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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마음의 평화에 대한 책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7 조회수791 추천수10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부활 제5주일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복음: 요한 14,1-12




성모자


무리요 작, (1670), 드레스덴 미술관


     < 내 마음의 평화에 대한 책임 >

       
 

20년 전 그렘린이란 영화를 꽤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훈도 꽤 있고 오늘 복음과도 잘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빌리는 말단 은행원입니다. 그의 아버지도 조금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발명가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줄 성탄 선물을 찾다가 차이나타운 골동품 가게에 들러 아주 귀여운 모과이라는 동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을 사려고 하지만 주인은 팔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과이를 키우려면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팔 수 없습니다.”

모과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3가지를 꼭 지켜야 하는데, 빛을 보면 안 되고, 물을 주어도 안 되며, 12시 이후에는 절대 음식을 먹여서는 안 되는 조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모과이를 사게 됩니다. 너무나 귀엽고 순하며 이 세상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존재이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빌리는 이 선물을 받고 매우 기뻐합니다. 옆집에서 놀러 온 아이에게도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금기사항을 모르던 아이는 그만 물을 모과이 몸에 엎지르고 맙니다. 물이 쏟아진 모과이의 등에서는 또 다른 모과이들이 물방울 숫자만큼 튀어나옵니다. 처음 모과이와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조금은 거칠고 못돼서 몰래 자신들의 숙주인 모과이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악하기도 해서 빌리의 시계를 멈추어 놓아 12시 이후에 자신들에게 음식을 주게 만듭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빌리는 12시가 안 될 줄 알고 그 못된 모과이들에게 음식을 줍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음식을 받아먹고는 푸른 괴물인 그렘린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들은 힘도 세고 영악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심지어 살인까지 하기도 합니다. 마을은 온통 그렘린에 의해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젠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빌리는 경찰에게 알리지만 경찰도 너무 강력해진 그렘린 군단을 처치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들의 번식력이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그렘린들은 나중엔 풀장에 뛰어들어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졌고 이젠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듭니다. 마을이 지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대소동이 벌어졌지만 너무나도 약한 모과이와 빌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빌리가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자신이 수습하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는 상황이 좀 바뀝니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모과이는 빌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옆에서 도와주며 그들을 완전히 퇴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모과이와 빌리는 머리를 써서 그렘린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모두 불태워 죽여 버리고, 마지막 남은 그렘린 대장을 죽이는데도 모과이가 커튼을 걷어 빛을 들어오게 함으로써 마지막 하나까지 처치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라고 하시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들은 모두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버지를 보여 달라,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겠다는 필립보의 질문에 예수님은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느냐?”며 당신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대답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하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분이 만들어놓으신 길, 즉 모범을 따르는 것이 생명에 이르는 진리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분이 어떻게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지,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평화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온 평화를 책임감 있게 유지해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 계신 평화인 하느님 아버지를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바로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뜻 안에 있게 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곧 평화이시기에 그분을 당신 안에 고이 모시고 있는 것이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리스도를 당신 마음 안에 모시고 계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의 으로써 그분의 뜻에 온전히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기 때문입니다. 아기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머니밖에는 없듯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곧 우리 안에 계시며 평화과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내 안에 평화를 주셨더라도 내가 그 평화를 유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 평화는 걷잡을 수 없는 전쟁으로 바뀌어버립니다. 내 안에 평화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아기를 잉태하면 그 아기는 아무 힘도 없지만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된다는 기쁨과 평화를 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는 내 안에서 완전히 나의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기를 잉태하면 그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마치 모과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규정들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들을 조금씩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신부님을 찾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마당엔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엔 수십 마리의 잉어가 놀고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들은 그 잉어들이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연못이 얼어버리면 먹이를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물고기들은 겨울잠을 잔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깊은 곳에 모여서 몇 달 동안을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봄이 와서 얼음이 녹으면 그들이 다시 나오는데 하도 먹지를 못하여 힘이 없어서 먹이를 던져줘도 제대로 입도 벌리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음식을 주던 그리스도 아닌 다른 것에 음식을 주던 두 가지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른 것에 양식을 주면 줄수록 그것이 너무 강대해져서 평화는 그것들에 짓눌리게 됩니다. 평화를 유지하는 길은 나를 평화롭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 물과 음식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물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고, 음식은 그 옳지 못한 것의 배를 불리는 것입니다. 일단 그것이 배불러지면 더 이상 내 안의 대소동은 우리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평화와 싸우는 내 안의 적이 생겨나지 않도록, 겨우내 음식을 먹지 못하여 음식을 주어도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도록 만들어 놓아야 평화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란 말이 있습니다. 로마의 평화란 뜻인데, 기원전 1세기 말부터 약 200년간 지속된 로마의 평화시대를 의미합니다. ‘로마의 평화시대란 적이 없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적은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있던 성벽도 헐어버렸습니다. 어떤 민족도 로마에 감히 도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로마의 힘이 강대했기 때문에 성벽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3세기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로마에 성을 쌓았습니다. 왜냐하면 로마가 서로 갈라지고 약해지면서 그 힘이 축소되는 동시에 이민족들이 호시탐탐 로마를 침공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도 항상 싸움이 있습니다. 평화가 우세할 수도 있고 걱정, 근심, 두려움, 긴장감이 더 우세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편에 양식을 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결국 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둘의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누군가 하나에게 전혀 양식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힘도 없어 평화를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만 하는 내 안의 그리스도. 그분의 뜻만 따라서 그분이 내 안의 왕으로 굳건하게 계신다면 담을 쌓을 필요도 없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평화를 얻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그 양식이 오로지 그분 뜻을 따르는 것에만 사용되지 않고 다른 세력의 힘을 키워주는 데에 사용된다면 다시 전쟁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평화를 유지하는 법은 절대 그리스도의 뜻 아닌 것에 양식을 대어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키워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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