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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원준 박사님의 구약성경과 신들/ 제23강 모세와 길가메쉬의 가시나무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6 조회수1,490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원준 박사님의 구약성경과 신들/제23강 모세와 길가메쉬의 가시나무


안녕하세요? 한님성서연구소의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성호경 바치고 강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가시나무

 

자,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그리고 집에서 TV를 시청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예, 오늘은 가시나무에 대해서 다루는 첫 시간입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지금까지 여러 가지 강의 주제를 다루었는데 가시나무는 이제 마지막 주제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 긴 강의의 마지막 주제를 다루는 시작에 앞서 지금까지의 강의를 조금 되돌아

보는 시간을 처음에 갖고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강의의 핵심은 우리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바를 평신도, 우리 일반인들과 함께 나누고

자 하는 것입니다. 조금 쉽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래서 그리스도교 교양을 조금 늘리도

록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책의 내용을 하나 하나 지금 설명해 드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 강의를 통해서 왜 우리 신앙인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그리고 고대 근동의 신들

에 대해서 그들의 주변 나라의 종교에 대해서 알아두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우리 신앙에

얼마나 유익한지 등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양을 쌓는 일이 이러한 교양은 물론 구약성경의 배경에 대한 거는 이 책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더 많이 쌓으면 좋겠죠. 교리와 교회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그거와 관련된 모든 주변 것들을 풍부히 알아 놓으면 우리 천주교가 이제 5백만 신자시대,

그리고 선교 3백 년 대를 행해서 교회와 사회에서 더 큰 역활을 요구하게 되는데, 거기에

좀 알맞는 준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알다시핀 일방적 선교의 시대는 갔습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선교해서 좋은 결

과가 나오는 시대도 아마 지난 거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도 잘 알지만 우리 주변, 관계되는

것들을 좀 깊이 알아서 충분이 대화하는 가운데서 선교를 해야지 무리도 없고 선교가 잘 된

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지요? 또 그렇게 깊은 대화, 종교간의 대화, 아니면 문화와의

대화, 사회와의 대화, 역사와의 대화, 이런 걸 통해서 우리 교회가 우리나라에 더 깊이 뿌리

를 내릴 수 있다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구약성경의 하늘이라는 주제를 보았고, 달신이라는 주제를 보았고,

바람신도 보았고, 강의 신도 보았고, 그리고 피의신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여러분들

한테 이익이 되도록 제가 2번 정도 특강도 집어 넣었는데요. 이제 마지막 시간에 우리가 가

시나무를 보겠습니다. 이 가시나무는 세 번에 걸쳐서 말씀드릴텐데요. 지금까지 공부하셨던

모든 것이 다 다튀어나옵니다. 이제.

 

고대 근동의 이야기, 성경 밖의 이야기, 그리고 이 가시나무는 유일하게 성경시대가 끝난 다

음에 교부시대까지도 제가 조금 언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총정

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종합 정리의 시간으로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가시나무는 특히 구약성경 뿐이 아니라 신약성경에서도 핵심적인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요번 시간에는 첫 시간이니까 두 가지 이야기만 드릴려고 합니다. 하나는 탈출기 3장에서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을 보았을 때 이야기를 하나 드리고요. 그 다음에는 길

가메쉬 서사시, 아마 길가메쉬 서사시를 여러분이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그 내용을 잘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아서 이것도 역시 우리 신자의

교양으로서 꼭 알아야 된다 생각해서 제가 이번 시간 후반부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천천히,

거기에 무슨 뜻이 들어 있기래 사람들이 길가메쉬, 길가메쉬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시나무가 히브리어로 뭔지는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시나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가 그런데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어요. 일단 이거

말고도 몇 단어가 더 있는데 대표적인 단어로 세 개가 있습니다. 첫째 단어는 '스네:'라고

하는데요. '스네'라고 해야 되는데 네 다음에 점(:)이 있죠? '네'가 길어요. 장음이예요.

스네 하시지 말고 스네- 길게 두 번째 음절을 끌어주시면 좋습니다.

 

두 번째 단어는 '아타드'라는 단어인데요. 이거는 '아타드' 평소처럼 발음하시면 되요.

다 길기는 한데 눈에 띄지는 않으니까 '아타드'. 세 번째로는 '스바크'. 이렇게 하나의

나무에 여러 개의 이름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은데요. 이게 상징

세계를 서로 공유하는 나무이고요.

 

좀 알아두셔야 될 것은 상식적으로 고대의 식물학 하고 현대의 식물학 하고 달라요. 조금

있다가 제가 자세하게 말씀드릴테지만 옛날에는 고래를 물고기라고 생각했잖아요. 바다에

살고, 지느러미가 있고 이러니까. 그런데 사실은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죠. 포유류죠. 그거

는 현대 지식이 밝혀 낸 거고, 옛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는데 식물학도 마찬가지예요.

 

현재는 아주 체계적으로, 과학적으로 분류해서 식물을 다 분류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사람

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가시가 달렸으면 그냥 가시나무로 이렇게 모으고 이런 식으로

외향에 따라서 분류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 너무지만 실제로는 가시나무를 이렇게

분류하는 게 맞다고 하고요.

 

실제로 성서 식물학이라는 책을 보면은 이 나무들을 하나의 항목에서 다뤄요. 왜냐하면

성서 안에서는 이렇게 세 가지 나무지만 하나의 나무로 다뤘기 때문에. 특히 첫 번째 나무

는 우리 지금 성경에서는 떨기나무로 번역하는 나무인데요.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부

터 하나씩 천천히 보겠습니다.

 

우선 처음으로 말슴드렸듯이 모세가 처음 하느님을 뵐 때, 하느님이 모세에게 처음 나타나

실 때 장면을 고대 근동의 가시나무신을 보면서 볼려고 하는데요. 우선 여러분 잘 아시겠

지만 모세가 누구인가를 봐야 됩니다. 이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 장면인지를 인식하기 위해

서 모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가를 봐야 되는데요. 모세는 다 아시죠?

