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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맛, 제빛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10 조회수1,038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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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10.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열왕기 상17,7-18 마태5,13-16


제맛, 제빛


'맛이 갔다'는 말마디를 듣고 재미있어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음식뿐 아니라 사람을 빗대고도 하는 말입니다.

 

'음식은 맛이 가면 버리기라도 하는데 자식은 맛이 가도 버릴수 없다'

아주 예전에 들은 어느 분의 탄식조의 말도 생각납니다.

 

음식만 맛이 가는 게 아니라 세월 흘러가면서 사람도 제맛이 갈 수 있고,

색깔만 퇴색하는게 세월 흘러가면서 사람도 퇴색하여 제빛을 잃어갈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삶의 제맛을, 제빛을 잃지는 않았는지요.

아니 오히려 세월 흘러갈수록 삶도 깊어져

고유의 제맛을, 고유의 제빛을 내는 매력적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주님은 어제 진복팔단의 복음에 이어 오늘은 진복팔단을 구체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리쳐 주십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성인들처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제맛을, 제빛을 내며 진복팔단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첫째, 세상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입니다.

이미 소금과 빛에 앞서 세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선 구원도 없습니다.

세상을 떠난 소금과 빛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 안에서'는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존재의미입니다.

음식을 맛있게, 부패하지 않게 하는 소금처럼,

세상을 맛있게, 부패하지 않게 해야 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어둠을 몰아내는 빛처럼 세상을 밝히는 빛같은 우리의 삶입니다.

 

세상이 상징하는바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만이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전체가 하느님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뱀처럼 제혜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해야 합니다.

 

세상을 떠난 우리의 자리는 없습니다.

새삼 세상 도피의 개인주의의 영성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깨닫습니다.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이란 책자도 철저히 세상 안에서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을 강조합니다.

수녀님들은 세상 안에서 철저히 투신의 삶을 살다가

주님 안에서 새롭게 충전하여 제맛을, 제빛을 회복하고자 은총의 피정기간을 갖었습니다.

주님 주신 참 좋은 선물의 피정기간이었고 저도 행복했습니다.


둘째,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한 우리가 아닙니다.

무서운 것은 세상 죄악의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 주신 내 고유의 제맛을, 제빛을 잃는 것입니다.

하느님 주신 고유의 제맛, 제빛으로 세상을 성화시켜야 하는데

반대로 세상에 동화되어 속화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입니다.

 

어찌보면 살아갈수록 맛이 가고 빛이 퇴색하는 것은 자연적 현상 같습니다.

그러니 이에 거슬러 제맛을, 제빛을 유지하고 깊게하는 것이 바로 영적전투의 요체임을 깨닫습니다.

 

부단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끊임없이 깨어 자기와 싸워야 제맛, 제빛의 유지는 물론 그 맛과 빛을 깊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세상에서 섬김과 나눔의 삶에 항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섬김과 나눔의 삶에 항구할 때 제맛도, 제빛도 깊어집니다.

소금이 음식물 안에 녹아 사라져야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듯,

촛불이 주위를 밝히면서 녹아 사라지듯

우리 삶도 사랑의 섬김과 나눔 중에 녹아 사라져야

공동체에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며 공동체의 어둠을 밝힙니다.

 

섬김과 나눔 중에 부단히 자기를 비워 사라져 갈 때 역설적으로 제맛도 제빛도 깊어져 갑니다.

그러니 공동체를 떠난 영성생활이 얼마나 큰 환상이요 착각인지 깨닫습니다.

세상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사랑으로 녹지 않는 소금, 자기를 태우지 않는 촛불이라면

십중팔구 제맛과 제빛을 잃습니다.


넷째, 하느님과의 일치를 깊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금과 빛으로서 살기위해 우선적으로 전제되는 게 주님과 일치의 관상입니다.

이래야 제맛을, 제빛을 잃지 않습니다.

 

제맛을, 제빛을 잃지 않아야, 아니 세월 흘러갈수록 깊어져가는 제맛이요 제빛의 인생일 때

비로소 매력적인 삶, 향기로운 삶, 행복한 삶입니다.

바로 수녀님들의 삶이 그러합니다.

 

오늘 1독서 열왕기 상권의 엘리야 예언자가 그 모범입니다.

하느님과 깊은 일치의 삶을 살았기에

가뭄에 죽어가던 사렙타 과부와 그 아들을 살렸고 자기도 살렸습니다.

 

복음 말미 말씀이 그대로 실현됩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엘리야을 통한 하느님의 놀라운 기적에

사렙타 과부는 마음 깊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맛, 제빛의 유지와 심화에 매일미사와 시편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와 렉시오 디비나,

그리고 명상기도의 수행을 통한 주님과의 일치보다 더 좋은 영적훈련도 없습니다.

이런 영적수행을 통한 끊임없는 주님과의 일치 없이는 도저히 제맛, 제빛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며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라 권고하십니다.

이래야 제맛과 제빛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화답송 후렴 말씀대로

'당신 얼굴 밝은 빛을 우리 위에 비추시어'

우리 각자 제맛과 제빛을 내며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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