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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르우벤과 유다의 다른 점(창세 43, 9)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8 조회수658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르우벤과 유다의 다른 점(창세 43, 9)

 

요셉이 자신의 동생 벤야민을 데리고 오라고 시메온을 붙잡아 두고 나머지 형제들은

아버지 요셉이 있는 가나안으로 돌려 보냈다. 이때에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 그러자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제가 만일 벤야민은 아버지께 데려오지 않으면,

제 두 아들을 죽이셔도 좋습니다. 그 아이를 제 손에 맡겨 주십시오. 제가 아버지께 그

아이를 다시 데려오겠습니다."(창세 42,37)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거절한다.

그런데 유다가 다시 나서서 이렇게 말씀드린다.

 

" 제가 그 이이를 맡겠습니다. 그 아이에 대해서 저에게 책임을 물으십시오. 제가 만일

그 아이를 아버지께 도로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세우지 않는다면, 제가 아버지에 대한 그

죄를 평생 동안 짊어지겠습니다."(창세 43,9)

 

그러자 아버지 야곱은 "너희 아우를 데리고 일어나 그 사람에게 다시 가거라."라고

승낙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르우벤이 자신에게 벤야민을 맡겨 달라고 했을 때 야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데려갈 수 없다."(창세 42,38)

이때의 야곱의 마음은 벤야민이 오직 자신의 아들이었다. 이 마음과 조금 후에 유다가

자신에게 벤야민을 맡겨 달라고 말씀드리고 나자 야곱이 허락하며 말하는 내용이 뭐가

다른지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내 아들'에서 '너희 아우'라고 표현이 바뀌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또한  어떻게 보면 르우벤의 제안이 더 크고 중대하게 보이는 것 같은데 왜 야곱은

르우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승낙하고 있는지도 보아야 한다.

 

르우벤은 자신의 두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걸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을 걸었다.

어찌보면 두 아들의 담보가 더 커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모는 자식이 죽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나 야곱은 그 제안보다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끝까지 자기 자신을 희생하

는 것이 가장 크고, 보람 있고, 아름다운 것이지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도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은 결코 하느님이 바라시는 방식이 아님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야곱이 르우벤이 제안을 했을 때는 '내 아들'이라고 했다가 유다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난 이후는 '너희 아우'라고 하면서 벤야민을 데리고 가라고 내어 준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야곱이 그만큼 영적으로 성숙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요셉도 야곱에게는 오직 '내 아들'이었다. 그리고 벤야민도 야곱에게는 오직 '내 아들'

이었다. 다른 형제들의 '아우'는 아니었다. 이것은 참으로 의미 있게 우리가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것이 신약에서도 나오는데 신약에서는 이와 반대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에서 큰 아들에게 있어서 동생은 오직 '아버지의 아들'이었지 자신의

'아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이 다른 아들들에게 '너희 아우'라고 하면서 벤야민을 내어 주고 있다.

내 아들에서 너희 아우는 아주 의미가 깊다. 이제 다른 아들들도 야곱에게 있어서 모두

'내 아들'로 그의 마음에 들어왔다는 것을 묵상해 본다.

 

지금까지는 가장 사랑했던 라헬이 낳은 두 아들만이 '내 아들'이었다면 이제 벤야민을

그의 형들에게 '너희 아우'로 내어 주면서 다른 아들들도 똑같은 마음으로 야곱의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부터 화해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아버지 야곱에 의해 묶였던 무언가가 이제 야곱이 그토록 '내 아들'이라고

움켜 쥐고 있던 것을 '너희 아우'로 내려 놓으면서 다른 열 명의 형들이 아버지 안으로

진심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럼으로써 형들이 그동안 얼었던 마음도 살살 녹아지고 있음

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요셉이 고통을 당했던 근본 실마리는 아버지 야곱의 편애부터 시작된 것이

었지 않는가? 이제 그 편애가 벗어졌다는 것이다. 열 명의 형들은 이제 아버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니 화해의 실마리는 여기서부터 풀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도 흐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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