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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상과 활동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22 조회수1,253 추천수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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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5.22.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사도15,7-21 요한15,9-11


관상과 활동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어제 상담을 공부하려는 어느 분에 대한 충고가 생각납니다.

"상담가의 우선적 자질은 공감의 사랑입니다. 이런 기본적 자질인 사랑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가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이듯이

사람을 대하는 상담 역시 테크닉이 아니라 공감의 사랑입니다.

 

기도를 잘하는 비결은 사랑뿐이듯 상담을 잘하는 비결도 사랑뿐입니다.

진정 사랑할 때 알고 보임으로 올바른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관상과 활동 역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관상에서 흘러나온 사랑의 활동입니다.

그러니 우선적인 것이 사랑의 관상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역시 제가 자주 써드리는 고백성사 처방전의 보속 말씀입니다.

 

어제의 '내 안에 머물러라.'에서 구체적으로 '사랑'이 첨가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의 샘, 관상의 샘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이

예수님의 샘솟는 사랑, 지칠줄 모르는 사랑의 근거였음을 봅니다.

 

진정한 사랑, 순수한 사랑은 이런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지금도 주님을 통해 끊임없이 제공되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바로 이게 관상의 사랑, 관상의 행복, 관상의 기쁨입니다.

 

우리 모두의 소명은 '사랑의 관상가'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눈 만 열리면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 존재임을 봅니다.

 

이를 실감나게 묵상할 수 있는 사랑의 관상시간이 성전에서의 미사, 기도, 묵상시간입니다.

아니 어느 자리에서든 이런 사랑의 관상 훈련은 참으로 필요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 때 비로소 해결되는 영적 배고픔이여 목마름입니다.

 

10일 간의 피정지도라 하지만 오히려 제가 피정하고 온 느낌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지내다 온 기간이었습니다.

 

추상적인 주님 사랑이 아니라 수녀님들의 공동체를 통한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역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수녀님들과 함께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며 주님 사랑 안에 머물렀던 시간입니다.

 

"얼굴이 환하고 밝습니다.“

피정이 끝나는 점심 시간, 총원장 수녀님의 말씀에,

"저요?“

"신부님도 그렇고 수녀님들도 그렇습니다.“

잠시 멋쩍은 느낌이었지만,

그 말씀을 듣고 수녀님들을 보니 하나하나가 태양처럼 환히 밝게 빛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총원장 수녀님은 앞에 보일 듯 말 듯 연초록 바탕에 연노랑 돗나물 꽃과 마가렛꽃 세 송이가

소박하게 꽃꽂이 된 모습을 보며 무엇을 뜻하는 가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사랑의 하느님을,

신망애 삼덕의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참 소박하고 겸손한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듯 한, 작은 유리컵의 꽃꽂이 였습니다.

말씀의 성보영보 수녀회 총원장 수녀님이나 공동체의 영성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이 또한 관상의 표현,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른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 것이다.“

 

정태적 관상이 아니라 역동적 관상입니다.

관상과 활동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관상 따로 활동 따로가 아닙니다.

 

사랑의 관상은 사랑 계명의 실천을 통해 그 진정성이 입증됩니다.

사랑의 미사는 하루의 사랑의 삶으로 확산되어야 하고

하루의 사랑의 삶은 사랑의 미사로 수렴되어야 합니다.

이래야 비로소 온전한 미사, 온전한 관상, 성체성사적 삶의 실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랑의 관상, 사랑의 활동에서 샘솟는 순수한 기쁨, 충만한 기쁨입니다.

주님의 참 좋은 기쁨의 선물입니다.

 

사랑을 통한 관상과 활동의 일치가 기쁨의 샘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관상과 활동의 사랑의 일치가 분별의 잣대입니다.

 

주님을 닮은 분별력의 대가, 사랑의 대가가 바로 사도행전의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의 사랑의 웅변이 감동입니다.

사도의 탁월한 분별력의 지혜가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백번 지당한 사랑의 분별입니다.

베드로와 바르나바, 바오로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후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야고보 사도입니다.

 

님은 당신 사랑 안에 머물러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를

당신 사랑과 기쁨, 분별력의 지혜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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