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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시찬 신부님 성이냐시오 영신수련 제12강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8 조회수1,912 추천수1 반대(0) 신고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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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찬 신부님의 성 이냐시오 영신수련 깊은 데에 그물을 쳐라

 

 

 

제12강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

 

1. 영신수련 [91~98]의 성격
    - 첫째주간과 둘째주간의 이음매
    - 첫째주간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
    - 예수 그리스도의 꿈과 비전
    - 청하는 은총 :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따름

 

2. 구조

 2.1 세상 왕의 부르심에 대한 관상
    - 첫째주간의 정리과정 / 2부로 나아가기 위한 회심

2.2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관상
    - 세상과 원수를 정복하고 아버지의 영광 안에 들어감 : 복음화
    -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와 요구사항 및 열매

 

 3.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과의 관계
    - 영신수련의 두 가지 목적
    -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 정립

 

 4. 영신수련의 전체적 흐름 안에서의 위치
    - 비전 : [91~98]
    - 청사진 내지 계획 : [101~109]
    - 실행 : [110~117]


# 오늘 이야기...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무슨 꿈을 가지고 계세요?

여러분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비전이라든지 청사진을 그리고 계세요?

예수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는 삶의 어떤 목표라고 그럴까? 비전은 무엇었을까요?

 

# 예수님의 꿈, 목표는

우리 그것을 깊게 알아보고 우리의 꿈들과 한번 비교해 봤으면 합니다.

 

# 시작기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좋으신 예수님, 저희들 이제 영신 수련을 통한 영적 여정에 있어서 첫째 주간을 마치고 둘째

주간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

을 통해서 당신께서 가지고 계셨던 꿈, 당신의 비전을 저희들이 깊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저희들의 이 둘째 주간의 여정을 통해서 당신을 더 깊이 알게 하시고 아는 만큼 더

많이 사랑하게 하시고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더 잘 따를 수 있도록 저희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더해 주십시오. 좋으신 당신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이번 시간 ...

영신 수련 첫째 주간에서 둘째 주간으로

 

예, 좀 전에 시작기도에서도 이야기 했지마는 이제 첫째 주간을 마치고 둘째 주간으로 넘어

가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거는 방송의 흐름상 지금 둘째 주간으로 넘어가는 것이지 실질적

으로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면은 첫째 주간의 기도가 앞으로 적어도 한 달, 두 달 정도

더 쭉 지속이 돼야 되요.

 

# 실제 생활에서는 첫째 주간의 기도를 지속하도록

 

그래서 첫째 주간 기도를 그 정도 더 하고 나서 그 다음에 둘째 주간으로 넘어갈 문제죠. 그런

데 따로 특별히 설명을 해야 될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 강의의 편의상, 이 강의의 구조 때문에

둘째 주간으로 넘어가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 뒀으면 하는 것은

우리가 맨 처음에 원리와 기초부터 시작을 했죠. 그 전에 관점의 변화라든지 이런 것도 보긴

봤지마는 영신 수련의 그 흐름상에서는 원리와 기초, 그 다음에 첫째 주간이고 그리고 이제

둘째 주간에 들어오죠. 그리고 이제 나중에 셋째 주간 넘어가고 그럴 거예요.

 

그런데 언제 그러면은 원리와 기초를 마치고 첫째 주간으로 넘어가는가? 그저 한달 피정 같으

면은 첫째 주간까지 한 열흘을 배당을 해 놨다면은 그저 날짜가 한 열흘 지나면은 그냥 둘째

주간으로 넘어가고 그러는가? 그건 아니다 하는 거예요.

