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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4 조회수1,289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He asked for a tablet and wrote,
“John is his name,” and all were amazed.
Immediately his mouth was opened,
his tongue freed, and he spoke blessing God.
(Lk.1,63-64)
 
 
제1독서 이사 49,1-6
제2독서 사도 13,22-26
복음 루카 1,57-66.80
 

며칠 전에 강의를 위해 전철을 타고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하게 된 강의여서 그런지 꽤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저녁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다들 피곤한 모습을 취하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전철 안에 한 아이가 너무나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 모두가 아이의 소리에 짜증을 냅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아이를 마주보았습니다. 그리고 약간 인상을 쓰면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쉿” 하고 말했지요. 그런데 이 아이의 엄마가 “봐, 아저씨가 조용히 하라고 하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공공장소에서는 당연히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지, 제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고 해서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누구 때문에’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긴 저 역시 제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고 원망을 했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모습보다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지요.

위의 아이의 경우, 왜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것이 근본적인 것이지, 결코 제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는 그 말이 근본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나설 때, 우리는 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도 줄여 나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할례식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때 사람들이 당시 관습에 따라 아기 이름을 아버지 이름인 ‘즈카르야’라고 하려 했을 때, 어머니 엘리사벳은 ‘요한’이라고 불러야 한다면서 반대하지요. 그리고 그 아버지 즈카르야 역시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요한의 잉태 소식을 믿지 않아 벙어리가 되었던 즈카르야의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됩니다.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나섰고 이로 인해 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모를 따라 세례자 요한 역시 근본적인 것을 찾아 나서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에 충실하였고, 또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평생 살다가 순교의 영광까지 얻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돈? 명예?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삶? 그 모든 것보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주님을 따르는 삶이며,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근본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형제 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트레이 파커).

 

어떤 감사를? (김영학, '감사는 고마움에 대한 믿음과 지혜의 행동이다.' 중에서)

감사의 종류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조건(If)의 감사라고 하지요. ‘만약 내게 무엇을 해준다면’, 또는 ‘만약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감사하겠다는 식의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어쩌면 이기적인 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이유(Because)의 감사입니다. ‘무엇을 해주었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감사하겠다는 감사지요. 따라서 어떤 성과의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자칫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기 자신보다 남의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마지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의 감사입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것 자체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언젠가 축복과 은혜와 사랑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또 그렇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첫째와 둘째 감사, 즉 조건과 이유의 감사 수준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님의 축복과 은혜를 느끼지 못하며 그로인해 행복한 삶을 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 주님의 사랑 안에 사는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에 모실 수 있는 오늘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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