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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의 상처가 우리에게 주는 평화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07 조회수1,555 추천수14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 


< 평화가 너희와 함께! >


복음: 요한 20,19-23







어린이들을 축복하시는 예수


렘브란트 작, (1647-49),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278 x 388mm, 암스테르담 미술관


     < 그리스도의 상처가 우리에게 주는 평화 >

   


그리스 신화에 헤라클레스란 영웅이 나옵니다. 헤라클레스는 괴력을 지닌 반신반인이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태양의 신 제우스입니다. 제우스 신의 아내는 헤라였는데, 사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내가 아닌 아크메네란 한 인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 자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제우스의 아내인 헤라여신으로부터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헤라는 헤라클레스가 아직 요람에 있을 때 독사 두 마리를 보내어 헤라클레스를 물어죽이게 하였는데, 헤라클레스는 아기였음에도 손으로 뱀의 목을 눌러 죽입니다.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괴롭힐 방법을 찾다가 헤라클레스가 페르세우스의 아들 에우뤼스테우스의 부하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를 통해 매우 어려운 일들을 시키게 만듭니다. 괴물 사자의 모피를 가져오라든지, 머리가 아홉인 히드라를 죽이라든지, 아마존 족의 여왕의 허리띠를 가져오라는 등의 고역들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근래에 헤라클레스 헐리우드 영화가 개봉되었었는데 내용은 신화와는 다르지만 그 근간에 흐르는 메시지는 거의 동일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한 폭군 왕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제우스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폭군 왕은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눈치 채고는 그를 매우 미워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전쟁터에 내보내서 죽게 만듭니다. 어려운 과업을 시키는 것입니다. 간신히 목숨을 건져서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신의 나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계속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자신이 왕의 아들이 아닌 신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결국 폭군은 자신의 아내, 즉 헤라클레스의 어머니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기둥에 묶어놓고 헤라클레스도 죽이려고 합니다.

그제야 헤라클레스도 자신이 폭군의 아들이 아닌 제우스의 아들이고 폭군을 이기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임무로 태어났음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하늘에서 제우스는 자신을 부르는 아들에게 초인적인 힘을 주고 그 힘으로 폭군을 죽이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사제들에게도 무리한 일을 맡깁니다. 사람들의 죄를 씻어주고 사람들에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주도록 시키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우리는 그저 그 일을 할뿐이지만, 그것을 행할 때마다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는 죄를 사하는 일까지 시키십니다.

너희가 용서해주면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실 때, “너의 죄는 사해졌다.”라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는 그분도 세상 사람들이 비웃었는데, 우리 같은 죄인들이 생명의 빵을 나누어주고 죄까지 용서해준다고 하니 정말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기 힘든 역할입니다. 죄를 사해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은 신의 영역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하니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헤라클레스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인간에게 준 적이 없고, 인간의 죄를 용서할 권한도 없었습니다. 사실 신화에서 제우스가 자신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몰래 자신의 아내 헤라가 잘 때, 그녀의 젖을 물린 이야기도 나옵니다. 오직 헤라의 젖만이 영생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제우스도 줄 수 없었던 영생과 헤라클레스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죄 사함의 권한을 저희 같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다니요? 이것은 가히 사제들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은 불안에 싸여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화를 빈다.”라고 인사하십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지 예수님은 잘 아십니다. 그리고는 당신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당신 상처에서 나온 것은 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 그들을 위해 당신 생명을 바쳤다는 것을 보여주시면서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론의 핵심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신다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이 곧 성령이신 것입니다.

1989년 구소련에 속해 있던 아르메니아에서 무려 55000명이 참사를 당한 대지진이 일어났었습니다. 이 때 9층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스잔나라는 엄마와 네 살 난 딸 가이아니가 철근과 콘크리트 틈새 속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갇혀 있었는데 가이아니는 엄마 옆에 누워서 엄마, 목말라라는 말을 계속 토해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었던 엄마는 딸의 목을 축일 방법을 고민하다 조난당한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을 때 피를 나눠 마시던 TV 장면을 기억해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엄마는 손을 더듬어 깨어진 유리조각을 하나 찾았고, 지체 없이 손가락을 찢어 흐르는 피를 딸의 입술에 축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두 주일이 지났고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14일간이나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인 엄마의 손이 어떤 상태였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물이 없으면 사람은 3일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를 주었다는 것은 생명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을 준다는 것은 준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사랑도 피를 주고 생명을 주고 다 주는데, 하물며 하느님이 인간에게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무언가 감추어놓고 주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엄청난 일을 맡기셨지만 그분은 당신 상처를 보면서 안심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자신의 힘을 줄 때 그것을 믿도록 어떤 표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랑을 지녔기 때문에 당신의 모든 능력 또한 우리에게 주셨음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우리를 파견하고 계신 것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파견하시면서 당신의 모든 권능을 교회에 부여하십니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고 교회에서 벌어지는 죄사함이나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내 것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법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그를 파견하십니다. 이집트로 다시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집트가 무서워서 도망쳐 나와 40년간 숨어살던 모세에게는 말도 안 되는 명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못하겠다고 버팁니다.

그러나 모세의 마음을 꺾은 것이 바로 그가 지니고 있던 지팡이덕분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고 집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즉 하느님의 능력이 자신과 함께 한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파라클레토스라 하는데, 이는 부르면 항상 응답할 수 있는 거리에서 언제나 함께 있어주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그분의 능력은 그분이 파견하신 교회에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모세도 항상 함께하시는 그 능력, 즉 성려의 상징인 지팡이로 10가지 재앙도 일으켜 파라오를 혼비백산하고 하고, 바닷물을 가르기도 하였으며,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누구를 파견하시면서 그 역할에 맞는 능력을 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가 바로 교회에 주어진 하늘나라의 열쇠이고 그 열쇠가 바로 오늘 복음에서 맺고 풀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교회에서 이루어졌고, 성령이 한 분이시듯 교회도 성령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참 교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교회 안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빈다라고 하시는 인사는 바로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여 파견하면서 나의 생명이고 모든 것인 성령을 맡기셨으니, 너희는 그것을 믿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교회에 주어졌음을 믿는 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한 사랑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불안해하지 맙시다. 그럴 때마다 그분의 상처를 봅시다. 피를 주신 분이, 생명을 주신 분이, 무엇은 주실 수 없으셨겠습니까?

 






 


 
오산 성당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ca-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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