 

그런데 모세는 구약성경에서 이런 질문을 하면 여러분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구약성경

의 주인공이 누구죠? 하느님이시죠. 성경의 주인공은 당연히 하느님이신데, 그러면 하느님

을 빼고 가장 중요한 인문을 구약성경에서 뽑으라면 누구일까요? 모세가 될 거예요. 아마.

그 정도로 모세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고요. 어쩌면 우리가 하느님 다음으로 구약성경 안

에서만 보자면, 물론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이시고. 하느님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아

닐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오경이라고 여러분 알고 계십니다. 모세오경이 다섯 권이라는 뜻이죠. 모세의 다섯 권

의 경이라는 뜻인데 잘 아시죠? 첫째 권은 창세기, 둘째 권은 탈출기, 세째 권은 레위기,

네째 권은 민수기, 다섯째 권은 신명기죠. 창세기에는 모세 이름이 안 나와요. 그런데 나머

지 네 책은 모세의 생애와 일치해요.

 

탈출기, 두 번째 책이 시작할 때 태어나는 인물이 바로 모세죠. 모세가 태어나면서부터 탈출

기가 시작을 해서 모세가 어떤 대표적으로 한 일이 뭐냐 하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이스라

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거죠. 그게 바로 탈출기에 나오고요. 이끌어 낸 모세는 시

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었지요.

 

그래서 계약을 맺은 게 탈출기에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모든 법령들이 레위기에 나오고,

그리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디로 갔죠? 광야로 갔죠. 그래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헤메면서 또 그런데 광야의 이야기는 민수기에 또 잘 쓰여져 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가 아, 인제 가나안 땅을 바로 목전에 두고 하느님이 "너는 들어가지 못한다" 하실 때

맨 마지막에 자기 인생을 다시 돌아보면서 탈출기부터 시나이 산 계약도 다시 한번 이야기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의 유언을 남긴 책이 바로 신명기죠.

 

그리고 신명기가 끝나고 모세가 돌아가시죠. 이렇게 보면 모세가 모세오경에서 얼마나 중

요한 인물인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하면 탈출기에서 모세가 태어나서, 이집트를

탈출하고 계약을 맺은 이야기고, 레위기는 모세가 전해준 법전을 다시 한번 잘 정리해서

모아 놓은 책이고, 민수기는 탈출한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한 이야기예요.

 

광야는 여러분들이 이름에서도 아시겠지만 아무것도 기댈 데가 없는 곳이예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생활에서의 때를 벗고 다시 하느님을 만나는, 순수한 정화하는

그런 공간을 지나간 것이죠. 광야가 이렇게 아, 우리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우리 동양식

으로 말하면 저 산골 깊은 데 들어가서 오직 하느님만 만나면서, 기도하면서 정화되는 공간.

 

그런 이 광야의 표상은 사실은 신약성경에도 이어지죠.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선포하셨고

예수님도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을 거치셨고, 단식하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명기는

말씀드렸듯이 모두 모세가 한 이야기이고, 모세가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긴 곳입니다.

 

자, 이렇게 중요한 모세이죠. 그리고 모든 예언자들이 전부 모세를 따라 할려고 그랬어요.

모세는 예언자들의 원형이죠. 모든 사제들이 구약성경에서 모세를 따라 할려고 그랬어요.

이렇게 구약성경의 큰 그림자를 드리운 모세인데 과연 모세가 초최로 하느님을 만날 때는

어떠하였나? 이 주요한 인물을 하느님이 최초로 선택하실 때 어떠하였나를 우리가 지금

부터 보겠습니다.

 

모세가 처음으로 하느님을 직접 뵌 것은 탈출기 3장에 나옵니다. 우리는 잘 알듯이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모세가 하느님을 뵈었다. 떨기나무기 있는데 모세가 보니까 불이 붙어 있었

어요. 이거 어떻게 불을 꺼야 하나? 사막은, 광야는 이따 사진을 보여드리겠지만 나무가 적

어요. 조그만 나무라도 되게 귀중한데 거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어떻게 할까? 불을 꺼야

하나? 굉장히 특이한 일이죠.

 

눈으로 보는데 이게 불 붙었는데도 뜨겁지도 않고 좀 이상한 불이예요.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모세가 거기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고 어떻게 했냐 하면 신을 벗고 경건함

에 휩싸였어요.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느님은 여기가 거룩한 땅이다라고 말씀

해 주셨어요. 친히. 그리고 모세는 결국 얼굴을 가렸어요.

 

*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모세가 하느님을 처음으로 만난 곳은 '불붙은 떨기

   무'였다. 불이 붙었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 주변은 하느님이 현현하신 지극히 거룩한

   장소였다. 모세는 이 거룩한 곳에서 신을 벗고 예를 갖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얼굴을 가렸다는 건 이 시간에 여러분들한테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경외심에 휩싸

여서 그래요. 경외심은 공경할 경(敬)자에다가 두려워한다는 외(畏) 자예요. 공경하면서도

두렵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뵈어서 너무너무 좋은데 실제로 또 뵈면은 좀 무섭잖아요. 내

스스로 두려워지고, 나의 죄도 생각나고, 또 그러면서도 물러나기는 또 싫어요.

 

왜냐하면 하느님이 또 우리의 주님이시니까. 그런 아주 복잡한 고도의 마음이 있어요.

인간만 느낄 수 있고,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 종교인들이 종교를 초월해서 자기가 경외의

대상으로 삼는 거는 한 번쯤 체험해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경외감인데 모세는 이때 경외

감을 가졌던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다 공통적인데요.

 

다른 종교 믿는 사람들도 얼추 그런데 그런 경외심의 대상을 직접 만나면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보게 되요. 신을 벗는다든지, 아니면 공경한다듣지, 아니면 허리를 숙인다든지 하는

행동을 저절로 하게 되요. 모세는 거기서 얼굴을 가렸어요. 우리는 이 모세의 행동을 보고

아, 모세가 굉장히 어떤 최고조의 체험을 하였다. 이런 걸 알 수 있죠.

