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제2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7 조회수423 추천수5 반대(0)

 

오늘 부활 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넘어 죽음의 문을 넘어갔다 온 분의 인사 같지가 않습니다. 마치 어제 보았는데, 오늘 또 만난 사람들에게 하는 것 같은 인사입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 부활하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평화였습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근심과 걱정도 날려버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평화의 길로 초대를 하십니다.

 

여의도 성모병원엘 다녀왔습니다. 아는 분께서 아프기 때문입니다. ‘으로 투병 중이신 분이셨습니다. 몹시 아픈 중에서도 병자성사를 받고 성체를 잘 모셨습니다. 환자 곁에는 언제나 힘이 되어주시고, 위로가 되어 주시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빠를 위해서 병실을 지켜 주는 딸들이 있었습니다. 환자분에게 결혼 참 잘하셨지요?’라고 물으니 아이처럼 웃으셨습니다.

 

본당 신부로 있을 때 산보를 자주 다녔습니다. 적성 성당의 본당신부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진성이가 성당으로 왔습니다. 저는 진성이에게 산보를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아이는 가방을 성당 교리실에 놓고 저와 함께 산보를 하였습니다. 길가의 꽃도 보았고, 장날이어서 구경도 함께 하였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우산을 놓고 왔다고 해서 학교에 함께 가서 우산도 가져왔습니다. 산보를 마치고 성당으로 돌아왔는데 진성이가 이렇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신부님! 그런데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아이는 산보가 어디에 있는 장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통해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다 보여 주셨는데 우리는 늘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엠마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해 봅니다. ‘엠마오는 어느 장소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엠마오가 장소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산으로도 가고, 섬으로도 가고, 바다를 건너서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엠마오는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인생길에 지치고 힘들 때 위로를 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엠마오입니다. 병원에 함께 가던 교우들 속에서, 그날 다른 본당에서 환자를 방문해 주셨던 교우의 마음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병실의 보조 침대에서 새우잠을 주무시던 자매님들의 마음에서 위로를 얻었고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엠마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2000년 전에 부활하신 주님의 얼굴모습, 그때 입으셨던 옷, 그분 몸에 있었던 상처를 다 정확하게 알아야만 주님의 부활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덤에 묻히셨을 때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시는 정확한 시점을 아는 것이 주님의 부활을 이해하는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부활의 순간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 부활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부활을 체험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활의 삶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주님 부활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하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았어도 주님의 부활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복되다고 이야기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만으로도, 주님께서 보여주신 치유의 은사와 그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부활의 삶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은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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