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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 사도 대축일 2014. 6. 29.)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7 조회수849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 베드로와 성 바울로 사도 대축일 2014. 6. 29.

마태 16, 13-20.

 

오늘 복음은 카이사리아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16세기 개신교가 분리되면서 가톨릭교회는 이 한 구절에서 로마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보려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들이 로마 교황들이니까, 로마 교황을 받아들이지 않는 개신교 교회들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개신교 교파들은 오늘 복음의 말씀이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말씀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개신교와 가톨릭의 모든 성서학자들은 그런 논쟁을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오늘 복음의 말씀은 마태오 복음서를 집필한 시리아 지역 교회가 베드로 사도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애착과 평가를 담아 표현한 것입니다. 신약성서에는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회상과 더불어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초기 신앙공동체의 믿음도 함께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회상은 신앙인들의 삶 안에 녹아들었고, 그들이 믿고 있던 바가 신약성서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신앙은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어떤 선포가 교회를 출현시켰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승천, 성령강림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교회를 발생시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실망한 제자들은 모두 흩어져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그들 안에 발생하면서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이 교회를 출현시켰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세상 종말까지 어느 날이나 항상”(마태 28,20) 성령으로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복음 선포와 신앙공동체를 위한 그들의 봉사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교회 초기의 신앙인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 후에도 그들은 유대교의 회당에 출입하였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그들의 믿음 때문에 그들은 유대교의 회당에서 점차 쫓겨납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교의 기득권층입니다. 그리스도신앙인들은 그들로부터 박해를 당하고 추방되면서, 그들은 그것이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반영하는 복음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가 제 스승처럼 되고 종이 제 주인처럼 되면 넉넉합니다. 그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 했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하겠습니까?”(마태 10,25).

 

교회의 제도나 조직을 예수님의 지상 생애와 관련지으려는 노력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교회의 팽창과 더불어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초기 신앙인들이 볼 수 있었던 이상적 조직은 로마제국의 것이었습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는 말했습니다. 교회는 역사 안의 사회적 실재이며 그 시대 사회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는다.”(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44). 로마제국 시대의 신앙공동체가 그 조직에 있어서 로마제국의 중앙집권적 절대 군주제도를 지향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시대 가장 실효성 있는 조직과 제도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도입된 조직과 제도를 예수 그리스도 혹은 하느님과 연결시켜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역사 안에 살아 있는 교회가 도입한 제도는 그 시대 교회를 위해 그 시대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한 시대의 것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절대화하여, 시대가 달라졌는데도, 그것을 강요하면, 교회는 실효성 있는 공동체가 되지 못합니다. 과거의 한 생명체가 생명을 잃고 그 형태만 남은 것을 박제품(剝製品)이라 이릅니다. 그것들은 형태는 있으되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으니 활기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의 제도가 시대를 외면한 것이면, 복음적 삶과 생명을 질식시켜버립니다. .

 

 

오늘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각자가 자유롭게 토의하고 기여할 수 있을 때, 그 조직은 그것이 지닌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합니다. 과거 사회에서 군주(君主)나 영주(領主)는 한 번 그 자리에 오르면, 그 인물의 실효성과 관계없이 군림하였습니다. 그 조직을 위해 전혀 기여하는 바가 없어도 성은이 망극하고’, 통촉하심으로 모두가 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현대 세계에서도 그런 집단을 굳이 찾으려면, 부자(父子)간에 권력을 승계하여 세습하는 이북의 국가 체제일 것입니다. 그 집단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지는 우리가 오늘 잘 보고 있습니다. 인민은 자유가 없고 세계의 평화는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교회의 제도가 어떤 실효성을 지니는 지를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 사이에서 섬기는 분으로 자처하셨고, 사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섬김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리스도 복음은 인류를 위한 봉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의 제도는 과연 자유로운 봉사를 조장하는 것인지, 혹은 일부의 사람들이 기득권층으로 행세하고, 신앙인들의 봉사를 외면하고 있지나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율법과 제도 안에 안주해 버린 유대교 기득권층을 비판하셨습니다. 스스로 새로워지지 않는 생명체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쇄신하지 못하는 집단은 그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텅비어버린 오늘 유럽의 성당들은 우리에게 경고하는 바가 있습니다.

 

교회도 새로워져야 하고 우리도 새로워져야 합니다. 지키고 바쳐서 천당에 가기 위한 그리스도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연 이웃을 위해 섬기는 사람들인지 우리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기득권을 주장하면서 행세하지 않고, 자유롭게 봉사하는 길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신앙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같이 예수님이 우리 안에도 섬김으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되도록 우리는 주변을 위해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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