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12 조회수1,297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whoever is angry with his brother
will be liable to judgment,
and whoever says to his brother,
‘Raqa,' will be answerable to the Sanhedrin,
and whoever says, ‘You fool,' will be liable to fiery Gehenna.
(Mt.5,22)
 
 
제1독서 1열왕 18,41-46
복음 마태 5,20ㄴ-26
 

저의 하루 일과를 보면 우선 새벽 5시쯤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묵주기도 20단을 바칩니다. 묵주기도를 바친 뒤에는 사제관 성당에서 성무일도를 바치고 영적독서와 성체조배를 하지요. 이렇게 거의 2시간 이상을 아침기도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미사와 낮기도, 저녁기도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 중에 3시간 이상을 주님 안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이 정도면 그래도 주님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는 많은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하루 24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중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아니더군요. 또 주님께 머무르는 시간을 어떻게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루 24시간 온전히 주님 안에 머물러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냥 ‘이 정도면 됐어.’라고 말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착각과 교만에서 나오는 것뿐이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이 정도면 됐어.’라는 말과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사실 이 정도면 충분한 것도 아닌데, 단순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착각과 교만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서 갑자기 숨이 확 막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조항들을 더 확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살인해서는 안 된다.’라는 계명만 잘 지키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계명을 확대해서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사람은 엄청난 벌을 받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당시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정말로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철저하게 613개나 되는 율법 세부조항들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열심히 지키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안일하고 교만한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잘 살고 있다는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행위가 잦았던 것입니다. 이 기준 때문에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생각을 뛰어넘으십니다. 그런데 단순히 형제에게 화 내지 말고, ‘바보, 멍청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러한 세세한 조항의 이행보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세부조항을 만들어 지킨다 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지금 내 자신이 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특히 사랑이 담겨 있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기억하면서, 사랑이 가득 담겨진 말과 행동으로 언제나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부족함이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체의 장애라 할지라도 마음에 두지 않는 한, 의지의 장애는 아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영혼을 맑게, 신체를 쾌적하게 유지하자(H. 하이네).


 

어려움과 힘듦의 시간은 필요합니다.

작년에 등산을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오랜만의 등산이었지만, 신학생 때 산악반을 하면서 꽤 많은 산을 다녔고 또한 평소에도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산 중턱까지 올랐을 때, 정말로 후회가 막심했습니다.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이 나오는지 막막하기만 했고, 매고 있던 배낭도 왜 이렇게 무겁게만 느껴지던 지요. 그러면서 산을 우습게 봤다는 반성, 또한 왜 등산을 왔는가 라는 후회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 정상에 올라간 뒤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산 정상에 이를 때까지 가졌던 모든 부정적인 마음들, 힘듦이 모두 사라집니다. 대신 정상에 올라가니 그다음 목표가 생기더군요. ‘다음에는 더 높은 산을 오르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목표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려움과 힘듦의 시간이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목표에 이른 뒤에 또 다른 더 높은 목표를 잡아서 이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과 힘듦의 시간을 이겨내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