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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시찬 신부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제7강 기도를 향한 열정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14 조회수1,043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유시찬 신부님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깊은 데에 그물을 쳐라

 

 

 

제7강 기도를 향한 열정

 

1. 존재의 대사슬과 기도
    - 기도의 위치
    - 지성차원과 영성차원 : 원심력과 구심력의 통합

2. 예수님 내지 성령과 함께 하는 기도
    - 메마른 지적 작업과는 다르다.
    - 사랑의 관계 문제 : 따뜻함, 함께 함, 힘

3. 긴 여정으로서의 기도
    - 체력을 가꾸고, 지적 소양을 쌓는데도 엄격한 규칙과 긴 시간, 내지 노력이 필요

4. 기도의 전체적 조감도
    - 자아에 바탕한 기도
    - 자아를 떠난 기도

 

# 오늘 이야기 ...

여러분들 혹시 기도하고 계세요? 기도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하세요? 기도가 여러분들의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볼 때는 우리 현대 삶에 있어서 기도가 빠져버린 것이 가장 심각

한 문제가 아닌가 해요. 이런 점에서 우리 이번 시간에는 기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생각들을

좀 깊게 봤으면 합니다.

 

# 시작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좋으신 예수님, 날씨도 덥고 힘든데 저희들 이렇게 건강 지켜주시고 좋은 열정들, 마음들 불러

일으켜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영신수련이 본 궤도에 오르고 있는 지금 무엇보다도 저희들에게

기도를 향한 열정들을 불러 일으켜 주십시오. 기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듣게 하시고 기도를

흠모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어 기도를 통해서 저희들 삶을, 저희들 자신의 존재를 더 아

름답고 더 생기 있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좋으신 당신 이름으로 기도드

렸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지난 시간까지 ... 관점의 변화, 원리와 기초

 

보통 우리 기도 이러면은 아, 기도 이야기 우선 들어가기 전에 영신수련에서 우리 지난 주까지

원리와 기초를 봤죠. 원리와 기초 보기 전에 관점의 변화에 대해서 좀 보고 그랬는데 가장 바람

직한 것은 이 강의가 매주 한 차례씩 해서 26회 정도 지금 계속될 예정인데 이 강의만 듣고 있어

가지고는 얻는 열매가 약하다 싶은 거예요. 이런 영신 사정, 영적인 힘, 이런 문제하고 관련지어

서는 자기가 그런 어떤 영신 사정에 대한 몰입 혹은 영신에 대한 수련. 이런 것들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실질적인 몰입과 수련이 필요

 

그래서 이 강의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들어가면서 이 강의의 흐름에 쫓아서 영신수련을 또

박또박 따라갈 필요가 있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매일 한 시간씩은 이제 여러분들이 집

에서 기도를 해 주면은 정말 좋겠다. 실질적으로 자기가 기도를 해 나갈 때 비로소 이런 강의가

빛을 발하게 되고 여러분에게 힘이 되고 제대로 된 열매를 맺는 것 아닌가 하는 거예요.

 

# 매일 한 시간씩 기도

 

그래서 이제 원리와 기초 뿐만이 아니고 첫째 주간 들어갈 테고 이럴 때, 이쯤에 와서는 기도

하는 법을 확실하게 익혀야 되겠다. 그래서 지난 번에 원리와 기초 이것도 사실은 제가 강의

내지는 설명만으로 끝났지마는 여러분들이 그 점에 대해서 기도 중에 좀 더 깊게 머물고 내것

으로 소화시키는 작업이 있었어야 했죠. 그래서 다소 좀 늦은 감이 있을지 모르겠지마는 지금

부터라도 오늘 기도에 대한 거를 좀 알아 듣고 나서 이 기도에 대한 열망들을 많이 불러 일으

키고 기도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기도라는 것을 우리가 보통 '기도한다', '기도하자' 뭐 이런 이야기를 곧잘 하죠.

그런데 이제 그럴 때 우리가 보통 일상생활하면서 '야, 기도해 줄께' 혹은 뭐 '기도를 해 달라'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 그때의 그 기도 하는 거는 보면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도하고는 사뭇

거리가 있고 다른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보통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해 달라',  '기도해

줄께' 뭐 '기도 부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그 기도는 주로 뭔가 청원하는 것. 하느님께

청하는 것. 탄원하는 것.

 

# 우리가 주로 해 온 기도는 청원기도

 

뭐 부모님 병을 고쳐 달려든지, 아들 시험 붙게 해 달려든지, 남편이 지금 직장을 잃고 힘들어

하는데 직장을 빨리 구하게 해 달려든지, 요즘 그래서 우리집이 참 어렵거든 기도 좀 해 달라고.

