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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롭게 하는 사랑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07 조회수94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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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7.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사도28,16-20.30-31 요한21,20-25


자유롭게 하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몇 가지 예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저는 자주 수도생활이 무엇이냐 묻는 분들에게 다음 몇 마디로 요약합니다.

 

'수도생활은 공동생활이고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공동생활에 있고, 함께 사는 것이 도닦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공동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누구나 공감합니다.

또 여기에 몇 마디를 덧붙힙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일'인 기도를 잘 해야 '함께 사는 일'도 수월해지고 '소임상의 일'도 수월해 진다."

 

바로 하느님의 일, 함께 사는 일, 소임상의 일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강조합니다.

 

오늘 결혼 주례하게 될 젊은 예비부부에게 1주전 만나 면담하면서

미리 정성껏 준비한 혼인미사 때 할 강론을 서로 한 단락씩 읽어보도록 했는데

다음 단락에서 신랑은 깊이 공감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서로 다른 남남이 함께 사는 일보다 힘든 일은 없습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니 끝없이 기다리는 인내의 사랑이, 충고나 조언보다는 칭찬과 격려, 위로의 사랑이 절실합니다.

일체의 판단은 멈추고 '아, 그럴수 있지', '괜찮아', '아, 이게 현실이지',

마음을 열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대한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게 공동생활의 원리입니다.

이래야 서로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이 됩니다.

 

어제 오후 산책 중의 평범한 깨달음도 생각납니다.

뙤약볕 아래 시원한 큰 느티나무 그늘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아, 공동체에 큰 그늘이 되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말하고 나서 보니

느티나무 아래에 공존하는 나무들은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래서 밖에서 바라보기는 좋아도 함께 살기는 힘든 것입니다.

 

하여 성인 밑에서 순교자 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분도 성인도 이런 점을 깊이 통찰하여 그의 규칙서에서

'형제들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 합니다.

 

절대로 약점을 지적하여 고치라 하지 않습니다.

형제들의 약점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는 것 역시 진정한 사랑입니다.


오늘 1독서의 주인공 바오로 성인이나, 복음의 주인공 베드로 성인 역시 똑같은 성인이지만

솔직히 말해 밖에서 바라보며 존경하기는 쉬워도 함께 살기는 힘든 성격의 소유자들입니다.

불같은 열정의 바오로와 충동적인 급한 성격의 베드로가 함께 살기는 더욱 힘들 것입니다.

 

새삼 사람이 좋고 착해서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순종 있어 성인임을 깨닫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두분 다 주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한 '순종의 사도'였습니다.

새삼 사랑의 순종이 더불어 삶을 가능하게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 중 다음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21,22)

 

형제들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은 접어 두고, 나를 따르는 순종의 네 일에나 충실 하라는 말씀입니다.

 

좀 비속한 말 같지만 여기에 딱 어울리는 두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네가 뭔데', '너나 잘해.',

선을 넘어 불필요한 판단이나 간섭을 하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참은 적도 꽤 많을 것입니다.

 

바오로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내는 것이 참 사랑'(1코린13,7)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를 보십시오.

바오로의 사랑의 순종 덕분에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당대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로 전파되지 않습니까.

 

바오로가 로마에 상륙한 후

그리스도교는 마침내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완전히 로마제국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정복합니다.

 

바로 이게 놀라운 기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 따라 순종했던

'순종의 사도' 바오로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감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바오로에 대한 묘사에서

그의 사랑의 순종으로 자유로워진 여유만만한 모습이 잘 들어납니다.

 

'바오로는 셋집에서 만 이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 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쳤다.‘(사도28,31)

 

철저히 순종의 사람, 환대의 사람, 복음 선포의 사람이 되어 자기의 모두를 내놓은

대 자유인 바오로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자유롭게 하는, 생명을 주는 사랑의 성령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어

당신 뜻에 항구히 순종하며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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