 

이 경외감을 우리가 아직 느껴보지 못했지만 경외감 비슷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어요.

그 가질 때가 언제냐 하면은 사랑에 빠졌을  때 그럴 때가 있어요. 짝사랑하는. 여러분이

여고생이나 여중생 시절 때 굉장히 짝사랑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거기서 안절부절 못하면

서도 또 거기서 빠져 나오지도 못하고 옆에 있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요.

 

어쩌면 자기가 늘 보고 싶었던 훌륭한 작품이 한국에 온다. 어떤 그림이 온다. 그러면 그림

앞에서 또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어요. 자기가 모니라지를 평생 보고 싶었는데 정말 어렵

게 어렵게 파리에 가가 지고 진짜 모나리자를 내가 직접 봤을 때 어쩌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감정 비슷한 거를 느낄 수가 있고, 어쩌면 돌아가신 아버지나 어머님이 남기신

유품을 정말 정말 오랫만이 찾아서 그분 손때 묻은 것을 내가 정말 찾았을 때 느꼈던 거 같

애요. ?모세는 아마 그런 마음을 여기서 느꼈던 거 같애요.

 

그런데 그런 마음들을 느꼈을 때 어떻게 묘사를 하고 있는지 탈출기 32장 2절에서 6절을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한번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탈출 3,2-3: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가시덤불)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

  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시덤불)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

  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떨기나무가 있는데요.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불꽃이 솟았어요. 거기서부터 그에게 나타

났어요. 나무가 타면 떨기는 관목 같은 거니까 금방 타 없어져야 되는데 나무가 그대로 있

는 거예요. 희안한 일이죠. 하느님이 그냥 "야, 모세야! 이리 오너라." 하고 부르신 게 아니

라 뭔가 모세의 호기심이랄까? ?모세의 관심을 끄신 거예요. 저게 뭐지? 라고 하면서 지금

하느님이 모세한테 한 발짝 이리 와 볼래? 하고 살짝 뭔가 보여 주신 것이죠.

 

어찌보면 하느님이 그렇게 사람을 부르실 때가 있어요. 직접 예수님이 부르신 것처럼,

"야, 너 따라와라." 딱 따라갈 수도 있고, "야, 저게 뭐지?" 하고 살짝 관심을 가졌다가 코가

꿰일 수가 있는 거지요. 그런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쨌든 모세는 여기서 호기심을 가지

고 뭔가 의아한 생각을 했어요. "왜 저 떨기가 타버리지 않을까?"

 

* 탈출 3,4-6: 모세가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

 

하느님은 이제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내가 누구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

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니까 모세는 그때서야 "아이고, 진짜 하느님이시구나!" 해서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가렸어요. 자연스러운 행동이죠.

 

자, 이제 가시나무에 대해서 볼 거예요. 여기서 우리 천주교 성경도 그렇고, 개신교 성경

도 그렇고 이 나무를 떨기나무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한국의 독자는 이제 떨기나무다 했

는데 이런 번역은 어쩔 수 없어요. 두 나라 말이 틀리니까.

 

* 천주교 '성경'과 개신교 '표준새번역'은 모두 가시나무를 '떨기나무'로 옮겼다

 

떨기나무라고 하면은 이게 고대의 식물학인데요. 우리 표준국어 대사전에 떨기나무를 찾

아 봤어요. 떨기나무가 뭐라고 나와 있냐 하면은 관목이라고 나와요. 관목이 떨기나무예요.

그래서 관목을 찾아보면 어떻게 되어 있냐 하면, 관목은 한자 말이고 우리 순수한 우리 말

이 떨기나무기 때문에 떨기나무로 순화한다. 이렇게 써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관목이라고 쓰셔도 틀린 말은 아닌데, 순수한 우리 말이 떨기나무가 있으니

까 떨기나무라는 말을 쓰시는 게 좋다라는 것이고, 우리 성경은 떨기나무로 번역을 한 것

이죠. 그래서 영어 성경이나 불어 성경도 볼까요? 덤불, 부쉬(bush) 아니면 불어에서 부이

송 이게 다 bush라는 뜻이예요. 덤불. 그러니까 떨기나무, 관목 그러면 여러분이 회양목

같은 거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개나리 같은 거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다 관목이죠. 영어

로는 bush예요. 덤불 같이 이렇게 이렇게 되어 있는 거.

 

그런데 아, ?이게 역시 고대 식물학 하고 우리 식물학 하고 달라요. 독일어 번역본 보니까

영어나 불어에도 다 덤불이라고 되어 있는데 독일어 번역본은 돈부쉬라고 되어 있는데요.

Dornbusch. Dorn이 뭐냐 하면, '가시'예요. 가시덤불이라고 되어 있어요. 제가 처음에 이

연구를 여기서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게 어떤 나무인가? 관목이다. 회양목이다. 이렇

게 생각을 했는데 독일어 성경은 가시덤불이라는 거예요. 가시떨기. 이게 가시가 있나?

 

그래서 독일어 성경을 보니까 가톨릭에서 쓰는 독일어 공동번역 성서, 그 다음에 개신교

에서 사용하는 루터 번역 성서 모두 Dornbusch라고 되어 있어요. 가시덤불이라고. 그리고

다시 저는 성서학자니까 다른 성서 번역본이 많이 있거든요. 요새는 컴퓨터로도 나오고.

찾아보니까 일부 영어 성경이나 불어 성경 번역본도 가시를 살려서 번역한 게 있더라고요.

 

이게 가시가 뭘까? 생각을 해 봤지요. 여기서 아까 잠시 말씀드렸던 고대의 식물학을 한번

얘기를 잠깐 드려봐야 되겠어요. 우리 인간은 모든 사물을 분류해서 인식을 해요. 그건 아

주 자연스러운 거예요. 어린아이들도 이게 식물인지, 동물인지, 사람인지를 금방 구별을

하잖아요. 옛날 식물학이나 동물학은 지금하고 많이 달라요. 잠시 말씀드렸지만 고래는

물고기의 일종으로 우리가 생각을 했었지요. 고래가 포유류라는 걸 안 거는 정말 최근의

일이죠.