응, 그래 나도 기도해 줄께 힘내! 이런 이야기들. 그런 기도도 필요하고 그것도 기도라고 이야기

는 하지마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알아가고자 하는 기도는 그것 하고는 차원이 좀 다르다고

그럴까. 깊이에 있어서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식의 기도는 신앙인이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기도를 하고, 그런 기도를 주고

고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는 것. 그런데 우리가 오늘 그리고 다음 시간에 좀 보고자 하는 기도

는 그것보다는 좀 더 깊은 기도에 대해서 알아듣고 그런 기도에 대한 열망들을 불러 일으켰으면

하는 거예요. 이제 그렇게 볼 때 기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리고 정작 기

도하고 있는가? 이런 점들을 보면은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여러분들은 기도하고 있는가?

 

# 기도하고 있는가? /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기도에 대해서 조금만 더 서론 삼아 이야기를 하고 한번 물어보면 좋겠다 싶은데 이런 식의 기

들을 하고 있는 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적어도 제가 볼 때는 이 세상이 만만치 않죠. 여러 가

어려움들도 많고, 위정자들에 대해서 불만도 많고, 나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도 되겠는가 하는

점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서글픔 같은 것도 많이 느껴지고, 때로는 뭔가 희망이 안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약이 오르기도 하고. 이럴 때 결정적인 원인이 뭘까? 제가 볼 때는 우리 삶 전체에서

기도가 빠져버렸다. 기도 내지는 영성이 빠져버렸다.

 

#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은 삶에서 기도와 영성이 빠진 것

 

여기에 근본적인 원인이 놓여 있다고 보는 거예요. 이점에서 바로잡지 않으면은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우리의 후손들, 젊은이들,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더욱 더 어려운 세상 속에서 허덕

이면서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전에 우리가 존재의 대사슬 같은 이야기를 할 때 존재의

층위에 대해서 이야기들을 쭈욱 했었죠.

 

 

 

 저 밑에 물질 단계부터 시작해 가지고 인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몸이라든지, 정신이라든지, 혼

이라든지, 영이라든지, 그 다음에 위에 성령 내지는 하느님이라든지 이런 존재의 차원에 여기서

부터 쭈욱 천차만별로 그 차원들이 지어져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랬을 때 우리 인류가 지금 거

의 도달해 있는 부분이 일반적으로 이 차원에 와서 머물러 있는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러면은 여기에서 이렇게 보면은 이 정신 차원 하는 것이 지성이라든지, 이성이라든지, 감성이

라든지, 이런 이야기들이죠. 현대의 학문 분야들인 거예요. 현대의 어떤 학문 내지는 과학. 현대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그런 정신 영역이죠.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진짜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 아닌가?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많고 공부도 진짜 많이 시키죠. 별별 과외를 다 시켜 가면

서 애들 공부 많이 시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배우죠. 많이 배워서 좋은 대학교 나오죠. 좋은 대학교 나와서 좋은 직장에도 취직

을 하죠.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는 정부 요직에 들어가서  권력을 쥐기도 하죠. 경제를 일으켜 가

지고 금력을 쥐기도 하죠. 그런데 그 사람들 그 소수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고 국민 전체가 함께

더불어서 잘 살아갈 수 있나? 이 사회 전체가 좀 더 인간답고, 행복하고, 활기차고, 그런 모습을

우리가 가정을 해 본다면은 거기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 아닌가?

  

 

 

그랬을 때 그것이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움직이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왜 그러냐 그러면 그 사회가 왜 자기만 알고, 자기들 집단 이기주의에 떨어지고, 권력을

부로 남용을 하고, 경제력에 의해서 모든 것을 짓누르려고 하고 이런 일들이 왜 그렇게 일어

나는가? 근본적으로는 이 이원대립론적인 사고고, 원심력 구심력을 가지고 얘기를 하면은 이

부분은 원심력에 해당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바깥으로 확충시켜 나가려고 하는, 넓혀 나가려고

하는 이게 지성이 하는 역활인 거예요. 대학이 하는 역활이고 기업이 하는 역활이고 늘 남보다

더욱 더 성장하려고 하는.

  

 

 

이 원심력이 구심력에 의해서 균형을 잡지 않으면은 이 원심력은 지금처럼 사회의 여러 가지

부조리다든지, 인간다운 사회에서 거리가 멀어지는 그런 현상을 초래하는 것 아닌가? 그 점을

제대로 영이니, 혼이니 하는 여기가 영성에 해당하는 이야기죠. 영성이고 우리가 배우려고 하

는 그 영성에 대한 기도 하는 것이 여기에 결려 있는 거죠.

