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지상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08 조회수875 추천수10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지상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부활시기에 떠오르는 두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한 아이가 보호처분을 받고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이 성목요일이었습니다. 신자가 아니라할지라도 돈보스코 예방교육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에 저희는 종교유무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성삼일 전례에 의무적으로 참여시켰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보상으로 푸짐한 간식과 풍성한 선물이 준비되곤 했었지요.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한 것입니다. 그 아이는 성삼일 내내 그 오랜 전례 시간동안 영문도 모르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 습관이 안되어있으니 벌 중에도 그런 큰 벌이 다시 또 없었습니다. 한번은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저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이게 뭐예요? 살레시오 오면 편하다는 말, 다 헛소문이었네요. 여기 매일 밤마다 이렇게 하는건가요? 혹시 미사 대신 다른 벌 받으면 안되요?" 

 

또 한번은 어느 수녀원에 부활 성야 미사를 집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활성야 미사는 평소 미사 시간보다 두배 이상이 더 길게 진행됩니다. 부활성야 미사 때 특별히 말씀의 전례가 길고도 깁니다. 생략하지 않고 다 낭독하려면 독서만 해도 일곱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제1독서와 복음, 그리고 사이사이에 응송과 기도...

 

교회는 이 부활 성야 말씀의 전례 시간을 통해 우리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업적을 돌아봅니다. 과거를 회상합니다. 죄와 종살이, 죽음의 땅에서 은총와 자유, 생명의 땅으로 불러주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길게, 더 천천히, 더 의미를 곱씹으면서 밤새워 예식을 거행하곤 했습니다.

 

수녀님들, 정말 전례를 잘 준비하셨더군요. 계속 봉독되는  독서, 천사들의 합창같은 수녀님들의 응송, 합창, 기도, 빛의 예식, 그리고 이윽고 성찬례...부활 성야 대미사를  집전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를 잡더군요.

 

아마도 하느님 나라가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고 염원하는 하느님 나라는 뭔가 대단한 곳, 뭔가 특별한 곳,휘황찬란한 곳, 흥청망청한 곳, 세속적이고 소비향락적인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운데 예수님께서 앉아계시고, 그 좌우로 성모님과 열두 사도들을 비롯한 성인성녀들이 함께 계시는 곳,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천국의 시민들은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천사들이 응답의 노래를 부르고...이런 모습이 천국의 삶이 아닐까요?

 

나이들어갈수록 점점 전례적인 삶, 말씀 중심의 삶, 찬양의 삶, 결국 영적인 삶에 더 맛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인간말종, 구원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여겨지던 우도나 세리 자캐오, 창녀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는 모습을 고려할 때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예외없이 당신 나라로 초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이 너무나 지루하고 따분해서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평소  탐욕스럽고 사치스런 삶, 소비향락주의에 푹 젖어 살던 사람들에게 천상적 삶은 고문과도 같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내기 골프도 없습니다. 더 이상 질펀한 회식도 없습니다. 더 이상 막장 드라마도 없습니다. 그저 검소하고 소박하며 영적인 천상의 삶, 기도와 찬미의 삶만 존재합니다. 그러니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천국은 지옥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은 누군가가 보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자초해서 가는 곳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는 듯 합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우리는 이 지상에서부터 벌써 천상적 삶의 자취, 영원한 생명의 예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형제적 삶이 이루어지는 모범적인 신앙공동체, 수도공동체적 삶 그 자체는 벌써 천국의 삶 그 자체입니다. 일상적인 용서와 화해, 일치와 친교가 흘러넘치는 가정 공동체는 지상에서부터 벌써 영원한 생명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비극적인 세월호 대참사 와중에도 우리는 자신의 생명보다 이웃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겼던 의인들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이 존재함을 확증하는 구체적인 표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깊은 슬픔을 내 슬픔으로 여기고 같이 부둥켜 안고 눈물흘리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현존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징표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