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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25 조회수947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5월 25일 부활 제6주일
 
 
If you love me,
you will keep my commandments.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Advocate to be with you always.
(Jn,14,15-16)
 
 
제1독서 사도 8,5-8.14-17
제2독서 1베드 3,15-18
복음 요한 14,15-21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 따라서 마음가짐이 달라질 때가 참 많지요. 예를 들어, 보행자가 되어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에는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짜증내고, 운전자가 되면 왜 이렇게 빨간 신호등이 자주 켜지고 길다고 짜증냅니다. 이제 얼마 뒤에는 지방선거가 있는데, 정치인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항상 국민을 위하고 대한민국을 위한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자그마한 것에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에 타협을 하지 못합니다.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문제로 서로 틀리다고 하면서 다신 안 볼 것처럼 싸우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시각이 틀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입장이 다를 뿐입니다. 다른 입장이다 보니 견해차가 생기는 것뿐이지요. 틀린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를 뿐인데 왜 서로를 원수 대하듯이 할까요? 문제는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맞고, 상대방에서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맞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다름을 큰마음으로 인정해주면 어떨까요? 사실 주님께서도 이 큰마음을 보여주셨지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십니다. 그런데 복수하셨습니까? 아니면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보이셨습니까? 아니지요. 오히려 주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셨고,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성령이라는 커다란 선물까지 주시는 큰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들의 다름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고 더 큰사랑을 베풀어 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이러한 ‘큰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할 수 있는 ‘큰마음’ 말이지요. 이 큰마음을 체험한 제자들은 어떻게 바뀝니까? 오늘 독서에 나오듯이 주님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자신들과 다르다며 박해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위협에 무서워 벌벌 떨었던 예전의 나약한 모습을 버리고, 그들 역시 같은 하느님의 자녀라면서 용기 있게 거리로 나가 주님을 알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 참 행복이 어디에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행복론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낸 ‘칼 히티’라는 사상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책을 보면, 어느 한 군데에서도 건강하고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 옆에는 누가 있는가를 보아라.’고 말합니다. 즉, ‘당신이 불행에 빠지고, 외로울 때 묵묵히 옆에 있어 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으로 당신이 행복한가 아닌가를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높고 위대하신 분,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 옆에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제자들은 주님 안에서 참 행복이 있음을 발견했기에, 세상에 주님을 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옆에 계신 주님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며, 세상에 주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막은 사람을 푸르게 한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에선 사람 스스로 푸르더라. 두려워 마라. 그대가 지금 황랑한 사막에 홀로 있어도 온 세상을 푸르게 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허허당).

 

사랑의 관점으로 보세요.

어느 호텔에 한 접객주임이 새로 채용되어 고용인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쪽 귀빈실 고급소파에 인상도 좋지 않고 옷차림도 지저분한 할아버지가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입니다.

주임은 이 할아버지 때문에 이 호텔의 분위기를 흐를 것 같아서 다가가서 조그마한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이 쪽지에는 “할아버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즉시 이곳을 떠나 주세요. 할아버지 때문에 호텔 분위기가 흐려집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이 접객주임은 어떤 쪽지 하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지요.

“접객주임! 남의 귀에 소문나지 않게 이 호텔을 떠나 주시오. 당신 때문에 이 호텔 분위기가 흐려집니다.”

사실 쫓아내었던 할아버지는 이 호텔의 사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접객주임은 그것도 모르고 겉모습만 보고서 w자기를 고용한 고용주를 함부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종종 체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겉모습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조하신 사랑의 관점으로 보게 될 때는 어떨까요?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있는 그대로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마음의 눈이 됩니다. 그리고 이 눈을 통해서 우리는 더 넓은 마음을 갖게 되지요. 주님께서 사랑하라는 이유, 남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바로 내 마음을 더욱 더 크게 하는 은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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