 

몸을 튼튼하게 하려면은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이 당장 지금 맹장이 터져 가지고 수술을 급하게

하지 않으면은 안 된다 하는데 그걸 앉아 가지고 기도로서 물리칠 거라고. "이 육체적인 고통을

능히 극복할 수 있게 도와 주시고, 몸이 건강하게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들 눕혀 놓

고 에미가 계속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 사이에 아멘 함과 동시에 애는 죽어버릴 거예요.

 

몸은 몸에 맞추어서 좋은 음식, 건강한 음식을 먹고 절절히 운동하고 몸을 어떻게 키워나가는가

체력을 어떻게 튼튼하게 하는가 하는 거는 거기에  따른 방법이 있죠. 영양 섭취라든지, 운동이

라든지. 그 다음에 정신은 또 역시 자신을 개발시켜 나가는 것. 사고력을 갖게 하고, 사고력과

판단력과 비판력, 깊게 사유하고, 결정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그것을 위해서는 또 어떻

게 해야 되는가? 그 나름대로 방법이 있죠.

 

단적인 예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 단계별로 쭉 밟아 나가는 교육 과정, 공부

시키는 과정이 있죠. 영성도 마찬가지다 하는 거예요. 몸은 몸 나름대로 몸을 키워내는 방법이

있고, 정신은 정신 나름대로 키워내는 방법이 있고, 영혼은 영혼 나름대로 키워내는 방법이 있

다. 영혼을 키워내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등장하는 것이 기도인 거예요.

 

# 영혼을 성장시키는 방법/ 기도

 

기도를 통해서 영혼을 키워낸다. 그런데 보다시피 몸을 키워내고 정신을 키워내면은 서로 간에

원심력만 작용을 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차별하고, 경쟁하고, 우열을 다투고, 그 작업만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이 지성아라든지, 이성, 감성 이 차원에서는 끊임없이 근본적으로 하는 것이

'너와 나는 다르다' 하는 것. 서로 다름. 異에 대한 움직임이 거듭거듭 일어나는 게 이 차원인

거예요. 그런데 이거는 다른 면을 볼 뿐만 아니라 '같다' 하는 것도 함께 볼 줄 알아야 異와 同

이 균형을 잡으면서 있는 것.

 

# 다름과 같음을 함께 보기

 

남편과 아내가 다르면서 부부라는 같은 거. 형제 자매들이 다 모습이 다르고 생각들이 다르면

서 또 한 에미, 한 애비 밑에서 나온 형제 자매들이다 하는 그 같음. 이런 다름과 같음을 늘 같

이 봐줘야 하나는 팽창하려고 하고 하나는 수렴을 시키면서 묶어주는 이 양자의 힘이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비로소 올바른 성장을 하는 것이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회는 유감스럽게

이쪽 부분(육적차원)에만 계속 교육시키고 관심을 갖고 힘을 쏟을 뿐이지 이 부분(영적차원)

에 대해서는 아주 등한시하는.

 

# 영적차원을 소홀이 하는 경향

 

아까 이야기했던 것 기도가 보통 우리 일상생활 하면서 "야, 기도 좀 해 달라. 기도해 줄 께"

그랬을 때 그 기도하고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도하고는 좀 다르다. 이랬었는데 보통 일상의

상태에서 기도 이야기하는 그 기도는 구심력으로서 묶어내는, 통합을 일으켜내는 그 차원에서

의 기도가 아닌 거예요.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이러면서 청원, 탄원 중심으로 막 움직이

는 그런 기도는 오히려 이 영역(육적차원)에 있는 기도다 하는 거예요.

 

이 점에 대해서 우리가 좀 깊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기도를 이런 식으로 좀 알아들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에 대한 훨씬 더 깊은 이해라든지 더 바람직한 성장 이쪽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전에 영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사다리 이야기를 얼핏 했던 거 같은

데 이게 사다리인 거예요. 나무로 된 사다리인데 사다리이니까 맨 밑 발판, 그 다음 고 위 발판

그 위 발판 이래 가지고 맨 꼭대기에 올라가죠.

 

 

 

인간 존재의 대사슬이라는 존재가 연결되어 있는 그 차원에서 이렇게 보면은 밑에가 몸 수준인

거예요. 이 발판이. 그 위가 정신이고 그 위가 영성인 거예요. 그 위에 가면 이제 목적지. 사다리

위에 올라가죠. 인간의 긍극적인 실현, 인간 존재의 완성인 거예요.

