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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우리를 위해서라면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24 조회수890 추천수14 반대(5)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를 위해서라면


 

한 몇 년 저희 어머니의 병세가 꽤나 심각했습니다. 여기저기 시름시름 아팠습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통증은 하늘을 찌르는데, 검사 결과는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해봤지만 호전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갔습니다. 큰 일 났다, 저러다 돌아가시겠다,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보다 못한 동생이 나섰습니다. 한 아담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병원으로 옮겨 입원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병원 옮기자마자 정말이지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의 병세가 급격히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드셨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걷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어버이날 부모님께 점심식사 한끼 사드리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어머니께 물었더니 당신 체험을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새 의사 양반 만나는 순간, 벌써부터 병이 낫기 시작했다고...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고개 끄덕여주시고, 뭐 대단한 말씀, 특별한 말씀도 없이 과묵한 분인데도, 뵙는 것 자체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셨다고... 얼마나 고마운 의사 선생님이신지, 백번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올봄 저희 수도회 세계 총회 참석차 두 달 가까이 로마 본부에 머물러있을 때였습니다.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강도 높은 회의가 계속되었습니다. 총회에 참석한 250여명의 신부님 수사님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피로에 유행성 독감에 다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로운 총장 신부님이 선출되었고, 총장님과 함께 저희 모두는 바티칸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하러 갔습니다. 저희 모두는 바티칸 내 큰 대기실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교황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성큼 성큼 걸어서 저희 앞에 서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순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꽤나 부담스럽고 무거웠던 총회로 인해 지치고 힘든 기색이었던 모든 신부님 수사님들의 얼굴이 교황님을 뵙는 순간 순식간에 환한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교황님의 따뜻하고 인자한 얼굴을 뵙는 순간 그간의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존재 자체로 치료제이자 치유제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이란 존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위에 소개해드린 따뜻한 의사 선생님, 한없이 자상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합해놓으면 딱 성모님일 것입니다.


 

성모님은 존재 자체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위로요 도움, 희망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호칭 자체도 ‘도움이신’ 성모님이십니다.


 

가나에서의 첫 번째 기적 사건은 성모님께서 왜 ‘도움이신’ 성모님이신가를 명백히 잘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난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순간, 결정적인 공생활 시작의 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조용히 침묵 가운데 나자렛에서의 숨은 생활을 총 정리할 순간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여인이시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께서는 무리함을 무릅쓰고 아들 예수님께 졸라댑니다. 잔치의 전부 다 라고 할 수 있는 포도주가 떨어져 난감해하고 있는 혼주들의 딱한 처지를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맛있는 홍어무침은 산더미처럼 준비되어 있는데, 시원한 막걸리가 떨어졌다면 얼마나 잔치가 밋밋하겠습니까? 더구나 유다 관습 안에서 혼례식을 일주일 내내 계속되는데, 혼주 입장에서는 대단한 결례를 넘어 무례였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성모님이셨기에 무리한 요구인지 알면서도 예수님께 거듭 청을 드린 것입니다. 이처럼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딱한 처지, 난감한 상황을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선익과 구원을 위해서라면 체면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시는 분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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