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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1 조회수877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5월 11일 부활 제4주일

  

 

The sheep follow him,
because they recognize his voice.

(Jn.10,3)

 

 

 

제1독서 사도 2,14ㄱ.36-41
제2독서 1베드 2,20ㄴ-25
복음 요한 10,1-10

 


"당신의 이야기를 기분 좋게 들어 드리겠습니다. 10분에 1달러.”

미국의 한 청년이 낸 실제 광고 문구였습니다. 이 광고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이 광고가 나간 지 수십 분 만에 신청이 쇄도해 청년은 단시간에 많은 수입을 얻었다고 합니다. 들어주는 사람을 찾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더욱 더 집중하고 있거든요. 자신의 속사정을,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비밀 등을 들어줄 누군가를 원하는 우리들이 아니었을까요? 하긴 저 역시 듣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조리 있게 말하지 않으면 졸리기도 하고, 그래서 듣는 척 하면서 다른 행동들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잘 들어주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습니다. 그 누구도 잘 듣지 않는 내 말을 들어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한 듣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존경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의 어떤 목소리도 다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을 끊어버리면서 당신의 이야기만 풀어 놓지 않습니다. 혹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그 기도를 끊으신 적 있으신 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좋으신 분이고, 사랑 가득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님을 따르고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은 어떠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다 들어주시는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잘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고, 주님의 멋진 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인 동시에 성소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자신들의 생활에 따라 구체적인 부르심을 주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세상의 가치만을 존중하고 우선시 하다 보면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특별히 오늘은 점점 세속화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일을 맡아서 해야 할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의 증진을 위해 기도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이 말씀에 근거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소 계발과 육성에 관심과 기도를 함께 하는 날인 것입니다.

각자 받은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는 오늘이 되어야 함과 동시에,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뜻에 맞게 주님의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도록 더욱 더 마음을 모으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열쇠이다.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찬양받을 만한 사람은 가장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 사람이다(슈바이처).

 

다리를 잃은 남자가 얻은 것(인터넷에서 퍼온 글)

어떠한 상황도 포기하고 주저앉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넘어설 때, 우리에게는 커다란 선물이 희망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글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감동이었지요. 이 글을 통해 희망은 우리 눈 너머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즉, 지금 현재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아래는 미국 워싱턴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사랑을 키워가는 댄 버신스키 중위와 레베카 태버 씨의 이야기입니다.

남자에게는 젊고 아름다운 전문직 여자 친구가 있었다. 예일대 시절 학생회장까지 맡았던 그녀는 지적이고 얼굴도 예뻐서, ‘예일대의 나탈리 포트먼’ 으로 불릴 정도였다. 남자는 아프간으로 떠났고, 탈레반과의 교전이 치열한 아르간다브 계곡에서 땅 속에 묻혀 있던 지뢰를 밟고 두 다리를 잃었다.

처음 남자가 워싱턴의 병원으로 후송되었을 때, 그의 가족들이 여자 친구의 방문을 막았다. '서로를 위해 빨리 잊으라.' 는 것이 이유였다. 남자의 상태는 여자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오른쪽 다리의 엉덩이 아랫부분부터 없었고, 왼쪽은 넓적다리 부분만 약간 남아 있었다. 그러나 먼저 간 동료들을 애도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남자를 보면서 여자는 그가 '미래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 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친구와 가족들은 "동정과 사랑을 혼동하지 말라" 며 그녀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돌보기 위해 잘나가는 직업도 포기하고 업무량이 적은 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둘은 현재 워싱턴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나를 얻었으니, 결코 손해 본 것이 아니다.“

잃기만 하는 인생은 절대로 없음을 이 부부를 통해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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