 

이렇게 따지면은 몸 차원이 따로 있고, 정신 차원이 따로 있고, 영혼의 차원이 따로 있는데 그런

면도 분명히 있고. 그래서 다른 거예요. 그런데 이 나무 사다리가 재질이 전부 나무로 된 사다리

인 거예요. 전부 나무인 거예요. 똑같이 이래 나무들이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 말은 이 전

체가 하나의 영성을 드러낼 수 있는 거예요. 마치 핏줄이 흐르는 것처럼.

 

심장을 나온 피가 발에도 가고, 뇌에도 가고, 온 전신을 도는 것처럼 이 영성이, 영성의 그 수준

이 이런 식으로 전부 똑같은 영성을 이루면서 가는 거예요. 그 말은 영성에도 몸도 건강한 사람

이 있고, 좀 약한 사람이 있고, 강한 사람, 약한 사람 뭐 이렇게 차등이 좀 있겠죠. 정신 면에서

도 차등이 있죠. 좀 똑똑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과 좀 덜 받은 사람 그런  것처럼 영혼에 있

어서도 당연히 차이가 있는 거예요.

 

# 영혼에도 차이가 있다

 

내공이 더 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얕은 사람이 있죠. 그런 것처럼 그 영혼에 따라서 그 영성의

깊이에 따라서 이 전체 사다리의 질이라고 그럴까 수준이 자리메김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낮은

차원의 영성이라면은 그 사람의 몸도 역시 낮은 차원의 몸이 가 있는 거예요. 왜? 똑같은 핏줄들

이 흐르면서 똑같은 어떤 수준, 차원을 결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영성이 얕으면은 그 사람이 공부를 많이 했다 이래 가지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정

신적인 어떤 차원도 역시 좀 낮은 그런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그래서 몸은 그저 몸짱이니 어쩌

면서 몸만 따로 떼네 가지고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정신은 또 정신에 대해 가지고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 거기에 따라서 또 따로 떼어서 보고, 인류 대학을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

그것만 가지고 떼어서 보고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없다 하는 거예요.

 

각 부분을 가지고 다른 차원을 논하기도 하지마는 그래서 어떤 면에 있어서는 각자 안에서 몸

차원보다 정신 차원이 더 높은 차원이고 영의 차원이 더 높은 차원이고 그렇기는 하지마는 사람

전체의 차원이 또  하나의 같은 나무 사다리 혹은 같은 핏줄이 흐르는, 같은 피가 흐르는 그런

차원으로서 전체의 차원이 낮은 차원, 높은 차원 이런 식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하는 거예요.

 

# 영성의 깊이에 따라 몸, 정신, 영혼의 수준이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의 차원, 영성의 차원을 더욱 더 심화 시키고 깊게 한다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예요. 이런 부분에 있어서 그 영성을 그러면은 심화 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다리 전체를, 사다리 사이에 흐르는 피의 수준을, 피의 성분을 훨씬 고급으로

좋게 만들어 내가 위해서 사다리 전체를 한 차원 더 끌어 높이기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도의 작업이 이래서 중요하다.

 

# 영성을 심화 시키려면 영성에 대한 교육과 기도가 필요

 

사실은 다음 주 강의 때 기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자 그럼 구체적으로 기도를 어떻게

할 건가  그거를 다루면 되고 오늘 이 시간에는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들, 이런 것들을 좀

다루려고 그러거든요. 그랬을 때 사실은 오늘 이 시간의 강의나 우리의 나눔을 통해서 기도가

정말 중요하구나. 그리고 기도가 진짜 하고 싶다. 기도를 해야겠다. 이런 어떤 열정이 올라올

수 있다면은 그것으로서 우리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 이번 시간에 ... / 기도의 필요성 느끼기

 

그래서 정말 기도가 중요한 거구나. 그에 대한 깊이를 이거 끄집어 올려야 되는데. 영성 이야기

를 할 때 우리가 그러면은 그런 영성을 심화 시키기 위해서 이 영혼의 차원을 더욱 더 성장시키

기 위해서 영성을 심화 시키고 그러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하다 이러는데 이제 이 차원에서 여러

분들한테 묻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들이 평소에 기도하는가?

 

# 우리는 기도하고 있는가?

 

어때요? 여러분들 중에 성경 공부 뭐 말씀 공부라고 그러나 성경 공부 하고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세요. 꽤 되죠. 말씀에, 성경 속에 진리가 있다 이래 가지고 말씀 공부, 성경 공부 많이

하는 것 대단히 바람직하고 좋죠. 그런데 집에서 이런 식의 기도들 그러니까 가톨릭 신자 같으면

묵주기도는 일단 빼 놓고 묵주기도 말고 묵상기도라고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적어도 30분 이

상 40분, 50분 1시간 이런 식으로 하는 그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 예, 손을 올릴까 말까? 그런

데 아까 성경 공부하고 있는 사람 손 들으라 했을 때는 훨씬 더 많았거든요.

