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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2 조회수1,468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5월 12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I am the Good Shepherd"
A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Jn.10,11)
 
 
제1독서 사도 11,1-18
복음 요한 10,11-18
 

어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직접 운전을 하시고 떠나는 가족 여행이었지요. 그런데 이 여행 중에 커다란 교통사고가 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께서는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이 점을 두고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운전대를 돌려서 운전사보다는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더 크게 다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운전대를 전혀 돌리지 않고, 자신의 몸 쪽으로 직접 부딪쳤던 것입니다.

가족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의 본능을 뛰어 넘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전혀 사랑하지도 않고 어떤 특별한 사명심도 있지 않는데 과연 자신의 본능을 역행하는 행동이 쉬울까요? 더욱이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팽배한 세상입니까?

이 세상은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등으로 인해서 다른 이들에게 커다란 아픔과 상처들이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행복한 세상일까요?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늘나라의 또 다른 모습일까요? 내가 중심이 아닌, 남이 중심인 사회.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닌, 함께 어울러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늘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이가 바뀌는 것이 아닌, 바로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모범을 당신 스스로 보여주십니다. 바로 ‘착한 목자’의 모습입니다. 목자의 주 임무는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양들을 잘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목자들은 대부분 주인의 양들을 대신 돌보고 있을 뿐이었지요. 따라서 그들은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이리가 나타나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재산 때문에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희생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삯군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시지요. 허풍으로 착한 목자인 척 하는 것이 아님을 자신에게 맡겨진 양들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놓음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즉,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면서도 우리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인 예수님은 그래서 착한 목자이신 것입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범을 따라 우리도 그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나와 상관없는 이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이웃임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나의 이웃에게 ‘착한 목자’의 모습으로 다가서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에게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세상의 흐름을 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모습을 쫓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당신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집착을 선택할 것인지 그것을 버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당신입니다.(안소니 드 멜로)


 

사랑의 말을 합시다.

한창 정치 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루즈벨트는 39세에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보행이 곤란해졌습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가 방에서만 지내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어느 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뜻하지 않은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아내의 말에 루즈벨트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지금까지는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이 말에 루즈벨트는 용기를 얻었답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 그는 장애인의 몸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경제공황을 뉴딜정책으로 극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아내의 말 한 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바꾼 것입니다.

나의 말 한 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할까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 바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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