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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의로운 사람 되는 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11 조회수1,400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부활 제5주간 화요일


<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


복음: 마태 5,20-26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 의로운 사람 되는 법 >

          

 

채널A ‘모큐드라마 싸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일명 ‘500원 할머니라는 가짜 거지생활을 하는 한 할머니를 취재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500원만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를 주위에서 본 이들은 그 할머니의 연기에 혀를 내두릅니다.

한번은 할머니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검은 비닐봉지를 놓고 나갔습니다. 주인이 할머니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비닐봉지를 보는 순간 할머니가 다시 들어와 화를 내며 비닐봉지를 낚아챘습니다. 그러는 도중 비닐봉지가 찢어지며 그 안에 있던 내용물들이 떨어졌습니다. 그 내용물들이란 몸에 치장하는 고가의 귀금속들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자기 소유로 빌딩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애인 흉내를 내며 구걸을 하고 있던 500원 할머니는 실상 굉장한 부자였던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대대적인 단속결과 거지의 80%가 가짜였고 실제로 어떤 이들은 대졸임금의 3배 이상 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구걸할 때 자신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사람들을 흘겨보기도 합니다. 그렇게도 자비가 없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들의 죄를 덮는 길은 남을 정의롭지 않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뿐입니다.

 

우리에게 거지가 다가오면 도와주어야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항상 도와주어야합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 중 어떤 이들이 가짜 거지라고 하여 그 핑계로 도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비롭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이 거지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도대체 우리의 의로움은 무엇이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의로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은 겉으로는 살인이나 간음, 고리대금업 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의인이라 스스로를 칭송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인을 해서 꼭 살인자가 아니고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판단하는 자 또한 살인자라고 하십니다. 즉 행동으로만 정의롭다고 여기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간음을 해서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음탕한 마음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간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는 구별된다.’란 뜻입니다. 자신들은 정의로워서 다른 이들과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만 올바로 산다고 이웃을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로 만들어버리는 이들입니다. 겉으로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이는 이웃도, 하느님도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로 만들어버립니다. 이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정의인 것입니다. , 바리사이들와 율법학자들의 정의는 이것입니다.

내가 올바로 행동하니까, 나는 다른 이들보다 의로운 사람이지. 또 나의 정의로운 삶을 하느님께서는 그만한 보답을 해 주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고 하느님은 그저 자신들의 정의로움을 인정해 주셔야만 하는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보는 정의롭지 못한 정의입니다.

우리의 정의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정의는 이래야합니다.

나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로 내가 정의롭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다른 이들을 판단할 만큼 정의로운 사람은 못된다.”

그렇습니다. 내가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 되어야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가 드러납니다. 내가 정의롭고 세상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된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정의롭고 자비로운 분으로 드러나실 수가 없습니다. 만약 내 힘으로 정의롭게 될 수 있다면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을 죽여 가면서까지 정의를 세우셔야 할 필요가 없으니 하느님께서 하신 행위가 정의롭지 못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정의로운 분이 되게 하는 것이 나의 정의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환호 가운데 입성하십니다. 그러나 며칠 뒤에 모든 백성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 분이 오실 때 그렇게 기뻐하던 백성이 이젠 그 분을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목청을 높여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소리 지릅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르는 것 자체가 예수님보다 자신들이 더 정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정의로워지면 남을 판단하게 됩니다. 남을 판단하다가 예수님까지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정의인 것이고 구원을 보지 못하는 정의인 것입니다.

그 분을 때린 것이 바로 나이고 그 분에게 침을 뱉고 오물을 던진 것이 바로 나이고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고통을 드린 것도 바로 나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내가 정의롭지 못한 인간이 되고 그리스도를 유일하게 정의로운 분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정의롭지 못함을 고백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정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구원의 길입니다.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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