 

# 성경 공부에 비해 기도하는 사람이 훨씬 적다

 

당장 딱 여기에 여러분들이 그냥 일반적으로 표본추출해 가지고 검사를 하는 거다 이렇게 봐도

무방하겠다 싶은 거예요. 성경공부에 비해서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은 훨씬 적거든요. 이 말이

우리의 영성에 대한 공부 내지는 영성을 심화 시키는 것 하고 관련지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

인 거예요. 성경 속에 진리가 있다. 성경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 말은 나름

대로 맞고 괜찮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가지고 공부할 때는 거의 대부분 성경공부가 어느

수준에서 일어나느냐 하면은 이 정신 수준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지식 차원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예수님이 일으키셨던 그 당시 사회

적인 배경 속에서 사건들을 이해하고, 그런 어떤 이해하고, 머리로 알아듣고, 풀어나가고, 끄떡

거리고 하는 그 내용들이죠. 그래서 성경공부를 많이 했으면은 우리가 한 시간 동안 예수님에

대해서 한번 설명을 해 봐라 이러면은 강의는 멋들어지게 할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런데 정작 사는 모습은 성경 말씀대로 그렇게 살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은 별로 자신이 없죠.

성경공부, 명동 성당에 가서 성경공부 열심히 하고 집에 와 가지고는 애들한테 막 엄마 없는 사

이에 집안 청소고 안 해 놓고 설겆이 감만 잔뜩 쌓아 놓았다고 고함을 질러버리고, 바깥 양반

퇴근해 가 들어오면은 짜증부리고, 고함지르고 뭐 이렇게 될 가능성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정신을 통해서, 이성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하고, 영을 통해서 기도라는 작업 안에

서 뭔가 알아가고 배워나가고 심화시켜 나가고 하는 것은 다른 거예요.

 

# 이성을 통한 공부와 기도를 통한 배움은 많이 다르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로 신앙생활을 한다 이러면은 미사드리고, 기도한다 이러면은 가톨릭 기도

서에 있는 기도문 내지는 가톨릭 신자들 같으면은 묵주기도, 개신교 신자들 같으면은 보통 통성

기도 뭐 자유기도 이런 식의 기도들. 그 기도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그 기도들이 일어나는

깊이, 수준이 어디냐 하면은 거의 대부분이 정신 수준에서 일어나 버리는 거예요. 그 다음에 좀

있다 더 자세히 보겠지마는 우리가 하는 이 영적 차원에 있어서 기도한다 할 때도 이 기도도 자

칫 잘못하면은 그냥 지성 차원에서의 기도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다분이 있는 거예요.

 

# 영적 차원의 기도가 지성의 차원에 머물 위험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좀 확실하게 구분을 하고 영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기도와 지성의 차원

에서 일어나는 기도가 다른 것이 우리한테 정작 우리 존재를 통합시키고 사회를 통합시켜 내기

위해서 필요한 기도는 영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기도다. 이점에 대한 명확한 인식, 자각이 필요

한 거예요.

 

# 우리 존재, 사회를 통합시키기 위한 영적 차원의 기도

 

그래서 지금 지성의 차원의 기도로 전락한다는 뭐 이런 이야기들이 뭔 소리인가 하니까 대게

이렇게 보면은 기도한다고 앉아 가지고 그거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생각들을 좀 하고 마는 것.

그걸 기도라고 알아듣고 있으면은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다 해 가지고 영적으로 깊어지지 않

는다 하는 거예요.

 

성경을 가지고 하면은 성경 말씀의 의미가 뭔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

다. 살고자 하면은 죽어야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거 이렇게 이 생각 저 생각  그

생각 조금 하고 있는데 곗날 곗돈 낼 생각이 또 떠오르고 그래서 이 분심이니 이러고 해서 치우

고 나면은 또 시어머니 편찮으신 것도 생각나고, 애들 과외시킬 것 생각나고, 뭐 이런 저런 생각

들도 좀 하면서 간간이 성경 구절들 생각하고 있고.

 

이래 되면은 물론 기도를 해 나가는 초반에 있어서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다듬어

갈 수 있기는 하겠지마는 그렇게 하고 있을 때 그것 자체가 제대로 된, 바로 가고 있는 기도라

고 이야기를 하면은 그건 곤란하다 하는 거예요.

