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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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4-05-29 | 조회수1,304 | 추천수14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 .
2014.5.29.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사도18,1-8 요한16,16-20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 주님 안에서는 하루하루가 좋은 날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어제 미사 중 마음에 와 닿았던 1독서 중 다음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사도17,28ㄴ).
하느님 그분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는 자체가 하느님 체험입니다. 비상한 체험이 아닌 이런 평범한 깨달음이 마음에 깊은 평화와 위로를 줍니다.
역시 어제 아침 성무일도 때 마음에 와 닿았던 사무엘 찬미가입니다. '생명과 죽음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며, 명부에 내려보내고 올라오시게 하는 분도 주님이시도다. 빈궁과 부요를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며, 주님은 낮추시고 또 높이 올리시는 도다.' (1사무2,6-7).
모두가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주님을 늘 기억함이 바로 믿음이요 구원입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결국 모두가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바로 믿음의 핵심입니다.
삶은 과정이요 흐름이요 리듬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이런 삶의 현실, 삶의 흐름에 충실함이 제일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의 삶이 이의 모범입니다.
어제 미리 오늘 1독서를 읽으면서 와닿는 느낌은 '바오로의 삶이 흐르는 물처럼 참 자유롭고 자연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왜소한 체구에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에너지의 정체가 참으로 불가사의였습니다. 마치 바람같기도 하고 물같은 바오로의 삶이 참 자유롭다고 느껴졌습니다. 전혀 자기가 없는 온전히 주님의 성령 따라 움직이는 삶처럼 생각되었습니다.
환경에 압도되는 삶이 아니라, 어느 환경이든 자기에 맞게 유연하게 활용하는 바오로입니다. 천막 만드는 생업에 충실하다가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려 애씁니다. 또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면서 말씀 전파에만 전념합니다.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주저함 없이 '여러분의 멸망은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나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민족들에게 갑니다.'라며 미련 없이 떠납니다.
이어 좋은 이들의 환대 속에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참 자유자재한 삶입니다. 삶의 비관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어디에 가든 자신이 그 중심이 되는 바오로입니다.
결국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환경도 사람도 탓할 바 아닙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주님을 만나는 구원의 자리입니다.
오늘 없이는 내일도 없습니다. 그날 그 자리의 환경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삶의 리듬에, 과정에, 흐름에 충실함이 삶의 지혜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삶이 바로 그러합니다. 이래야 임향한 그리움은 사랑의 감미로, 임께로부터 온 아픔은 기쁨으로 바뀝니다.
"너희는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오늘 복음의 결론같은 주님 말씀입니다. 근심과 기쁨은 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우리 삶의 리듬입니다.
고정불변의 근심이 아니라 때가 되면 기쁨으로 바뀔 근심입니다. 기쁨을 잉태하고 있는 근심입니다.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근심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잘 들여다보면 기뻐하지 않을 일은, 감사하지 않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평화의 샘, 기쁨의 샘이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찬미의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샘솟는 평화와 기쁨을 선사하십니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 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시편98,3ㄷㄹ-4).
하느님은 우리의 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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