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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의화를 위한 율법과 믿음의 역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12 조회수1,037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 네 오른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


복음: 마태 5,27-32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BOUTS, Dieric the Elder 작, (1450-60)


     < 의화를 위한 율법과 믿음의 역할 >

 

  

2012417일자, 뉴스1코리아, 인터넷 신문에 은퇴 후 20년째 무인도에서 나체로란 제목의 기사에 나온 내용입니다.

당시 76세의 일본인, 마사푸미 나가사키씨는 은퇴 후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오키나와 서쪽 자신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소토바나리 섬에서 20년째 살고 있었습니다. 물품을 사러 일주일에 한번 육지로 나갈 때 외에는 옷을 입지 않고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섬에 오기 전 사진작가로 활동하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무인도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취재진에게 나는 혼자가 좋고 여기를 떠날 생각은 없다.”나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삶을 마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나오는 복음말씀들은 매우 우리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어제는 화만 내어도 살인하는 것이라 하고 오늘은 음탕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간음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렇게 눈이 죄를 지으면 눈을 빼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또 손이 죄를 지으면 손을 잘라버리라고 하십니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눈과 손 없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라는 교부는 이 말씀을 듣고 자신에게 죄를 짓게 하는 부위를 실제로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몸을 훼손하였기 때문에 오리게네스를 성인품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를 짓게 만드니까 성경 말씀대로 잘라버린 것인데 그것 때문에 교회에서 단죄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말씀대로 행한 것이 죄가 되는 것일까요?

만약 이런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라면 마사푸미 나가사키씨처럼 무인도로 가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 사람과 마주칠 기회가 없으니까 죄도 덜 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런 고립된 삶을 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마태오가 누구를 위해 복음을 썼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마태오가 이 복음을 쓴 대상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지니고 있었고, 그 율법을 잘 지키면 하느님께 정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끊임없이 구약의 율법으로는 절대 의롭게 될 수 없음을 역설하고 계십니다.

바리사이와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합니다. 바리사이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리는 그저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길 뿐입니다. 그런데 의인으로 인정받고 간 사람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라고 하십니다. ,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지 우리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율법대로라면 우리는 돌 맞아 죽어도 벌써 몇 번을 맞아 죽어야 하고 눈을 수천 개는 빼어 버려야 합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의 의로움은 자신들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에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으로 구원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율법을 지켜 구원받으려면 몸의 지체를 잘라낼 정도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다만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해주는 역할만을 할 따름이지 그것을 지켜 자신이 의롭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율법으로 의화 될 수 없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모두 율법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합니다. 그래서 모든 입은 다물어지고 온 세상은 하느님 앞에 유죄임이 드러납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로마 3,19-20)

우리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우리 신체를 절단할 용기가 없습니다. 다만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알게 해 주면 그만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은 우리 행위의 정당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런 생각이 또 극단으로 치우치면 하느님만이 인간을 선택하셔서 그분의 은총만으로 구원받으니 우리 행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라는 방향으로 나가기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만 있으면 되니 우리 행위에 죄가 있어도 아무 상관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는 인간의 구원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총으로 오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율법 자체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의화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화 되었다면 그 율법을 더 완전하게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율법을 무시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알면 옛 것이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입으면 오히려 율법을 지키고 사는 이들보다 더 완성된 율법을 지키게 되는데 이것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의로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리스도만을 믿어서가 아니라 행위로도 그들을 넘어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도 행위로가 아니라 자신 안에 깃든 성령의 힘으로 율법의 삶을 완성하라고 가르칩니다.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로마 8,3-4)

 

노예 12이란 영화에서 자유인으로 살던 주인공은 실제로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노예생활을 죽도록 해 본 이후에야 참 자유는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묶인 이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삶임을 깨닫고 노예해방을 위해 노력하다가 죽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이 있음으로 우리가 죄의 노예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참 자유인이 됩니다. 이 자유란 홀로 고립되어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이 세상에서 소진시킴으로써 율법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이 사랑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 성령의 은총으로써만 우리 안에서 이 율법이 완성될 수 있음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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