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38)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채로 예물을 차려놓은 제대 앞에 허리를 숙여 우리가 바치는 제사를 하느님께서 너그러이 받아주시기를 청한 다음 사제는 물로 손을 씻습니다. 구약성경은 예식을 본격적으로 거행하기 전에 손을 씻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사제 임직식 때 사제와 레위인들은 성소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정결례를 거행해야 했습니다(탈출 29,4: 민수 8,7). 만남의 천막으로 들어갈 때나 화제물을 살라 바치려고 제단에 다가갈 때도 사제는 청동 대야에 담긴 물로 손과 발을 씻었습니다(탈출 30,17-21). 성전에 봉사하는 이들뿐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는 이는 누구나 손을 씻는 예식 같은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시편은 말합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시편 24,3-4). 이 시편에서 손 씻는 예식은 사람이 제단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 나아가기 전에 반드시 요구되는 마음의 정화를 상징합니다. 깨끗한 손은 마음의 결백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러한 성서적 배경에서 보면, 구약성경의 사제나 레위인들, 또는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처럼 오늘날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도 ‘지극히 거룩한 곳’에 들어가기 전에 손 씻는 예식을 진행합니다. 사제가 서 있는 제대에서 예물로 바쳐진 빵과 포도주는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될 것이고, 영성체를 통해 우리가 그분을 받아 모실 때에 주님은 우리 안에 사시게 될 것입니다. 유일한 대사제이신 예수님은 이 일을 사제의 손을 통해 이루실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이 순간을 준비하기 위하여 사제는 새로운 ‘지성소’로 나아가면서 구약의 사제들처럼 손을 씻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는 자신의 영혼을 준비하기 위하여 다윗이 바친 참회의 기도를 조용히 바칩니다. “주님,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시편 51,4 참조) 교우들은 조용히 앉아 사제가 기도와 예식으로 이 거룩한 임무를 준비하는 것을 지켜봅니다. 그런 다음 사제는 감사 기도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준비로 교우들을 향하여 기도하자고 청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이 권고문의 라틴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 권고문의 숨은 뜻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형제 여러분, 나와 여러분의 제사를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받아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서 “나의 제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직자가 바치는 제사를 가리키고, “여러분의 제사”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자신을 바치는 교우들의 제사를 의미합니다. 한국어 전례문처럼 “우리”의 제사라고 통칭하지 않고 구태여 “나와 여러분의 제사”라고 한 것은 세례받은 교우들도 자신만의 제물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사제와 교우들은 하나의 제사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우들도 “사제의 손을 빌려서뿐 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사제와 일치하여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비오 12세, 『하느님의 중개자』, 92항). 이 권고문에 교우들도 힘차게 응답합니다.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저희와 온 교회에는 도움이 되게 하소서.” 이 응답은 하느님께 직접 바치는 기도가 아니라, 사제의 권고를 들은 교우들이 사제에게 화답하는 기원문입니다. “당신(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제사를 주님께서 그 이름의 찬미와 영광을 위하여, 또한 저희와 주님의 거룩한 교회 전체의 도움을 위하여 받아주시기를 빕니다.” [2021년 2월 28일 사순 제2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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