 

거미는 거미과라고 해서 우리가 여섯 개 발 달린 곤충과 다르다고 생각 했지만 옛날에는

거미가 그냥 곤충의 일부라고 사람들이 생각했죠. 뱀하고 지렁이는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

을 하지만 옛날에는 비슷한 놈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뱀이나 지렁이나 다 이렇게 길고 땅

을 기어다니니까, 이게 크면은 뭐 뱀이나 하여튼 비슷한 과라로 생각을 한 거죠.

 

이런 생각을 사실은 우리가 지금도 조금 해요. 어떤 사물의 외향만을 보고 거기의 본질이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서 콩나물을 보고 키가 정말 빨리 크나? 콩나물이 쑥쑥 크니까 내

가 그걸 먹으면 쑥쑥 클꺼야. 뭐 그렇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겠죠. 예를 들

어서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그러잖아요. 뇌처럼 생겼다고 해서. 호두가.

 

그런데 그거는 호두가 뇌처럼 생겨서 그런 게 아니라 호두의 어떤 성분이 정말 뇌에 좋기

때문이고, 콩나물을 먹으면 키가 크는 것도 콩나물의 어떤 성분이 아이들한테 좋기 때문

이지 콩나물이 단순히 키가 빨리 큰다고 해서 몸에 좋은 게 아니죠.

 

그런데 이게 우리는 지금 콩나물이라든지, 호두 얘기라든지 이런 게 비과학적이라고 생각

할 지 모르지만 비과학적인 건 아니예요. 인간의 인식 체계가 그렇게 작용을 하거든요. 그

래서 호두 먹으면 머리 좋아진다는 말도 호두의 어떤 복잡한 성분이 좋아진다가 아니라 뇌

하고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그게 먹히잖아요. 다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그거하고 비슷하죠.

 

성경에서는 이 말을 가시떨기로 쓴 거 같애요. 그리고 여기는 가시가 분명히 있어요. 이번

시간 세 시간에 걸쳐서 말씀드릴테지만 이게 가시덤불이라는 면이 굉장히 중요해요. 신약

성경에서 특히 알 수 있는데요. 왜 하느님께서 하필이면 이 가시가 있는 덤불, 이 덤불에

보면 가시가 있잖아요. 그래서 가시 사이로 새들이 숨고  우리 인간은 잘 들어갈 수도 없고

그래서 울타리로 많이 만들고 하는 그런 가시덤불에 하느님께서 왜 처음 나타나셨을까?

 

여기에 대해서 지금부터 천천히 말씀드릴텐데 떨기나무에 가시가 있다는 것은 이번 시간

을 통해서 여러분이 잘 알아두시기 바라고요. 이 가시가 지금부터 말씀드릴테지만 성경

이전 시대부터 고대 근동에서는 매우 중요한 표상이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

들에서도 가시는 매우 중요했어요. 신을 상징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이곳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가시는 매우 주요하고 심지어 신

약성경에서도,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가시관을 쓰셨는지에 대해서도

말슴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교부시대를 지나서 이 가시가 얼마나 우리한테 중요

한 상징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릴려고 해요.

 

* '가시'는 고대 근동 신화에서 상징성이 큰 낱말이고 구약성경의 하느님에서 출발해서

  신약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수난으로 직결되는 종교. 신학적 상징어이기 때문에 매우

  주요한 표상이다

 

우선 첫 번째에 보실 것은 시나이 반도예요. 잠깐 여러분한테 모세 산 올라간 얘기를 해

드릴께요. 모세가 하느님을 뵈었던 그 시나이 산. 여러분 여기서 성지순례 가보신 분도

알겠지만 성지순례 앞으로 가시면 꼭 올라가보셔야 될 산이 이 산인데 ?모세가 하느님한테

40일 동안 있다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그 산이죠. 게벨무사(Gabal Musa). 아랍어로 모세

산이라는 뜻이예요.

 

 ?

 

이 모세 산 바로 옆에 카타리나 수도원이 있어요. 모세는 여기서 40일을 단식했다고 하는

데요. 저도 올라가 봤는데 여기 참 올라가기 어려워요. 이런 악산이예요. 바위산. 여기 이

제 떨기나무 같은 게, 조그만 식물들이 사이 사이에 아주 조금 있고 나머지는 이제 거의

없죠. 생물이 없는 굉장히 힘든 산이죠. 예전에 이 산을 모세가 혼자 올라가기는 정말 어려

웠을 거예요. 그런데 현대에는 성지순례객과 관광객을 위해서 다 길이 나 있어요.

 

 ?

 

그래서 보통 어떻게 오르시냐 하면 밤 12시에 오르기 시작하셔서, 밤새 올라서 정상에서

일출을 보시죠. 나중에 꼭 한번 보세요. 모세가 그 일출을 40일을 보시고 이제 뭔가 깨달

음을, 하느님한테서 뭘 받으셨다 이건데요. 실제로 이 산이 모세가 있었던 그 산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곤 하는데 지금은 일단 많은 사람들이 모세 산이라

고 해서 가는 것이죠. 밤새 산을 오르고 그 다음에 똑 가야 되는 게 이 산 밑에 있는 카타

리나 수도원이예요.

 

 

 

산 바로 밑에 보이시죠? 수도원이 있어요. 여기는 수사님들, 신부님들이 살고 계신데

정교회분들이세요. 이 정교회분들이 사시는 이곳은 성경 본문이 발견된 곳으로서 가장

오래된 성경 본문 중에 하나가 여기서 발견 되었기 때문에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해요.

수도원에 계속 사시면서 성경을 계속 옮겨 쓰시고 보관하시고 그러다가 굉장히 오래된

성경 두루마리가 여기서 발견되었고 실제로 여기 도서관에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그

옛날 고대 문헌들이 있고 하는지 우리가 잘 모를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수도원이예요.

