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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적자유의 여정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2 조회수863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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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12.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사도11,1-18 요한1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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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자유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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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자유의 여정입니다.

진정한 삶은 살아갈수록 자유가 확대되는 자유의 여정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자유로워지는 내적자유의 여정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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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없이는 자유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자유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자유로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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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찾는 여정은 그대로 자유를 찾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내적으로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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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자유는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찾아 삶의 진상을 깨달아 알아갈수록 치유와 더불어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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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어느 상담치유사의 다음 인터뷰내용이 공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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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과 구조를 샅샅이 밝혀내는 일에 나서는 것입니다.

해경, 청와대, 안전행정부, 국회의원, 협회,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 언론사와 언론인들, 일베 등

이 참사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요구해야 합니다.

나치를 척결하듯 집요하게 끝까지요.

꼭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진행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떼죽음으로 몬 이 끔찍하고 추악한 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집단살인에 가담한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를 장악하는 세상에서

생존자와 유족들은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런 독소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치유의 본질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1 대 1 심리상담을 1천 시간 하는 것보다 1만 배는 더 치유적인 일입니다.

그거 외면하고 심리치유 센터를 짓고 심리치유 사업비 1천억원을 들인들 아무 의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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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알아들었지만 과격한 정치적 주장처럼 듣는 사람도 있겠어요."

-그렇지 않은 거 잘 아시잖아요.

유가족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완전히 달라졌다면

‘고맙다. 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네 동생이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산다’

이런 맘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만 아이를 편안하게 놓아줄 수 있어요.

마음의 이치이고 치유의 근본 법칙입니다.

정치적 주장이 아니에요.

'치유자는 근본적으로 무당과 비슷하다는 그녀의 지론이 새삼 와닿았다.

나치 척결하듯 독소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그녀의 치유적 해법이 근본적이라는 데

우리 둘이는 김 한 장 차이도 없이 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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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원인이 제대로 밝혀져 알아야 피해자의 용서와 치유도 가능하고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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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찾는 이들에게도 이런 보복이 아닌

기본적인 정의의 실현은 진정한 치유와 자유의 선결조건입니다.

하여 진정한 자유는 값싼 자유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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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내적자유의 확대과정을 보여줍니다.

다음 주님과 베드로의 문답 내용을 통해 베드로의 환시체험 중,

그의 내적갈등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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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야 잡아 먹어라."

"나는 '주님, 절대로 안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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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된 다음에

환시 중에 본 짐승들이 담긴 그릇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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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깨달음을 통해 베드로의 하느님 관은 한없이 깊고 넓어졌고,

내적자유 역시 크게 확대되었으며 이방인에 대한 선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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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자유로운 이들은 성속 이원론을 넘어섭니다.

그 무엇이나 하느님이 지으신 거룩하고 깨끗한 것들이요

그 어디나 하느님 계신 거룩한 땅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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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아갈수록 점차 자유로워져가는 우리 삶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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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자유의 정점에 서있는 착한목자 예수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의 자유에 도달한 착한 목자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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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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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할 때 알게 되고 자유로워집니다.

모든 양 떼가 하느님 사랑의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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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자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인류를 품에 안을 정도로,

또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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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님의 '사랑-앎-자유-목숨을 내놓음'이 연쇄고리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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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주님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 내적자유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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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

(시편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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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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