 죄인 같습니다. 정부의 늑장 대응과 부적절한 행동들을 보면서도 ‘그래도 사람을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정부의 방송만을 보고 있었던 것, 안전 불감증이라고 불릴 만큼 지금까지 많은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함께 마음을 모으지 못했던 것 등등이 저를 죄인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죄인이라는 심정을 전 국민이 다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우울한 것 같고, 작은 것에도 화를 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인의 심정만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의 심정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아마 ‘죄인’이라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스승님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스러움, 스승님과 그 길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이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은 예전의 직업인 고기잡이를 나서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을 따르자 그물을 끌어올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지요. 수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주 당신의 뜻에 맞게 살아가기를 강조하셨지요. 그 말씀을 따를 때, 자신들이 생각한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오늘 복음은 보여줍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죄인의 심정, 패배자의 마음, 그리고 더 이상 아파하고 슬퍼하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는 희생자의 가족들이 아픔을 하루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며, 이러한 인재가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온 국민이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담겨 있는 사랑의 길. 이 사랑의 길은 무조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면서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알아서 하겠지.’라면서 안일한 마음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책임을 동반하는 사랑의 길임을 기억하면서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한 마음이 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시간을 바꾸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오마에 겐이치).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

 

동방예의지국

얼마 전에 서울 명동에 갔다가 일 다보고 다시 전철을 타고 내려오는 중이었지요. 전철은 낮 시간이라 한산한 편이었지만 앉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구 쪽에 서서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너무나 힘든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것입니다. 어딘가가 무척 아픈 것 같더군요. 그때 마침 노약자석에 자리가 생겼습니다. 제가 말했지요.

“지금 너무 아파보이네요. 여기에 앉아요.”

그러자 이 청년은 “아닙니다. 여기는 노약자석이잖아요.”라고 말하면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 전철 칸 안에서 제일 약자는 이 청년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노약자석이라고 하면서 자리 앉는 것을 거부하더군요.

하긴 노약자석에 젊은 사람이 앉아있다고 화를 내시는 어르신들을 본 적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이 청년의 말이 전혀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에 대한 공경도 중요하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렸습니다. 단순히 어른을 잘 섬긴다는 이유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예의란 어른을 섬기는 것뿐이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도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은 과연 예의를 지키는 것일까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많은 약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예의는 과연 무엇인가요? 남 일처럼 생각하고 관심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마음을 합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가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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