가기는 좀 어렵고, 가도 별건 없긴 한데. 여기보시면 이 나무가 있어요.

 

 

 

이 나무가 모세가 봤던 그 떨기나무와 같은 떨기나무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그 떨기나무

의 씨앗이 뿌려져 가지고 지금까지 왔다. 더 심하게 믿는 사람들은 그 떨기나무가 아직도

죽지 않고 이렇게 있다고 하는데, 그거는 우리가 믿기는 힘들고요. 비슷한 곳이니까 아마

비슷한 종류의 떨기나무가 이것이 아니겠나 싶은 거죠.

 

이 떨기나무가 이제 하느님이 나타나시던 그 떨기나무와 비슷한 떨기나무다. 아니면 거의

같은 떨기나무다라고 우리가 믿기 때문에 카타리나 수도원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일단

들어간 사람들은 이 떨기나무에 대해서 굉장히 높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

서 한번 묵주기도를 한다든지, 최소한 영광송이라도 한번 바치고 나올려고 하는데,

 

그분들이 하시는 일이 또 뭐냐 하면은 이 떨기나무 나무 한 조각이라도 가져가려고 하는

거예요. 혹시 이걸 가져오면 애 못 낳는 여자가 애 낳는다든지 뭐 이렇게 생각하나 봐요.

하여튼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런 마음 자체를 우리가 탓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이게

지금 높은 데 있어요. 사람들이 하도 뜯어 가가지고 점프를 해서 닿아야 되요.

 

그래서 저도 이 사이에서 서 있다가 남들이 점프해서 이렇게 가져오기에 저도 펄쩍 뛰어

가지고 잡았어요. 그런데 정말 제가 피가 났어요. 왜냐하면 가시가 있는 걸 몰랐어요. 저

는 그전에 이게 떨기나무라고 그래서 관목이잖아요. 지금 보기에. 그래서 이게 무슨 개나

리 같은 뭐 이런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진짜 해보니까 가시가 있더라고요. 꽤 날카로워서 피가 났어요. 그래서 좀 아팠는

데, 조그만 이파리 하나도 아나고 3분의 1쪽 갖고 와서 체 책 사이에 끼어 넣었어요. 이

정도면 됐다고 그러면서 한 적이 있어요. 분명히 가시가 있어요. 이 가시가 있는 걸 독일

사람들은 반드시 가시가 있다는 걸 살려서 번역을 했어요. 그리고 그것을 여러분들이 잊

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죠.

 

이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여러분들이 한번 더 생각하셔야 되는 건 성경을 대하는 태도예요.

이 수도원에 들어가시는 그 수사님들, 신부님들은 평생동안 성경 말씀을 읽고 거기에 관련

된 책들, 반드시 성경이 아니더라도 옛날 그 예언자들이 남기신 말씀이나 아니면 우리가

외경이라고 하는 거룩한 책들 있지요? 이런 것들을 다 이렇게 필사하시면서 오랫동안 남

기셨어요.

 

거의 그 문서를 보관하고 하는 게 수천 년 동안 여러 사람들이 목숨을 걸면서 여기서 살았

기 때문에 그 많은 문헌이 지금 우리한테, 물론 소실된 것도 많지만 많이 남아 있고, 우리

가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던지 할 수 있는 거예요. 그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해요. 여기는 수많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갔고, 자연 재해도 많았고 하는

데 이 자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계속 지키면서 사셨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나온 문서들이 다른 책으로 나오고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그

훌륭한 성찰들, 굉장히 깊은 깨달음들을 우리 말로 번역을 해야 되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런 번역하는 일은, 저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하고 있고 다른 데서도 하고 있어요. 교부

학회에서도 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까지 한국 천주교회에 관심이 적은 분야예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좀 이 사업의 중요성을 좀 알아주시면 좋겠고, 실제로 읽기는 조금

지루하죠. 옛날 책들이고, 종교서적이니까. 하지만 천천히 들고 읽으시면 정말 정말 깊은

성찰들이 많이 들어 있는 책들이거든요. 어쨌든 그렇고요. 떨기나무가 나왔을 때 이제 여

러분, 여담으로 신앙생활을 좀 도움이 되는 거라면 여러분 주일 학교에서도 많이 하시고,

성경 각 모임에서도 많이 하시는데 자기 인생의 떨기나무를 한번 찾아 보세요.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고, 이집트인을 때려 죽이고, 도망 가고, 결혼해서 광야에서

살고 이렇게 험난한 인생을 살다가 떨기나무를 하나 보고, 주님이 자기를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고 자기 인생이 바뀌었잖아요. 자기 인생에서 떨기나무는 뭔가? 이런 걸 한번 이런

얘기 나올 때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고,

 

떨기나무가 바뀌기도 해요. 예를 들어서 10대 때 나의 떨기나무는 무엇이었나? 내가 연예

인이 되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좋은 대학을 갈력 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걸 위해서 살았

는데 20대는 뭐였나? 30대는 뭐였나?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고 하느님은 나를 무엇으로

이끌어 주셨나? 내가 그걸 그때 알아들었나? 못 알아 들었나? 어떻게 응답했나? 이런 걸

생각하시면 좋을 거 같애요.

 

일단 그렇게 지식을 배우면서도 그런 성찰을 이렇게 같이 하면서 하셔야지 믿음도 크고

지식도 자라고 이렇게 동시에 둘 다 커야지, 하나만 했다가는 조금 불균형이 오니까요.

 

# 길가메쉬 서사시

 

*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oth)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로 수메르 남부의 도시국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 길가메쉬의

일대기를 노래하였다. 19세기 서남아시아 지방을 탐사하던 고고학자들이 수메르의 고대

도시국가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호메르의 서사시보다

1500년가량 앞선 것으로 평가 된다

 

 

 

자, 이제 제가 가시에 대해서 남은 시간 동안 설명드릴 거는 길가메쉬 서사시예요.

