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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7 조회수1,561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6월 27일 예수 성심 대축일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meek and humble of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selves.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light.
(Mt.11,29)
 
 
제1독서 신명 7,6-11
제2독서 1요한 4,7-16
복음 마태 11,25-30
 

윌리엄 스태퍼드(William Stafford, 1914~1993)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는 성인이 된 후로 매일 한 편의 시를 썼던 것으로 유명하지요. 창작의 어려움을 겪은 한 젊은 시인이 스태퍼드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시를 쓸 수 있습니까? 저는 단어 하나하나마다 혼신을 쏟으며 만족스런 시 한 편을 쓰는 데 몇 주가 걸립니다.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시면서 어떻게 매일 시를 쓰실 수 있습니까?”

젊은 시인에게 스태퍼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네의 기준을 낮추게나.”

50년 동안 윌리엄 스태퍼드는 약 22,000편의 시를 썼습니다. 과연 이 시 전부가 출간되었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시는 현대 영시의 위대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즉, 자신의 기준을 낮춰서 매일 매일 한 편의 시를 쓴 것이 후대에 남기는 유산이 된 것이지요. 스태퍼드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특히 주님을 따름에 있어서 무조건 따라야 하는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능력이 없다’, ‘가진 것이 없다’, ‘운이 없다’ 등등의 이유를 들면서 주님을 따를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을 당신께로 부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즉,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진짜 지혜가 아니라 단지 지혜처럼 보이는 것을 지녔을 뿐인데도, 예수님께서 그들을 지혜로운 자들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은 단순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세상에서 인정하는 지혜를 갖춘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철부지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주님께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 낮은 곳이라도 주님과 함께라면 기꺼이 갈 수 있는 사람, 늘 겸손한 마음을 갖춘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에게 부족한 모습이라고 해서 포기하고 좌절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인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단순히 주님의 사랑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닌, 이제 우리 역시 이 사랑을 본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참 제자라 불릴 수 있으니까요.

참, 오늘 예수 성심 대축일을 1995년부터 해마다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는 가운데 성덕을 쌓을 수 있도록 스스로 다짐하고,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어렵고 힘들어 하는 사제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꼭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과실은 사람을 결합시키는 힘이다. 진실은 진실한 행위에 의해서만 전달된다(톨스토이).

 

이런 사제를 청합니다.

어느 책에서 본 글인데, 너무 좋아서 글 내용을 적어 놓았지요. 문제는 어떤 책에서 보았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어느 성인의 글이었는데.... 그래도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그냥 올려봅니다.

“나는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말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죽음에 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고 나의 벗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원한다면 그분에 관해서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그분을 알게 되도록 해 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대가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나에게 오시오. 만약 그대가 고통 받고 있다면, 내가 그대에게 갈게요. 나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분께 순명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마음에 두고 있는 많은 것들이 나에겐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그대는 나의 얼굴에서 여유와 기쁨을 보게 됩니다.”

이 글을 보면서 사제의 모습에 대해 묵상을 해 봅니다.

사제는 교회 안에서 무엇이 되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묵상하게 됩니다. 즉, 만약 성직자로서 어떤 출세를 꿈꾸는 사람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제는 세상의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도 그것이 고통이 되어선 안 됩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이 41년 5개월 동안 머물렀던 프랑스의 아르스, 오상의 비오 성인이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이탈리아의 산 조반니 로톤도를 보십시오. 이 두 곳 모두 정말로 외진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성인은 비록 외진 곳이었지만, 이곳에 하느님의 빛이 내리고 있기에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빛이 내리고 있는 곳, 그곳에 있음 그 자체로도 만족하고 감사하며 행복할 수 있는 사제. 이러한 사제가 되기를 주님께 청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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