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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15 조회수1,605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6월 15일 삼위일체 대축일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ight not perish
but might have eternal life.
(Jn.3,16)
 
 
 
제1독서 탈출 34,4ㄱㄷ-6.8-9
제2독서 2코린 13,11-13
복음 요한 3,16-18
 

어제 강의를 마치고 사제관으로 돌아오기 위해 답동성당의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제 등 뒤로도 자매님 몇 분 역시 이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저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립니다.

“저 앞에 가시는 신부님, 유명한 신부인데....”

이 말에 다른 자매님께서 “빠다킹 신부님이시잖아.”

그러자 그 옆에 계신 자매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무슨 소리야! 저 신부님은 조명연 마태오 신부야.”

그래서 제가 뒤를 돌아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유명한 신부, 조명연 마태오 신부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상으로는 빠다킹 신부입니다.”

그렇게 유명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분들이 말씀하신 ‘유명한 신부’, ‘조명연 마태오 신부’, ‘빠다킹 신부’는 서로 다른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이 분들이 말씀하신 세 인물은 모두 같은 한 명인 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고, 어디서 활동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이름이 불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의 실체(實體) 안에 세 위격(位格)으로서 존재하는 하느님의 신비를 보여주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앞서 서로 다른 세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한 명인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한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잘 이해하기 힘든 개념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구원을 위한 성부 성자 성령의 완벽한 일치와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은 따로 분리되어 활동하지 않고 하나를 이루어 서로에게 힘을 북돋워주면서 ‘인간구원’을 위한 활동을 잠시도 멈추지 않으십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도 이렇게 하나의 일치를 이루시는데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는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출신 학교가 다르다는 이유 등등으로 하나가 되기를 거부했던 많은 모습들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구분을 두려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할 수 있었던 것도 분리되어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묵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일치의 삶을 사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마음을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어 하느님 나라에 더욱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입니다.

물질이 적을수록 그것을 위한 관심과 시간도 그만큼 덜 소비된다. 대신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된다. 그 시간만큼 사랑할 시간, 감사할 시간이 주어진다(사라 오렘).

 

하느님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중 해럴드 러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었습니다. 그는 ‘나는 이제 쓸모없는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극심한 좌절에 빠졌지요.

실의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문득 ‘그래도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는 의사가 만들어 준 의수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직접 불구자의 모습으로 출연해 온 힘을 다해 연기했습니다. 그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과 특별상을 탔지요. 바로 제19회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우리 생애 최고의 해’입니다.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했습니다.

한 기자가 찾아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육체적인 장애는 저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잘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 이해되지 않음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모든 고통과 시련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또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현실에 집착하고 있으면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순간에서도 지금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할 때 희망이 환하게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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