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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04 조회수1,076 추천수9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6월 4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Holy Father, keep them in your name
that you have given me,
so that they may be one just as we are one.
(Jn.17,11)
 
 
제1독서 사도 20,28-38
복음 요한 17,11ㄷ-19
 

남루한 차림을 하고 있는 형제님이 연필로 낙서한 것 같은 작은 그림을 들고서 팔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보여서 그림을 사주려고 하지요. 그런데 그 그림 가격으로 한두 푼 부르는 것이 아닌 자그마치 백만 원을 부르는 것입니다. 과연 이 형제님께서 부르는 가격에 맞춰서 이 그림을 사주었을까요? 당연히 단 한 명도 그 그림을 사주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손가락질을 했겠지요.

잠시 뒤, 이 형제님께서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시내의 멋진 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작은 그림을 미술관의 감정사에게 보여주면서 가격을 의뢰했지요. 감정사는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지요.

“이 그림을 팔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천오백만 원에 사겠습니다.”

사실 이 그림은 아주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그림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림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가 없었지요. 더군다나 그림을 팔고자 하는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고서 판단하다보니 그 그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겉모습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잘 아느냐에 따라서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각자의 가치는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유명한 화가까지도 직접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가치를 형편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세상의 유명한 화가가 만든 작품보다도 더 훌륭하고 값진 작품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려고만 할까요? 왜 스스로를 볼 품 없고 형편없다면서 하느님을 힘없고 작은 분으로 만드는 것일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요한 17,11)라고 기도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가 됨으로 인해서 얻는 가치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 기쁨이 충만하게 되며, 악에서 스스로를 지켜질 수 있으며, 거룩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큰 가치를 얻게 됩니까?

문제는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점점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낮게 평가함으로 인해 결국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가치가 더욱 더 높아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사랑에 제대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기보다는 믿고 따르는 우리가 될 때, 나의 가치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높게 빛날 것입니다.

참, 오늘은 제6회 지방선거가 있는 날이지요? 무관심으로 소중한 한 표를 그냥 버리지 말고, 빠짐없이 참여해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국민을 무시하지 않고, 올바른 행정을 할 것입니다.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면 그중 더 어려운 길을 택하라(티벳 승려의 말).


 

나의 능력과 재주

야간 운전을 할 때, 만약 자동차 전조등이 켜지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내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맞은편 차량은 앞 차가 오는 지 알 수 없기에 크게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조등이 무조건 밝아야 안전할까요? 이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운전할 때 상향등을 켜면 전방이 밝으니 운전하기는 쉽지만, 맞은편 차는 내 차의 불빛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결국 전조등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주 밝을 필요는 없습니다. 약 50~100미터 전방만 비출 수 있다면 어떤 곳이든 안전하게 운전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렇게 계속해서 전방 100미터 앞을 비추어 나간다면 안전하게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과 재주가 부족하다고 불평불만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주가 이 순간 딱 적당하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지요?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원하는 목적지에 무사히 잘 도달할 수 있도록, 딱 맞는 능력과 재주를 주고 계신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고, 지금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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