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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03 조회수910 추천수11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5월 3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Have I been with you for so long a time
and you still do not know me, Philip?
(Jn.14,9)
 
 
제1독서 1코린 15,1-8
복음 요한 14,6-14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나이 들어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지요. 왜냐하면 얼굴에 주름이 남들보다 조금 많거든요. 특히 입가의 팔자 주름과 미간의 깊은 주름으로 인해서 늙어 보인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러한 저를 보면서 평소에 ‘인상을 많이 써서 그렇다.’고 생각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 가족사진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곧바로 이렇게 말하지요.

“아버지를 닮았구나.”

제 형제가 6남매인데 모두가 똑같이 팔자 주름과 미간 주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꼬리가 처진 것까지 모두 아버지를 닮았지요. 그래서 딱 봐도 한 가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를 닮는 것,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까요. 따라서 자녀 얼굴만 봐도 부모의 얼굴을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성형 수술을 했다면 불가능하겠지요.

창세기에 보면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또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서 창조하셨지요. 그렇기에 우리 각자 안에는 하느님을 닮은 모습들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내가 만나는 하느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때로는 미움으로, 때로는 섣부른 판단으로 쉽게 단죄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각종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깊은 상처를 줄 때도 참 많았습니다.

또한 내 안에도 하느님을 닮은 모습이 있겠지요. 그런데 그 닮은 모습을 얼마나 잘 지켜나가고 있을까요? 혹시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부정하고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는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그가 이렇게 청한 것은 아직 믿음의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과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따라서 그분 안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믿음의 눈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하나를 이루시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눈을 키우라고 하십니다. 이 믿음의 눈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하느님을 닮은 우리, 이제는 그분과 철저히 하나를 이룰 수 있도록 주님께 대한 믿음의 눈을 더욱 더 키워야 하겠습니다.

행복해지기는 간단하다. 다만 간단해지기가 어려울 뿐(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

 
제 아버지 팔순 때, 가족사진입니다. 비슷한가요?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세요.

몇 년 전 덕적도에서 바다낚시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고깃배를 타고서 먼 바다로 나갔지요. 큰 고기를 잡을 것을 예상하면서 낚싯줄을 내리는데 잠시 뒤 속이 안 좋습니다. 배가 출렁이면서 생기는 뱃멀미 때문이었지요. 큰 고기 잡을 것을 꿈꿨는데 그 꿈은 깨끗이 사라지고 대신 얼른 배에서 내렸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결국 도저히 낚시를 못하겠다면서 낚싯줄을 접는 제 모습을 보고는 선장님께서 뱃멀미 퇴치 노하우를 말씀해주시더군요.

“신부님, 힘들다고 고개 숙이지 마시고,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세요. 바로 앞을 바라보면 더 심하게 멀미합니다. 먼 바다를 계속 보고 있으면 곧 배 안에서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선장님의 말씀을 듣고 먼 곳에 있는 섬과 바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안 좋은 속이 괜찮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멀미를 하지 않게 되었지요.

선장님의 이 말씀이 어쩌면 우리 삶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즉, 힘들 때는 멀리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지요. 그보다는 먼 곳에 있는 희망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닥친 것에만 연연하면서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바로 이때 먼 미래의 희망을 불러야 합니다. 특히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과 함께 희망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시길 바랍니다. 그 희망을 통해 지금의 고통과 시련 역시 스쳐 지나갈 하나의 시간일 뿐임을 깨달으면서 잘 이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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