 

지금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이 또 곧잘 하는 이야기가 그거죠. 그래 그럼

기도가 정말 중요하겠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싶다. 해야 되겠다.  그런데 이 놈아, 니 같이 이렇

게 팔자가 좋아 가지고 삼시세끼 밥 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해 주는 밥 받아 먹고 그거고

앉았으니까 무슨 1시간씩 기도를 하니 어쩌니 이래 이야기를 하는데 니도 우리처럼 처자식 먹여

살려봐라. 1시간씩 기도할 시간이 나오는가? 니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살림을 한번 살아

봐라. 살림 살면서 1시간씩 기도할 수 있겠는가?

 

어때요? 진짜 그런 거 같은데 ^^*~~ 괜히 또 여러분들 머리 속에 지금 무슨 아니야, 저거 무슨

저래 물으면 저기에 따른 정답이 따로 있을꺼야. 정답 생각하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여러분들

안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한번 해 보세요. 기도를 만일 이런 식의 기도를 하기를 요청한다면은

그 기도가 정말 어려운데요 할 때 그 어려운 이유가 뭔가?

 

# 기도하기 힘든 이유는?

 

기도를 못 하게끔 그렇게 우리를 잡아 당기는 것이 뭔가? 어떤 점 때문에 기도하기가 힘들어요?

아무래도 자매님이 제일 가까운데 계시니까 한번 물어볼게요.

 

"저도 봉사활동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다 보니까 정말 이렇게 한 시간이고 이렇게 앉아 있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신부님 말씀 듣고 지금 강의를 듣고 보니까 핑게 같앴어요."

 

괜히 막 너무 이렇게 겁먹고 그러지 마시고 ^^*~~ 기도하는데 이런 이유들 때문에 좀 힘들다

하는 거 혹시 생각나는 거 있으신지?

 

" 아이들 학교 가고 있는 고 시간이 저희들이 혼자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데 그 시간 마저도

이제 성당에서 봉사하다 오면 피곤해 가지고 한 12시쯤 성당에서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한 시

간쯤 자야 되고 그러다 보면 애들 올 준비해야 되고, 애들이 집에 와 버리면은 옆에서 텔레비젼

틀어놓고, 그런 환경들이 기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서.

 

저 같은 경우에는 조배실에서 1주일에 한 번씩 가서 기도를 하는데 그 시간 도 아까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뭐 정말 말씀 안에서 깊게 묵상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변에 그런 근심걱정들을

정말 청원하는 외에는 3시간을 앉아 있어도 한 절반 이상 그런 기도로 흘러버리고 말거든요.

그러니까 가정 생활 하면서도 이렇게 나 혼자 조용히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그런 시간적인 여유가

의외로 부족한 거 같애요.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도 많이 들리고. 그래서 저는 기도할 때는 그게

제일 힘든 거 같애요. 혼자 깊게 잠길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예, 저런 이야기들. 일반적으로 많이 하시고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렇

죠. 그런데 이제 바쁘다든지 이런 이야기들.

 

# 바쁘다

 

직장 생활 이야기 나오고, 그 다음에 집안 같으면은 분위기가 이렇게 조용하게 머물 수 있는

위기가 못 된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도 하고 이러는데 바쁜 이야기 같으면은 저도 그냥 고등학

교를 졸업을 하고 그래서 신학교에 와서 신부가 됐고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딱히

뿌러지게 뭘 아는 것이 없고 하면은 또 그러면은 그런가? 이러면서 기가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아유, 나도 직장생활 안 해 봐 노니까 잘 모르겠네요." 할지 모르겠지마는 유감스럽게도 제가

볼 때는 그거는 별로 합당한 이유가 못 되는 거 같은 거예요.

 

제가 아주 신앙생활을 늦게 했죠. 그것도 아주 늦게. 개신교 생활부터 시작을 해 가지고 그 다음

에 가톨릭으로 넘어 왔죠. 그리고는 수도회에도 늦게 들어왔죠. 수도회에 들어오기 전에 만 6년

을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렇게 들어왔죠.

 

그때 보면은 아침에 일어나면은 성무일도부터 하는 거예요. 아침에 성무일도 하고, 성무일도는

그때는 그러니까 수도회 가야 된다 이런 생각도 안 하고 있을 때인 거예요. 성무일도를 이렇게

하고 그리고 나서, 그런데 그 성무일도 중에서 사제들만 하는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하는 게 또

따로 있죠. 그것까지 다 하고 그 다음에 묵주알 굴리면서 그때 수유본당을 다니고 있었는데, 수

유본당을 이렇게 걸어가면은 묵주 한 꿰미 딱 돌리면은 본당에 탁 들어가죠.

 

그러고는 마치고 미사드리고 집에 와서 막내 동생하고 자취하고 있었느니까 아침 밥 해 먹고

그리고 출근하죠. 근무한데가 또 법원이 되니까 정동에 프란치스코 회관이 있죠. 점심 시간을

이용을 해 가지고 프란치스코 회관 거기에 가면은 지하 경당, 아주 멋있는 경당이 하나 있죠.

