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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회 안에 있는 치유의 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6 조회수1,047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부활 제2주일


<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복음: 요한 20,19-31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PIERO della FRANCESCA 작, (1463-65)


     < 교회 안에 있는 치유의 힘 >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그려낸 요즘 개봉중인 영화 한공주’. 요즘 우리나라가 큰 슬픔에 잠겨있고 가슴이 먹먹하기 때문인지 과거의 이 가슴 아픈 사건을 재조명한 영화가 또한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여학생인 많은 어른들에게 둘러싸여 전학을 강요받습니다. 그러나 이름이 한공주인 이 여학생은 그 어른들에게 눌려 이렇게 말합니다.

... 잘못한 게... 없는데요? ....”

그렇습니다. 잘못한 게 없는 피해자는 계속 피해자여야만 하고 이 세상 누구도 그를 진정한 피해자로 받아들여줄 힘이 없다는 것. 이 한 마디가 온 영화를 지배합니다.

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 한공주를 데리고 자신의 집에 어머니와 함께 살라고 놓고 갑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잘못으로 전학 온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와 한 집에 살아야 하느냐고 거부를 합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생활비를 보조해준다고 하니까 잘 받아들입니다. 성질이 사나운 분이지만 한공주는 이 어머니와도 잘 사귀어갑니다.

한공주는 우선 배신자라고 부르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전화번호까지 바꿔놓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간신히 어머니가 있는 작은 마트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지금 간신히 재혼해서 살고 있는 자신도 힘드니 엄마를 위한다면 앞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딸에게 몇 만원을 주며 밀어냅니다.

전학 온 학교에서 한공주를 아무 이유 없이 잘 대해 주는 친구가 생깁니다. 물론 한공주의 아픔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는 천주교 신자 친구. 한공주는 그 친구를 통해 세상과 대화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친구는 한공주에게 어떤 아픔이 있건 자신이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결심합니다.

한공주는 곧 이어 수영을 배웁니다. 물에 뜨는 것은 다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그러나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필사적으로 수영을 배웁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바로 자신의 처지에서 살아남고 싶은 의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 아픔을 치유해가며 세상에 다시 발을 붙이려는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느닷없이 사인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재판 중에 있는 그녀의 가해자들 중의 한 명에게 돈을 받고 탄원서를 써 주기로 한 것입니다. 한공주는 사인을 해 줍니다. 아빠는 그렇게 그 가해자들이 준 위로금으로 흥청망청 살아갑니다. 딸의 아픔을 이용하는 아빠.

그 와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그 수십 명의 가해자의 부모들이 자신들에게도 탄원서를 써 달라고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대소동. 아무 죄도 없이 쫓겨 다녀야 하는 한공주. 그러나 학교 교장 선생님은 한공주가 그런 연유로 전학 온지 몰랐다고 하며 학교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근신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함께 살던 집 아주머니가 사귀고 있던 파출소 소장은 그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한 아이인지 일일이 다 이야기해주고, 한공주의 친구도 같은 일을 당해 자살했다고 하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그 아이를 내보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한공주는 그 집에서도 발붙이지 못하고 찜질방에 가서 머물게 됩니다.

부모님도, 학교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한공주를 받아주려고 했지만 그녀의 현실 앞에서는 각자의 길을 가고 맙니다. 결국 자신을 그렇게 잘 대해주었던 천주교 신자인 자신의 유일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녀도 전화를 받지 못합니다. 그 아이들이 성폭행을 하며 찍어놓은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였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던 한공주는 짐 가방을 들고 한강 다리를 걷습니다. 자신과 함께 당했던 친구가 이미 그렇게 했듯이, 자신도 물로 뛰어드는 것 외에는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뛰어듭니다. 다시 떠오릅니다. 살고 싶은 욕망. 그래서 그동안 배웠던 수영을 해 보지만 역시 한강의 빠른 물살에는 역부족입니다. 다시 물속으로 잠깁니다. 그녀는 그렇게 세상과 작별을 하게 됩니다.

 

아마 줄거리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실 것입니다. 그녀의 가해자는 대부분 지금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당시 언론에 의해 실명과 얼굴까지 나가버리는 바람에 세상에서 죄인처럼 간신히 살아가거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나도 그녀의 지인 중 하나였다면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었을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알겠지만 나조차도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을 받아주며 그와 함께 아픔을 같이 할 자신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뭉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썩은 사과 하나를 상자 안에 넣어놓으면 며칠이 안 돼서 상자 안의 대부분의 사과들이 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뭉치더라도 그 썩은 사과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다른 누구로부터 받지 못하면 세상과 함께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교회는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건물을 지으면 허물어지고 물건을 만들면 시간이 지나면서 고장 나고 망가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교회는 교회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불신앙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그 불신앙을 참 신앙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에너지가 어디에서부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2천년 동안 수많은 불신앙과 이단의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교회가 못마땅하여 뛰쳐나간 사람들은 많아도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의 신앙을 무너뜨린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성령의 힘이 작용함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상처 입은 사과가 다른 사과들까지 전염시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교회는 그 상처 입은 사과까지 치유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불신앙으로 교회 안에 머물렀던 토마 사도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에게 믿음을 주신 것처럼 지금도 당신이 세우신 교회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유영철에게 온 가족을 잃은 고정원씨는 이 세상에서라면 그런 용서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분이 그분을 교회로 이끄셔서 그분이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셨습니다. 고정원씨는 세례를 받고 유영철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자신도 치유되고 남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교회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교회로 이끌었던 그분의 대부는 세례를 받자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분을 감싸드릴 수 없지만 교회는 할 수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께서 알아서 다 바로잡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나를 온전히 받아주어 내 상처가 치유되게 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자신들 또한 그 상처의 아픔 때문에 고통 받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토마스처럼 세상 사람들이 아닌 교회 안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도록 합시다. 교회 안에 머무르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방주 안에서만 이 세상 험한 물결을 이겨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나 여러 여인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모두 교회에 알리고 교회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를 통해서 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본 가난한 집안에서 유명한 사무라이가 되었던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새로운 성의 기둥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 아들이 그 힘으로 온갖 모욕이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을 벗어나는 즉지 그 어머니의 희생의 힘을 잃고 맙니다. 그리스도의 힘이 작용하는 이 교회에 머물 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수 없는 것처럼,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께 갈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안 되더라도 교회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토마스 한 사람에게는 타나나시지 않으셔도, 교회에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영원히 머무를 하느님의 치유의 힘을 믿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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