길가메쉬 서사시가 인류 최초의 장편 서사시다. 장편 드라마다라고 하는데 이 시간에 제가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가시가 언제 나오고 그게 가시가 어떤 뜻인가를 말씀드릴려고 해요.

왜냐하면 맨 뒤에 나와서 길가메쉬 서사시 전체를 제가 요약해 드리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 길가메쉬 서사시의 초간단 속성 요약본을 들으시는 거예요. 지금부터 재미

있게. 실제로 읽으면 약간 지루해요. 길어서 하지만 지금부터는 제가 말씀드릴 거예요.

 

제가 구약성경과 신들 이 책에서는 길가메쉬 서사시를 굉장히 적게 다루었어요. 그런데 이

제 강의니까 여러분들께 충분히 길게 말씀드릴 수가 있어요. 길가메쉬라는 큰 영웅의 한평

생 드라마예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되게 재미있어요. 스토리 자체가. 지금 한국에서 보는

드라마나, 헐리우드 영화처럼 스토리는 거의 거기서 다 따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재미있는 드라마예요.

 

우선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냐면요. 길가메쉬라는 영웅이 하나 나와요. 굉장히 힘이 세고,

잘생기고, 멋있고, 키도 남들보다 훨씬 크고 그런 멋진 청년이 나오는데, 문제는 이 청년이

버릇이 없어요. 드라마 보면 그러잖아요. 멋진 애가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데, 처음에

나올 때는 힘은 있고 다 좋은데, 머리도 좋고 다 좋은데 기고만장 하고 이렇게 좀 거친 원석

같은 그런 사람이예요.

 

하도 길들여지지 않고 자기 힘만 믿고 날뛰니까 남한테 피해를 줘요. 그러니까 거기 우루크

성, 같은 성에 있는 사람들의 신한테 기도를 해요. 저 놈 좀 어떻게 해 달라고. 기도 내요이

뭐냐 하면, 저놈을 죽여달라고 못하고 저놈하고 비슷한 놈을 만들어 놔서 저놈을 좀 견제하

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요. 그래서 신들이 하나를 만들어 줘요. 정말 길가메쉬와 비슷할 정

도로 힘이 센 놈. 그게 누구냐 하면 엔키두라는 사람이예요. 엔키두. 이름이 좀 이상하죠?

 

* 천방지축인 우르크의 지배다 '길가메쉬'를 징벌하기 위해 신들은 그에 대적할 '엔키두'를

  만들어 내는데 ...

 

 

 

길가메쉬와 그의 친구 엔키두. 엔키두라는 사람을 만들어요. 그래서 둘이 딱 보자마자 서로

를 알아봐요. "야, 너구나!" 그래서 둘이 한판 붙는데 한판 붙고 나서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

분 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드라마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관이 없고 비슷해요. 둘이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요. 마치 삼국지에서 서로 장수들끼리 알아보는 거 있잖아요? 그거 비슷해

요. 둘이 그래서 입을 맞춰요. 남자들끼리.

 

그 당시에는 이게 이상하지 않은 거 같애요. 이게 문화적인 차이인데 이걸 보고 둘이 동성애

했다. 이런 거는 조금 오버한 거고, 거기 문화적으로 남자끼리 입맞출 수도 있는 거예요. 그

래서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돼서 평생을 같이 하게 되요. 힘세고 잘난 청년 둘이서.

 

* 하지만 둘은 싸움 끝에 절친한 친구가 되고 ...

 

이 둘의 힘을 합치면은 이제 싸움 끝난 거예요. 이 둘의 힘이 엄청 세니까. 힘이 남아도는

기잖아요. 둘이 젊은 청년으로서. 둘이 앉아서 우리 뭐 할까? 뭘 하겠어요? 그 힘을 가지

고? 뭘 하느냐 하면, 저 산에 가면 저 산속에 괴물 하나가 산다. 굉장히 힘이 센 괴물이다.

이 괴물을 한번도 꺾은 사람이 없다더라. 우리가 가서 저 괴물을 꺾자.

 

그런데 이 괴물의 이름이 뭐냐 하면 훔바바. 좀 이상하죠? 괴물 같애요. 훔바바. 후와와라고

도 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질풍노도의 청년 둘이예요. 이 둘이 야, 우리 훔바바를 꺾고 오자.

이거를 꺾고 오면 사람들이 우리를 영웅이라고 생각할거야. 젊은 청년 둘이서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뭐냐 하면, 나라의 골칫거리 적을 하나 없애는 거예요.

 

 

 

그런데 훔바바를 이제 쳐부수자. 저놈을 없애자라고 결의를 했는데 길가메쉬는 주인공이고

엔키두는 그의 친구 조연이잖아요. 엔키두가 하는 말이 뭐냐 하면, "우리가 과연 훔바바를

길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정도로 나 강할까?" 그때 길가메쉬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은,

"죽음이 두려운가?" 이게 그래서 일반 드라마가 아니라 종교적인 성찰이 담겨 있어요.

 

과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고 우리가 영웅이 될 수 있는가? 생사의

고비를 한번 넘지 않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길가메쉬는 "죽음이 두려우면 빠져라.

하지만 우리는 이걸 해야 된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 엔키두는 설득을 당해요.

헐리우드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죠. 보면. 주인공은 꼭 그런 걸 해서 친구들을 다 설득해

가지고 저 외계인들을 무찌르러 나가잖아요. 그러고 나가요. 굉장히 재미있어요.

 

죽음이 무언지, 인간한테 죽음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이 드라마는 이야기해 주고

있어요. 그런데 이 둘은 지금 청년 시기예요. 죽음에 대해서 여기서 끝,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요.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는데 깊이 들어가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내가 죽으면

사후에 어떻게 되는가? 내가 죽고 나면 나의 남겨진 친척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은,

 

"나, 죽음이 안 두려워. 나는 죽음을 넘을 수 있어. 그런 거 아무것도 아냐! 우리 훔바바를

쳐부수러 가자!" 이렇게 얘기해요. 젊었을 때 죽음을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 거 같애요.

