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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8 조회수776 추천수10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5월 18일 부활 제5주일
 
 
Have I been with you for so long a time
and you still do not know me, Philip?
Whoever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Jn.14,9)
 
 
제1독서 사도 6,1-7
제2독서 1베드 2,4-9
복음 요한 14,1-12
 

전에 갑곶성지에 있을 때, 비가 엄청나게 왔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경당의 지하에 물이 가득 차게 되었고, 또한 성지의 마당은 바닷물이 역류해서 온통 물바다가 되었지요. 쏟아지는 비가 참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가 온다고 해서 제가 이렇게 말했을까요?

“왜 이 비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나를 힘들게 하는 이 비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또 이런 일도 생각납니다. 직원들과 함께 어디를 놀러갔다가 글쎄 새 똥을 맞게 된 것입니다. 그때 기분이 얼마나 안 좋았겠습니까? 즐거운 야유회를 간 것인데, 뜻하지 않게 하늘에서 새 똥을 맞았으니까요. 그때 혹시 제가 이렇게 말했을까요?

“이 새는 나한테 무슨 불만이 있다고 나를 향해 똥을 쌀 수 있지? 이 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고 또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날씨나 새를 제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향해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식의 말을 종종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연이나 동물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 왜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할까요? 사람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는 사람을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 조정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을 만났는데, 이 분께서는 절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이유를 물으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던 어머니가 교회를 가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랍니다. 그렇게 열심히 당신을 섬기던 어머니를 데려가는 하느님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충분히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의 힘으로 우리를 조정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더 큰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조정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쫓아서 우리 역시 사랑의 삶을 살아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을 통해서만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이러한 분을 또한 이분이 사랑하는 나의 이웃들을 왜 부족하고 나약한 내 힘으로 조정하겠다는 욕심을 부릴까요?

이제는 조정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주님의 사랑에 온전히 내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는 의탁과 굳은 믿음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하시듯, 우리 역시 주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 밖에서 행복을 찾지만 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 안에 있고 매일 매일의 사고방식 속에서 나온다.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면 행복할 텐데!(‘그럼에도, 행복하라’ 중, 앤드류 매튜스)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부부에 대해 우리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즉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도 행복했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는 없다! 누군가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내 생각에는 아마도 영화나 노래에서 나온 것 같다.

영화나 노래의 주인공들은 흔히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나는 너무 외롭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당신이 내 삶을 바꿔놨어!”

이런 것이 근거 없는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노래나 영화와는 다르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난 그저 불행하기만 했어. 하지만 당신을 만나고 나서 내 인생은 정말 비참해졌어!”

이래야 맞는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에게 끌리고,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에게 끌린다. 당신이라면 기분이 아주 좋은데 ‘우울해하고 있는 사람을 좀 만나봐야겠어’라고 생각하겠는가! 절대 그럴 리 없다! 당신은 우울한 사람 대신 또 다른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유유상종이다. 그러니 긍정적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싶으면 당신이 먼저 웃고 다녀야 한다.

당신이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울할 때에는 누구도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스스로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당신이 밝은 면을 보기 시작하면 주위에 행복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만약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화를 내지 말고 다르게 대응해 보자.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기뻐하는 것은 어떨까? 자신의 인생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정해진 규칙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해지기가 더 쉽다.

공감이 가는 글이 아닙니까? 그래서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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