 

# 영신 수련에 정해진 날짜는 없다

 

영신 수련의 이 전체적인 흐름은 원리와 기초 이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전체적으로 대단히

역동적인 영적 흐름이 있는 거예요.  그런 굵은 흐름들이 매듭을 지으면서 아렇게 넘어가는 것

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원리와 기초에서 얻어야할 혹은 일어나야 할 역동적인 흐름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 영신 수련의 영적 흐름에 따라 진행

 

그 말은 본래의 내 모습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아, 저 모습이 정말 아름답고 좋구나

저 모습을 회복시키고 싶다. 내지는 이게 진짜 내 본래의 모습 맞나? 난 한번도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안 해 봤는데 한번 조사해 봐야되겠다라든지 그정도의 어떤 움직임이 안에서 일어나야

그 다음 첫째 주간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 [23] 원리와 기초 ㅡ> 첫째 주간

  본래의 내 모습에 대한 내적 움직임이 일어난 후 첫째 주간으로

 

 

 

첫째 주간 작업에 들어가서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이렇게 보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

로 본다고 그랬죠. 이 내 모습들. 이 내 모습을 지금까지 '나는 이런 녀석이야!' 하고 계속 생

하면서 움직여 왔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니까 다른 식으로 내가 읽혀지는 거예요.

 

나는 늘 내가 이렇다고만 생각을 했는데 '어! 아니네. 이런 모습도 있네!' 그러면서 그게 내 안

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기운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런 체험이 어느 정도는 내 안에서 형성

이 돼야 비로소 그 다음에 ?둘째 주간으로 넘어가는 거예요.

 

# 첫째  주간 ㅡ> 둘째 주간 

 그리스도의 눈으로 나를 보며 위로와 힘을 체험한 후 둘째 주간으로

 

물론 단계별로 넘어갈 때마다 그 알아 들음이 안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움직임이 강하고 크면

클수록 좋겠죠. 그러면은 더욱 더 힘있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예요. 그런 움직임, 변화

이런 것들이 안 일어나면은 그다음 단계로 못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첫째 주간

을 통해서는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나를 나라고 생각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들.

 

예수님 때문에 알아듣고 그것이 정말 마음에 들고 좋아서 더욱 더 예수님을 알고 싶고 더욱

나를 그렇게 변화시켜 내고 싶고 이런 어떤 갈망, 열정들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올라야 둘째

간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내적 동력이 형성되는 거예요.

 

# 첫째 주간 -> 둘째 주간

  예수님을 더 알고 싶고,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

 

그래서 이제 이런 것들을 만약에 정식으로 피정을 쭉 해 나간가면은 면담을 통해서 이런 것들

을 전부 체크를 하는 거예요. 이 사람 안에서 영혼의 내적 움직임이 어느 정도로 일어나고 있

는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첫째 주간에 좀 더 머물러라든지 아니면은 이제 둘째 주간으로 들어

가도 되겟다라든지 그런 것들을 분별하죠. 그래서 둘째 주가에 들어가면은 우리는 맨 먼저 보

는 것이 영신 수련 책으로 치면은 [91ㅡ98]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이라고 되어 있

는 거예요.

 

# 영신 수련 둘째 주간

  [91-98] 그리스도 나라에 대한 관상

 

이 예수님 나라에 대한 관상인데 좀 전에 이야기했다시피 첫째 주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나를 봤더니 내 자신에 대해서 좀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는 나 ㅡ>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

 

이게 너무나 마음에 들고 좋은 거예요. 그러다보니가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겠느냐? 도대체 이분이 어떤 분이신가? 이분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고,

어떻게 사람들을 바라보시길래 이분 눈으로 봤더니 내가 딴 사람이 돼 버리는 걸까? 그러면

서 이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좀 더 깊게 관계를 맺으면서 이분과 하나가 되고 싶은 이

런 열망들이 내 안에서 많이 올라와야 되요.

 

그러면서 동시에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좀 보다 보니까 이런 식으로 바뀌어 나가는

그게 너무 마음에 들고 좋은 거예요. 그런데 그렇다 해 가지고 첫째 주간을 마쳤다 해서 내

모습을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다 바꿔낸 것 아니죠. 아직도 건드려야 될 부분이 큰

스케치로만 대충 만들어 냈지 좀 더 세밀하게 음양을 넣으면서 뚜렷하게 부각시켜 내기에는

건드려야 할 부분이 더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좀 더 해 나가고 싶은 나 자신을

더욱 더 다듬고 나가고 싶은 이런 열망들이 내 안에서 또 올라와야 되요.

