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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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주신 최고의 선물 -미사예찬-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2 조회수879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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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2. 주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신명8,2-3.14ㄴ-16ㄱ 1코린10,16-17 요한6,51-58


 

하느님 주신 최고의 선물

-미사예찬-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한 마디로 성체성사, 미사 대축일입니다.

 

강론 제목 역시 미사가 얼마나 좋은가 하는 '하느님 주신 최고의 선물-미사예찬-'이 되겠습니다.

매일 미사의 힘으로 사는 수도자에겐 더욱 그러합니다.

 

분명 주님도 오늘 복음에서 이 점을 지적하십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결국 오늘 대축일은 하느님의 사랑이 결정적으로 계시된 날입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 승천대축일, 주님 성령강림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

그리고 오늘 주님 성체성혈 대축일, 모두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 사랑이시다'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밥인 생명의 빵으로 오시는 사랑의 하느님, 바로 이게 오늘 대축일의 의미입니다.

 

오늘 강론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의 성체거동에 앞서 행한 강론에서 착안했습니다.

여기서 교황님은 오늘 대축일의 근본정신을

'머물고 기억하며 걷는 것'이라 요약하셨고(매일미사 책, 오늘의 묵상 149쪽)

저 역시 교황님의 통찰에 그대로 공감했습니다.

 

오늘 저는 미사가 얼마나 좋은지 이 세 측면에 따라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주님 안에 머무십시오.

 

주님 안에 머무는 미사시간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관상이 우선입니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는 말씀도,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는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餘)와 휴(休)를 잃어가는 세상입니다.

멈출줄 모르는 것도 큰 병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여와 휴를, 영육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미사보다 더 좋은 쉼터는 없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주님의 사랑의 성체성혈을 모셔야 살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안에 머뭄으로 완전히 내외적 일치를 이루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바로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주님과 상호내주를 통한 영원한 생명의 체험이요

미래에 대한 영원한 보장이 되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입니다.

 

미사 아닌 어디서 이런 영원한 생명, 영원한 희망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이 우리 믿는 이들에게 주신 최고의 사랑 선물이 미사입니다.

 

미사예찬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미사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하느님의 아름다움이요,

미사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기억하는 미사시간입니다.

기억보다 더 영성생활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요즘 치매환자들이 날로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미사보다 치매예방에 좋은 것은 없습니다.

 

정말 깨어 절실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여한다면 기억상실의 치매는 없을 것입니다.

 

성체성사의 본질은 '사랑의 기억'(아남네시스anamnesis)'입니다.

 

'사랑의 기억' 참 고마운 말마디입니다.

사랑의 기억들로 가득할 때 영적 풍요의 행복한 삶입니다.

사랑의 기억들로 충만케 하는 미사은총입니다.

 

주님 사랑의 기억인 아남네시스 미사가 과거를 현재화하고 미래를 현재화하여

지금 여기서 영원한 현재를, 영원한 오늘을,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행복을 살게 합니다.

영적인 '치매현상(dementia)'을, '기억상실(amnesia)'예방합니다.

 

영성생활은 순전히 주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여 현재화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1독서 신명기의 모세 역시 광야여정을 마쳐가는 당신 백성에게

하느님을 기억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광야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여라.

너희를 종살이 하던 집에서 이끌어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타성화된 안주와 나태의 삶에서 매일 엑스도스, '탈출의 여정'에 항구하게 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영성생활에 망각보다 해로운 것은 없습니다.

하여 매일 성무일도를 바치는 우리들이요,

매일 미사때 마다 축복의 잔을 마시며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축복의 빵을 떼며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나누기에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한 자녀들 공동체로, 주님 안에서 한 형제들 공동체로 살게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셋째, 주님과 함께 걸으십시오.

 

사실 걷는 것은 육신의 건강은 물론 영혼의 건강에도 좋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고 주님을 기억하며 주님과 하나되었으면 주님과 함께 삶의 여정에 올라야 합니다.

성체거동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렉시오디비나가 들음-묵상-기도-관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의 실행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렉시오디비나의 완성이듯이,

미사 역시 파견에 이어 일상에서의 사랑의 수행을 통한 미사의 완성입니다.

 

걸으십시오.

 

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머물고 기억한 것이 사랑의 열매를 맺게하는 걸음의 여정입니다.

 

하느님 향한 우리 삶의 순례여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광야여정입니다.

머물고 기억하면서 계속 주님과 함께해야 하는 여정입니다.

 

제가 성경 표현 중 주목하는 대목이 걷는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의 서품상본의 성구가 좋습니다.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창세6,24).

 

에녹의 승천을 말하는 대목인데,

여기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하느님과 함께 걷다(walk with God)'가입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광야여정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주님 역시 마태복음 마지막 대목에서 분명한 약속을 주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한 게 있습니다.

그분은 삶을 파도타기에 비유했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순리에 따라 파도타듯해야 삶의 항해여정에서 익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혔습니다.

 

"삶 자체는 고해도, 축제도 아니다.

파도타기를 잘할 때 삶은 축제이지만 파도에 휩싸일 때 삶은 고해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 파도타기를 잘하여 축제인생으로 만들어야 한다.“

 

바로 삶의 파도타기를 잘해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만들어 주는 주님의 미사은총입니다.

 

어제 만난, 파도타기 대가의 경지에 오른 선배 원로 신부님의 평범한 말씀도 새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주교님이 용도폐기한 것을 아빠스님이 재활용하셨습니다.

이렇게 불러주어 강의할 수 있음도 감사한 일입니다.

삶을 의무로 알아 억지로 살게 아니라 삶을 즐기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머뭄-기억-걸음'의 영적 삶의 리듬에 충실함으로 파도타기의 명인이 되어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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