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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린 삶 -소속감, 자존감, 존재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4 조회수1,307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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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4. 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49,1-6 사도13,22-26 루카1,57-66.80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린 삶

-소속감, 자존감, 존재감-


 

사람으로 살기 참 힘든 세상입니다.

거리나 전철에서나 차고 넘치는 잉여의 사람들입니다.

 

일과시간이 따로 없는 느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로 북쩍거리는 수도권입니다.

 

특히 뚜렷한 일자리가 없는 60대 이상된 분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새삼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존엄한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지 깨닫습니다.

 

말 그대로 이렇게 살기위해서는 자기와 치열한 싸움이, 영적전투가 필수임을 깨닫습니다.

결론하여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린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대축일을 지내는 성 요한 세례자는 물론이고 모든 우리 가톨릭 교회 성인들의 삶이 이러했습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 성인으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 내린 삶을 사는 이가 성인입니다.

 

뿌리가 없어 방황입니다.

뿌리 없어 방황이는 이들이, 떠돌아 다니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계가 없는 곳이 지옥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언젠가 인용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일정한 경계 없이, 한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삶,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나름대로의 내외적 한계가, 내외적 경계가 있어

그 한계와 경계를 잘 지킬 때 몸과 맘도 무너져 망가지지 않습니다.

 

성인의 삶을 살기 위한 세 측면에 걸친 묵상나눔입니다.


 

첫째, 소속감(所屬感)입니다.

 

제자리의 소속이 있어야 합니다.

이래야 소속감 분명한 삶입니다.

 

분명한 내외적 제자리는 바로, 한계와 경계를 상징합니다.

이런 제자리의 한계 없이는 자기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습니다.

 

누구나의 고유한 제자리는 그 사람의 신원을 의미합니다.

이런 제자리를 잃어 방황입니다.

 

직업상의 자리도 외적 제자리 같지만 본래의 제자리는 아닙니다.

이런 외적 제자리는 언젠가 은퇴와 더불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내 고유의 제자리는 하느님 안입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에 자리 잡을 때 내적 소속감에 안정과 평화입니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빛나리라.“

 

제가 고해성사 때 처방전으로 자주 써드리는 오늘 1독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바로 믿는 이들 모두의 제자리가 하느님 안임을 밝혀줍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에 뿌리 내릴 때 소속감 분명한, 주님의 영광을 발하는 존엄한 품위의 삶입니다.

궁극의 제자리, 하느님 안에 자리 잡을 때 소속감 분명한 안정과 평화의 삶입니다.


 

둘째, 자존감(自尊感)입니다.

 

자존감 약할 때 내적으로 무너집니다.

교육의 우선적 목표도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존감 약한 사람들이 차고 넘칩니다.

자신감이 아니라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자중자애(自重自愛)의 자존감입니다.

 

건강하고 온전한 인간됨에 필수적 요소가 자존감입니다.

자존감 있어야 열등감에 빠지지 않습니다.

 

답은 사랑과 신뢰, 희망뿐입니다.

사랑과 신뢰를 받고 또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신뢰할 때, 희망할 때 증대되는 자존감입니다.

소속감과 더불어 함께 가는 자존감입니다.

역시 우리 고유의 제자리인 하느님 안에 자리 잡을 때 자존감 높은 제정신으로의 삶입니다.

 

사랑으로 하느님 안 제자리에 깊이 뿌리내릴수록,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자존감 높은 삶입니다.

바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확신이 우리의 확신이 될 때 자존감 높은 삶입니다.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이런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내 자존감의 원천이 될 때,

우리 영혼 하느님 사랑 안에 깊이 뿌리내릴 때,

비로소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자존감 높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존재감(存在感)입니다.

 

자존감과 함께 가는 존재감입니다.

우리의 각자의 이름은 존재감을 상징합니다.

이름 없으면 존재감도 없습니다.

 

사람마다 존재감의 정도는 다 다릅니다.

역시 하느님 사랑 안에 깊이 뿌리 내릴 때 참 나의 발견이요 존재감 높은 제대로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는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판에 썼을 때 비로소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렸다 합니다.

바로 세례자 요한의 존재감이 환히 계시되는 순간입니다.

 

정녕 주님의 손길은 요한을 보살피고 계셨고, 요한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합니다.

무럭무럭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자존감 높은, 존재감 뚜렷한 성장한 요한임을 깨닫습니다.

 

겸손은 비굴도, 자기비하의 비겁도 아닙니다.

진정한 겸손은 이런 자존감, 존재감 높은 삶의 열매입니다.

 

자존감이, 존재감이 없으면 참된 겸손도 없습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되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자기의 한계를 분명히 아는 세례자 요한의 이런 겸손은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존재감 뚜렷한 삶을 살아 온 결과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오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파견되십니다.

 

이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안 제자리에 깊이 뿌리 내려

자존감 높은, 존재감 충만한, 제정신에 제대로의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도 하느님 안 제자리에 깊이 뿌리 내린 이의 찬미와 감사의 고백입니다.

 

"오묘하게 지어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시편139,14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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