거기에서 1시간 기도를 하고 그리고 이렇게 집에 돌아오는 거예요. 아, 사무실로 와서 물론 퇴

근하고 그러면 또 블론티어(자원봉사자) 하던 것 이어지죠. 무슨 소리냐 하니까 내가 정말 좋아

하느냐 하고 묻고 싶은 거예요.

 

# 정말 기도하고 싶은가?

 

정말 좋아한다면은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짜낸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은 정말

좋아하는데 ?내가 이래저래 너무 바빠 가지고 네 얼굴을 볼 시간이 없다. 만날 시간이 없다. 이

러면은 그걸 우리가 믿을 수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정말 좋아하면은 다른 거 다 제쳐 놓고 그

일에 빠져들 것 아닌가?

 

그리고 정말 좋아한다면은 집에서 기도하려고 하니까 애들이 와서 떠들고, 애들 조용히 해 가지

고 공부시켜 놓고 나니까 남편이 와서 또 뭐 이것저것 내 놓으라고 그러고. 남편 또 차려주고 나

니까 또 뭐 주말 연속극 돌아가고 있고. 이래 가지도 정말 좋은 시간, 조용히 기도에 머물 수 있

는 시간이 안 나오는데요. 그런다면은 정말 좋아한다면은 새벽에 일어나서 1시간  머무시는 것

이 훨씬 중요하다고,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즉 24시간 중에 그저 시간 비는 시간, 오후 1시간이나 저녁 1시간 이렇게 빼내 가지고 하면은

그 시간에는 여러 가지 분심, 잡념들 때문에 휘둘리기 십상이고 이미 하루의 일들이 주욱 시작

돼 버렸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몸과 마음이 피곤해 가지고 졸리고 막 그러기 십상이

죠. 그래 가지고는 깊이 있는 기도들이 되지를 않는다 하는 거예요.

 

영적 차원에서 제대로 된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진짜 자매님 말씀하신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여야 하죠. 주위 상황에 의해서 방해받지 않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1시간을 빼 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는 거예요.

 

# 의지만 있으면 기도를 위한 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을 또 남자들 같으면 특히 그럴거예요. 직장 생활하고 그래 봐라. 어떻게 시간이

나오는가? 예, 제 경험에 의해서 볼 때 그런 것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이거는

다음 주에 기도 주제하고 관련지어서 좀 이야기를 할 문제이기도 한대. 우리가 기도한다 이러

면은 내 삶하고는 좀 별개의 문제죠.

 

# 삶과 분리된 기도

 

그러니까 우리의 기도를 이렇게 가만히 보면 "이거 해 주십시오. 저거 해 주십시오" 하면서

청원기도 하는 것. 우리가 화살기도라고 하는 것. 막  쏘아대면서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하느님 이거 해 주십시오. 저거 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라고 생각을 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태반이고 거기에 덧붙여서 이제 그런 것 말고 제대로 좀 기도한다 할 때 또 이 기도는 우리

삶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아무 관계가 없다면 좀 어패가 있지마는 현재 내가 처해 있는

상황하고는 좀 동떨어져 있는.

 

즉 성경 구절도, 지금 우리 집안에 우환이 생겨 가지고 남편하고 내 하고 지금까지 정말 금슬

좋은 부부로 계속 살아왔는데 이상하게 요즘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 같고, 그래 가지고 막 머리

속에 가득 차 있는데 그거는 제쳐 놓고 자매님 기도해야지요. 이러면은 아, 자 그러면 기도해야

지 이러면서 그날 복음 떡 펼치니까 산상수훈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그것 가지고

기도하려고 막 애를 쓰다 보니까,

 

남편 얼굴 자꾸 떠오르고 어제 밤에 걸려 왔던 어떤 이상한 여자 목소리 떠오르고 그러면서

제 기도가 안 된다고 이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예, 내라도 그렇게 되면은 기도할 시간 진짜

안 나오죠. 내 삶 하고는 유리된 가운데 따로 특별히 기도만을 위한, 그것도 성경을 가지고 하

는 기도만을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해라. 그리고 그 기도를 해야 된다. 이러다 보니까 계속

내한테는 의무감만 주어지는 거예요.

 

# 삶과 분리된 기도는 의무감과 부담만 갖게 한다

 

기도해야 된다. 해야 된다 하면 할수록 점점 늪에 빠져들죠. 이래 되면은 기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삶 자체가 기도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거예요.

