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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을 통하여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8 조회수1,973 추천수11 반대(0) 신고

 


 

부활 제5주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  14,1-12





 


예수님을 통하여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은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명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알맞은 사랑을 주셨고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은 이 세상에 국한 되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생명에 이르는 길도 알려주시고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을 차지하는 은혜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가 34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를 마음을 다해 부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고 선언하셨습니다. ‘길은 말씀으로 안내되고, 진리는 옳고 바른 이치이며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진리 안에서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수 없다’고 하신 말씀대로 아버지와의 만남을 이루는 방법은 예수님을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중개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종점이 아니라 종점에 이르는 길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직접 보내주신 구원의 길잡이 이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걸으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처절한 죽음까지도 마다하지 않으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누릴 천상복락의 행복을 예수님 안에서 찾고 있는지 생각해 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희생의 길이 남이 걸어야 할 길이 아니라 바로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고 인식한다면 여기서부터 이미 천상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예수님의 길이 나의 길임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진리 같은 분, 진리와 비슷한 분이 아니라 진리 자체 이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고(요한17,17)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요한1,14)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모든 것은 옳고 그릇됨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까? 예. 믿는다면 말씀을 듣고 믿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면서 왜 따르지 않아요? 아마도 지금 당장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더 매력적이고 마음을 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아닌, 거짓이라면 그것은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진리는 영원합니다. 진리는 아무리 흔들어도 진리입니다. 다수결에 의해 변할 것 같으면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깨우치는 진리, 사람이 알아야 하는 진리이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알려주는 계시자로서 진리이십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가 커감으로서 이런 저런 불평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과부들의 배급문제가 대두됩니다. 이때 사도들은“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하고 선언하고 공동체 안에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봉사자 일곱을 뽑았습니다. 사도들은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말씀과 기도’를 부여잡았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마음에 불평과 불만이 도사리고 있다면 진리의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을 차지하면 곧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계시하고 그 진리를 믿음으로써 받아들여 실현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요한복음17,3절에서는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곧 그 삶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로서 생명이십니다. 사실 영생은 예수님과 함께 지금 여기서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영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6,51).하고 선언하셨습니다. 미사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빵이신 성체를 통하여 영적생명의 양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자주 모심으로써 주님과 온전히 하나가 되고 영생을 지금 여기서 누리게 됨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시대는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아니라‘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처럼 잘못 살고 있습니다. 물질을 다른 모든 것에 앞세우는 현실입니다. 돈만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처럼 생각합니다. 돈이 되면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합니다. 돈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나고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단절되며 형제간의 관계도 소원해 지고 이웃 간의 관계도 냉랭해집니다. 우리에게는 부모에 대한 효가 있었고, 형제간의 우애가 있었으며 이웃 간에 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생명보다 물질이 우선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부작용이 얼마나 큰 아픔을 주고 상처를 낳는지 ‘세월호’침몰사고를 통해서도 뼈저리게 느낍니다.

 

잃어버린 생명과 평화와 화목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국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이 기뻐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을 실천하게 될 때 부모와 자녀, 형제간,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어렵고 힘에 겨울수록 진 말씀과 기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물질은 하느님을 섬기는 도구입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둘 때 물질도 빛을 발하게 됩니다.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을 등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길을 다니다 보면 공사장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보통 푯말이 붙게 됩니다.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그런데 흔히 보게 되는 이 푯말 밑에는 낙서가 씌여집니다. 뭐라고 쓸까요? “잘 알면서 왜 그래.” 불편을 주는 것 알면서 왜 그러냐고요?


인생여정에서 잘 알지만 생각처럼 안 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야말로 선한 결심을 해도 작심삼일이고 마음이 흔들비쭉입니다. 어떤 이는 성격의 문제로 인하여, 인간관계의 문제로 인하여 그리고 질병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술, 도박 등 잘못된 습관으로 인하여 고민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좋은 것 같은데 속을 보면 누구나 자기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을 한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로 좌절하고 낙담하며 슬퍼하고 힘에 겨워합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그런 문제들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며 우리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기회가 됩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면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은총이 됩니다.

 


자신의 지혜와 삶의 방법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게 되면 놀랍게도 주님은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복음 말씀대로 주님을 믿고 믿는 대로 행하게 되면 “주님의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됩니다”(요한 14,12).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용기 있게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여정은 모두 공사 중입니다. 잘 알지만 안 되는 것들을 고치는 중입니다. 아무쪼록 그 공사가 마무리 될 때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 집에 거처할 수 있는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을 통하여 진리요, 생명을 만나길 기도하며 최민순 신부님의 ‘오늘 나의 길에서’라는 글로 마감합니다.

 

주여 오늘의 나의 길에서

험한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갯길을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넓은 길 편편한 길

그런 길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도록

더욱 깊은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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