젊었을 때는 죽음의 의미를 충분히 모를 수도 있어요. 20대니까. 가장 힘이 셀 때니까.

그래서 이제 지금부터 이 드라마가 진지한 청년 드라마가 되고 있어요. 둘은 이제 여행을

떠나요. 산을 향해서.

 

* 결국 두 젊은이는 괴물 '훔바바'?를 죽이러 산을 향한 여행길에 오른다

 

그런데 가는 길이 조금 무서워요. 그래서 산에서 꿈을 여러 번 꿔요. 그 꿈의 징조가 무엇일

까? 이게 어려운 일을 할 때 친구 둘이 맞닥치는 얘기들이예요. 어떤 친구는 "야,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있어." 어떤 친구는 "할 수 없어." 어떤 징조를 보고 "야, 우리 될꺼야." 그런데

다음 징조를 보고는 "야, 우리 안 될꺼야." 그걸 꿈에서 해석을 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래서 두려워하는 거 같애요. 죽음을 처음에 생각했을 때 죽음은 금방

지나갔는데 두려움은 오래가요. 꿈을 여러 번 꾸고 여행하는 동안 계속 두려워해요. 죽음과

두려움은 이렇게 따로 올 수가 있어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지만 어쩌면 죽음은 금방

끝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라는 그런 두려움이 더 클

수도 있어요. 인간한테는.

 

그런데 결국은 다 생략하고 결국은 훔바바를 이겼어요. 그래서 "와! 대단하죠?" 여기까지가

1부예요. 그래서 이 둘은 우르크에서 가장 큰 영웅이 되요. 원래 날 때부터 힘 세고, 잘생기

고, 키도 크고, 가문도 좋은 놈이 훔바바까지 이겼어요. 거기다 그의 친구 엔키두는 걔 다음

으로 힘이 센 애야. 그리고 둘은 아주 절친한 친구야. 그러니가 이제 우르크에서 이 둘을 막

을 자가 없어요. 완전 성공을 한 거예요. 어렸을 때.

 

* '훔바바'를 물리치고 승리한 '길가메쉬'와 '엔키두'

 

그러고 나서 무엇이 일어나냐 하면, 여인이 다가와요. 이때쯤 여자가 나와야 돼요. 드라마

상. ^^*~~~여인이 나오는데 여인이 누구냐 하면 하늘과 땅의 주인 여인 '이쉬타르'예요.

전쟁의 여신. 길가메쉬가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냐 하면, 전쟁의 여신이 마음을 뺏길 정도

예요. '나한테 결혼을 해 달라.' 전쟁의 여신이. 그런데 길가메쉬는 거절해요.

 

이것도 참 재미있어요. 질투의 여신, 전쟁의 여신이 왔는데 길가메쉬는 이때만 해도 여자는

필요 없다. 우정이 더 중요하다. 이러면서 더 큰 성공을 위해서 여인의 마음을 거절해요.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되요. 꼭 그렇게 돼요.^^*~~~ 지금 드라마와도 굉장히 비슷하죠? 이거

재미있어요. 길가메쉬 서사시.

 

그녀가 당황하고 자기가 자존심 상했다. 그런데 질투의 여신이예요. 전쟁의 여신이예요.

굉장히 무서운 여신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이쉬타르가 어떻게 하냐 하면, 하늘의 자기의

최고신 '아누'한테 가요. 우리 아누 배웠죠? 하늘신 첫 시간에. 가장 최고신이예요.

 

* 마음이 상한 '이쉬타르'는 아버지인 최고신 '아누'에게 '길가메쉬'를 혼내줄 것을 요청한다

 

아누한테, 자기 아버지한테 저 길가메쉬 저놈이 아무리 잘났다고 그래도 인간인데 당신 딸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망신을 줬다. 나 어디로 시집가냐? 아누가 화가 났어요. 그래서

아누가 황소를 내려 보내요. 가장 훔바바 보다 더 큰 황소.

 

* '아누'는 무서운 하늘의 황소를 내려보내는데...

 

고대 근동에서는 사자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는 게 황소였어요. 바알의 상징이 황소였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황금 송아지를 보고 필요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황금 송아지를 보고

엎드려 절한 적이 있죠? 모세가 산에 갔을 때. 왜냐하면 황소가 그만큼 그 당시에서는 큰

신의 상징이었으니까. 그래서 하늘의 황소를 내려보내서 이 황소가 온 마을을 짓밟고 다녀

요. 길가메쉬가 나서서 이것도 처리해요.

 

* 황소가 온 마을을 짓밟자 '길가메쉬'가 나서 황소를 처치한다

 

이제 길가메쉬는 완전 영웅이 된 거예요. 이쉬타르도 짓밟혔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때 신들

이 회의를 해요. 길가메쉬 이놈을 가만히 두면 안 되겠다. 길가메쉬를 죽여버리자. 아니다.

신들이 회의를 해요. 그런데 신들의 결정이 뭔지 알아요? 길가메쉬한테 고통을 주기로 하는

데 신들의 결정이 정말 기가 막힌 결정을 해요. 엔키두를 죽여요. 그래서 이 드라마가 정말

대단한 드라마라는 거예요.

 

* 자신들이 보낸 황소가 죽자 분노한 신들을 '길가메쉬'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절친한

  친구 '엔키두'를 죽인다

 

가장 큰 고통은 내가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예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길가메쉬는 굉장히 슬피 울어요.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나의 교만,

나의 실수, 내가 잘못한 거예요. 그런데 나 때문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나의 전우, 내가

평생 같이 하자고 했고, 우리나라의 2인자, 나를 제일 가까이 도와줄 사람이 죽은 거예요.

 

길가메쉬가 이때부터 이제 2부가 끝나요. 3부가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길가메쉬 서사시는

영웅 이야기에서 종교적인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기 지금부터 죽음을  생각해요. 이것도

역시 죽음에 대한 좋은 성찰을 담고 있어요.

