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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2014년 5월 22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22 조회수814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4년5월22일 목요일 복음묵상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요한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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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상대의 표현도, 그것의 진위를 파악하는 우리의 감각도 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구하지만,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힘들어 합니다.
더욱이 사랑하는 쪽의 입장이라면 그 안타까움은 더 합니다.

연인 관계라면 상대의 사랑을 끝없이 확인하려는 작업이 자연스럽습니다.
사랑하는 데 쓰는 에너지보다, 사랑을 확인하려는 데 쓰는 에너지가 더 강해집니다.

우리는 왜 사랑에 확신을 가질 수 없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왜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을 해야 하는 우리 모두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우리이기에 우리의 사랑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자기 중심이 되어버리고 마는 우리의 모자람은 사랑을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 고백은 늘 확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한결 같은 사랑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에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셨기에 가능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답을 구해봅니다.
사랑의 확신은 상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은 내 이기심이 크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가 움직이고 있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가 사랑과는 거리를 가집니다.
불완전한 우리는 상대의 반응에 사랑의 의미를 두고자 합니다.
이런 발상은 사랑을 소유의 개념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지만 사랑의 방향은 항상 내 쪽으로부터 흘러가야 합니다.
일방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지켜야 할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사랑을 할 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배반 앞에서도, 당신이 마셔야만 했던 죽음의 잔 앞에서도,
당신께서는 진정 사랑했기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은 자기가 그린 그림 안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상대를 향한 것이 사랑인줄 알면서도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하기를 욕망합니다.

사랑에 확신을 갖고자 합니까?
그렇다면 사랑 받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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