 

# 삶 자체가 기도

 

삶 자체가 기도다. ?예컨대 부부 싸움을 크게 했다. 그러면은 기도하지 마라고 그래도 남편하고

싸웠던 생각이라든지, 차 마시면서 남편 출근시켜 놓고, 설걷이 다 끝내 놓고 앉아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남편이 요즘 나한테 왜 이럴까? 혹시 숨겨 놓은 여자가 있나? 오만 생각을 하면서

차 마시면서 가끔은 또 제 설움에 겨워 가지고 훌쩍거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죠.

 

남편과 나와의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그 동안에 에너지를

소모를 하지 않느냐 하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은 그런 삶의 문제를 그대로

기도 주제로 가지고 와서 기도의 형태를 띠면서 그 고민을 해라.

 

# 삶의 고민을 기도의 형태로 가져오기

 

그래서 기도의 주제가 남편과 나와의 관계, 부부가 뭔가? 같이 산다는 게 뭔가? 남녀라는 것이

도대체 뭔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결혼 서약이 무슨 의미

인가? 이런 걸 가지고 와서 기도하고 있으면은 남편하고 요즘 내가 살아가는 모습, 일어나고 있

는 관계들, 결혼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화되어 오는 모습들. 이런 것들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면

서 머물고, 생각도 좀 하고, 느낌이 올라오면은 거기도 머물고 이런 식으로 앉아 있다 보면은

시간은 시간대로 잘 가고, 중요한 문제는 중요한 문제 대로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되기도 하고 그

렇게 될 수 있지 않느냐? 그래 된다면은 그것 자체가 기도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은 어차피 고민하고 따로 시간 내 가지고 그 삶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해야 될 판이죠.

그것을 우리는 기도 형채로 가져오자. 그러면서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차원 높은 단계에서 이

문제를 해결 해 가려고 애를 쓰자. 그 이야기인 거예요.

 

#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도록

 

그러다 보면은 바쁜 시간 굳이 없이도, 바쁘고 그런다 하더라도 기도할 시간을 마련할 수 있고,

또 옆에서 좀 시끄럽고 떠든다 손 치러라도 ?내가 지극히 관심 있고 중요한 문제에 몰두해 가지

고 머물면은 그것도 역시 가능해진다.

 

# 기도와 삶을 연결시키면 기도에 집중할 힘이 생긴다

 

이런 점에서 기도와 삶을 밀접하게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 기도한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도할 때는 공부하는 것하고 다른 거예요.

 

# 기도는 지식을 키우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

 

대학 시험보기 위해서 혹은 뭐 국가고시 치기 위해서 그럴 때는 메마른 지식만 막 키워 나가는

그런 꼴이죠. 그런데 기도는 반드시 우리 같으면은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 기도는 반드시 예수님과 함께

 

내 혼자 기도한다고 골방에 문 걸어 잠그고 앉았는 것이 아니고 기도한다고 앉았을 때는 예수님

과 함께 기도하다 보니까 혹은 성령과 함께 혹은 하느님과 함께 혹은 도와 함께 혹은 불자들 같

으면은 부처님과 함께 그렇게 기도에 머물다 보니까 이게 그저 메마른 지식을 키워가는 것이 안

니고 대단히 따뜻한 교류가 일어나는 거예요. 사랑의 관계 속에서 기도들이 이루어져 나가는 거

예요.

 

# 사랑의 관계 안에서 기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의 날 향한 그 사랑에 내가 깊게 감동하면서 그렇게

머물고 있다 보니까 기도 중에 뭔가 알아듣는 것은 내 안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서 올라오기

마련인 거예요. 이런 점에서도 이 기도, 그런 차원에서, 영적인 차원에서, 우리 존재의 깊은 차

원에서, 통합을 이뤄내는 차원에서 뭔가 알아듣고 위로를 받고 힘이 쌓이게 되면은 일상에서

머리를 써서 풀어나가야 되는 문제들은 저절로 훨씬 쉽게 정리되어 나가고 풀린다.

 

# 깊은 영적 차원에서 얻은 힘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으로

 

삶을 똑바로 살기 위해서도 영성적인 문제는, 기도의 문제는 아주 절실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따뜻하게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생기를 회복해 내는 가운데 갱년기 장애

도 소리 소문 없이 떨어져 나가는 것 아닌가? 그거 무슨 갱년기 장애 떨칠 거라고 약 먹고 좋은

음식 소문난 거 챙겨 먹고 그래 봐야 그거 앓는 거 다 앓게 되지 안 떨어지죠. 그 힘과 에너지가

있으면은 기도에 머물면은 훨씬 거 쉽게 극복하고 높은 차원에서 정리되어 나갈 거라는 거.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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