 

청년기 때는 '너 죽음이 두렵지 않냐?' 힘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안 두려워요. '아이, 뭐 그

까짓 거!' 하고 넘어가요.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고 어느 정도 성공을 하고 난 다음에 자기

친구가 죽었어요. 그다음부터 길가메쉬는 이렇게 얘기를 해요. '죽음이 두렵다. 나도 인간

이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세속적 가치의 허무함을 깨닫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물어보게

돼요.

 

* '길가메쉬'는 마침내 세속적 가치의 허무함을 깨닫고 영생의 비밀을 찾아 종교적 여행을

  떠난다

 

이때부터 이 드라마는, 길가메쉬 서사시는 영생을 얻으려는 종교적 모티브가 돼요.

"나, 죽기 싫다. 나 엔키두처럼 되기 싫다. 그리고 내가 많은 죽인 사람들, 전쟁에서 쓰러진

수많은 사람들처럼 되기 싫다. 영생을 어떻게 하면 찾을까?" 그래서 갑자기 영생이 나와요.

이렇게 보면 인간이 종교적 가치를 찾는 것은 세상의 영화를 다 누려서가 아니예요.

 

내가 만약에 '돈을 다 벌고 하느님을 만나겠습니다.' 하면은 그 사람은 평생 돈을 벌다 끝나

요. 어떤 사람이 '나는 명예를 얻고 하느님을 만나겠습니다.' 하면은 그 사람은 명예를 쫓다

평생 끝날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언제 하느님을 찾게되냐 하면, 뭔가 중요한 것이 위험에

닥쳤거나, 굉장히 중요한 것이 고통에 처했거나 이랬을 때 인간은 하느님을 찾게 되어 있어

요. 길가메쉬도 아마 그런 걸 느꼈을 거예요.

 

우리도 인생에서 그런 걸 느끼는데, 저도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대학생 때 친구가 죽었어요.

잘 알던 사람이었는데, 그때 정말 '죽음이 뭔지?'라고 생각 했어요. 저는 그냥 친한 친구 중

에 하나였는데 걔를 굉장히 사랑했던 어떤 애는 굉장히 오랫동안 방황했어요.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의 형제라든지, 부모님이라든지, 저도 아버님이 돌아가셨지만 아버님

이 돌아가셨을 때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죠. '나의 인생은 몇 시간이 남았을까?

도대체 몇 년이 남았을까?' 하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되죠.

 

아, 그래서 인간은 역시 길가메쉬 같은 영웅도 그렇게 마찬가지로 이때 영생을 생각하는구나.

어떻게 하면은 죽음을 넘을 수 있을까? 죽음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죠. 자, 이때

부터 길가메쉬는 나라의 옹이 된 것도 다 팽겨치고 어디로 가냐 하면, 영생을 찾으러 떠나요.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첫 번째 여행하고 달라요. 첫 번째 여행은 자기 친구와 함

께 훔바바를 죽이러 했던 여행이고, 이제부터 여행은 자기가 영생을 찾으러 나가는 종교적인

여행을 떠나게 돼요. 그런데 재미있어요. 영생을 얻으러 다 이런 걸 하고 떠나야 된다고 그

러면 "아, 길가메쉬 이제 네가 철이 들었구나. 정말 중요한 가치를 얻으러 니가 이제 집을

나서는구나. 출발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주위에서 다 말려요. "하지 마라.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렇게 간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인생에서 그런 거 같애요. 우리가 정말 하느님에게 간다고 그랬을 때 주위에서

손뼉쳐 주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고, 대체로 한 번씩은 한번 말려보죠.

 

저는 신학공부할 때 평신도로서 신학공부한다고 그러니까 엄청 말렸어요. 주위에서. 그리고

사제  된다고 그랬을 때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죠. 수녀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말리는

사람 많죠. 말리게 되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어쩌면 더 말리게 되요. 그 길에서 중간에 나오

면 안 되니까. 혹시 얘가 이 길을 다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주위에서 하는 거죠.

 

길가메쉬 서사시도 그래요. 이게 벌써 구약성경 나오기 2천 년 전 텍스트인데. 그때도 인간

은 굉장히 수준이 높은 종교적인 체험을 하고 살았다는 증거예요.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만

들어 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죠.

 

그런데 길가메쉬가 그럼 영생을 어디서 찾을까라고 주위에 물어보니까 사람들이 이구동성

으로 뭐라고 그러냐 하면은 우투나피쉬팀을 만나라고 얘기를 해요. 우트니피쉬팀은 누구인

가? 그는 태초에 대홍수가 있었는데 마치 노아의 홍수처럼, 딱 한 명이 죽지 않고 홍수 때

다 죽었다. 모든 생명들이 다 죽었는데 딱 한 명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 그 사람이 영원히

사는 사람이다.

 

* 태초에 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 영생의 비밀을 듣고자

  하는 '길가메쉬'...

 

그러니까 우트나피쉬팀을 만나면 너는 그 사람한테 영생의 비빌을 얻게 된다. 그럼 길가메

쉬가 그럼 우트나피쉬팀을 어디가서 만나냐? 죽음의 강을 넘어야 된다. 그럼 죽음의 강은

어디로 넘냐? 너는 못 넘을 거다. 가지마라. 다 말려요. 그럼 길가메쉬가 과연 죽음의 강을

건너서 우트나피쉬팀을 만나서 거기서 가시가 어떻게 나오는지.

 

제가 이 시간에 다 말씀드리려고. 그런데 시간이 다 됐어요. 그래서 일주일만 기다려 주시면

이제부터 그 다음 이야기로 길가메쉬 서사시의 초간단 요약본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시 얘기를, 구약성경에 나오는 가시 얘기를 조금 더 할 거예요. 지금까지 강의 잘

들어주셔서 고맙고요. 다음 강의 꼭 잊어버리지 마시고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잘 들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길가메쉬 서사시'의 남은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 다음 강의 예고: 고대 근동과 성경의 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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