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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29 조회수1,134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5월 29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You will grieve, but your grief will become joy.
(Jn.16,20)
 
제1독서 사도 18,1-8
복음 요한 16,16-20
 

비행기를 타게 되면 서두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요? 사람들은 활주로에 내리기가 무섭게 짐을 서둘러 챙기기 시작합니다. 어떤 분은 비행기가 아직 멈추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서 짐칸의 짐을 꺼내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서둘렀다고 해서 빨리 비행기 밖을 나갈 수 있을까요? 워낙 비행기의 통로가 좁기 때문에 빨리 나가고 싶어도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수화물로 짐을 부치지 않았다면 그래도 빨리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만, 만약 수화물로 부친 짐이 있다면 30분 넘게 컨베이어벨트에서 짐이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지요. 이 점을 알면서도 서두르는 것은 왜 일까요?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저 역시 남들이 서두르니까 덩달아 서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유 있게 짐을 빼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남이 하니까 별 생각 없이 따라하게 됩니다.

이렇게 남이 하니까 별 생각 없이 따라하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남들의 신앙생활을 따라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한 것처럼 착각합니다. 성경은 전혀 읽지 않고, 또 기도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남들처럼 성당만 다니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와 신앙인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철저히 동조하고 대신, 사랑에 대한 실천은 철저히 외면하면서도 신앙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지요.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아닌 세상의 모습만을 따르는 것으로,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또 따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 일어날 일은 당신께서 배반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되어 묻히시는 일만 아니라 부활도 암시하지요.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께서 부활하신 미래의 상태로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슬픔을 겪었고, 부활을 통해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점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 지금은 웃을지 모르나, 나중에 결국 세상이 탄식할 때 기쁨을 누릴 사람들은 주님을 참으로 따르는 신앙인이 될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사람들은 지금 웃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아니었을 때 그 웃음은 결국 탄식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습을 따르는 것이 아닌, 어떤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도 주님의 모습만을 철저히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과 시련에 주저앉아서는 안 됩니다. 오로지 주님의 뜻, 주님의 모습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인이 될 것을 다짐했으면 합니다.

나쁜 일이 생기면 그것은 나 때문에, 괜찮은 일이 생기면 그것은 우리 때문에,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은 당신 때문에. 이 세 가지 생각이야말로 좋은 사람을 얻기 위한 모든 것이다(폴 베어 브라이언트).


 

머리에는, 가슴에는(‘행복한 동행’ 중에서)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남자 육상 5천 킬로미터, 1만 킬로미터, 마라톤까지 제패한 체코 출신 육상 선수 에밀 자토펙. 그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19세가 될 때까지 정식으로 육상을 배운 적이 없다. 공장에서 일하며 혼자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선수들이 훈련받은 과학적인 주법과 달리 그는 머리와 상체를 흔들고 거친 숨소리를 토해 내며 쉴 새 없이 달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인간 기관차’라고 불렀다.

승승장구하던 자토펙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1956년에 열리는 멜버른 올림픽을 2주 앞두고 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것. 갑자기 운동장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자토펙은 그 자리에서 탈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 깨어난 자토펙 곁에서 간호하던 코치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건 미친 짓이네!”

“제게는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어요. 4년을 기다리기에는 제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자넨 탈장 수술을 받았어. 이런 몸으로 참가하는 건 허락할 수 없네!”

“마라토너는 달릴 때만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도 괜찮아요. 이 레이스에서 완주할 겁니다.”

결국 자토펙은 메달을 얻지는 못했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6위로 완주했다. 경기가 끝나자 기자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와 물었다.

“당신은 이미 돈과 명예를 모두 가졌는데 이렇게 무리하며 마라톤에 참가한 이유가 뭡니까? 무슨 생각을 하며 달렸습니까?”

“육상 선수는 주머니에 돈을 넣고 뛸 수 없습니다. 머리에는 꿈을, 가슴에는 희망을 품고 뛰어야 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세상의 흐름을 쫓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꿈과 희망을 안고서 더 큰 가치를 쫓는 사람이 바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역사는 위대한 사람을 기억하지요. 지금 내 모습은 과연 역사에 기억될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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