 

#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는 나 ㅡ> 나를 더 다듬어내려는 열망

 

그런가 하면은 내가 막상 이 작업을 해 보니까 너무 좋고 그래서 남편도 불러다가 당신도 이

거 좀 해 보라고 혹은 성당 친구들 찾아가서 자매님, 자매님도 이거 한번 해 보라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막 전하고 싶은 이런 내적 움직임들이 첫째 주간 작업을 쭉 하는 가운데 어

느 정도는 형성돼야, 그 맛을 봐야 그 다음에 둘째 주간으로 넘어가야 되는 거예요.

 

이것하고 관련지어 가지고 이 방송이 이렇게 나가다 보니까 저한테 전화도 많이 오고 메일도

많이 보내시고 그러고 있거든요. 그런데 일일이 전화에 제가 응답도 못해 드리고 메일도 답을

잘 못해 드려요.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서 진짜 이 자리를 빌려 가지고 저한테 전화주시고 메일

을 보내 주시고 하시는 분들 제대로 응답 못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떤 분이 저한테 메일을 보냈는데 이거는 여러분들한테 좀 나누어 주면 좋겠

다 싶어 가지고 첫째 주간 작업에 지금까지 영신 수련 저희들이 이제 12강이죠. 12주째 쭉 흘

러오고 있는데 그동안의 이 흐름을 얼마나 이렇게 잘 이해하고 소화시켜내고 있는가? 이 점에

있어서 조금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가지고 그래서 좀 나눴으면 좋겠거든요.

 

# 시청자 편지

저는 개신교인으로 우연히 체널을 돌리다가 평화방송을 보게 되어 신부님의 강의를 듣게 되

었습니다. 1강부터 7강까지 서너 번씩 들으면서 나이 50이 넘은 저는 이제야 '본래적인 나'

가 나인 것을 알았고 불완전한 나는 현실적인 나로 배역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진정한 나를 찾은 것 같아 감격이 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상처로 인해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이분대립론적인 사고로 똑바로 살려고 신

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지난해 위암 진단을 받고 내가 살아온 삶이 존재 안에서 ?살지 못하고

역활과 소유로 살아왔던 모습을 발견하고 역활과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 진정한 나로 살고 싶

어 내 영혼은 목이 마르고 의에 굶주린 상태였는데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는 통찰이 오고 내 존재가 완전한 존재라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선형적 사고에서

태극의 원리인 원형적 사고로 전환해야겠다는 의지적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묻고 다시 질문하고 찾아 헤매왔는데 이제야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자연과의 관계 안에서 진정한 나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답을 얻은 것 같아 지금

까지 뭔가 막혀 답답했던 것들이 환하게 뚫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저에게는 영신수련이라는

단어가 생소했고 쉽게 알아들을 수도 없어 서너 번 들었지만 ...(중략)... 개신교인으로서  영

신수련이 가능한 건지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싶습니다.

 

또 메일이 하나 더 왔어요. 이분은 심리  상담가이신 모양이예요.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를 일주일에 10명 이상 만나는데 신부님의 강의를 듣고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이 관점의 변화를 전하였더니 모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자신의 존재를 새롭

게 인식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고 우주보다 더 큰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하면서 이제는 못난 것

도 나이고, 부족한 것도 나인 것을 인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완전한 나의 개념을 알고 나니 내 존재가 이렇게 우주론적인 존재인줄 몰랐다고 하면서 마음

이 넓어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내 안에 다 들어와 있다는 완전한 존재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

닌 서로 연관되어 관계되고 과정 속에서 변화를 이루는 나의 존재가 더 중요함을 인식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아가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변화들이 내가 만난 내담

자들을 통해서 경험하면서 내 안에 있는 나를 또 경험하면서 나의 존재의 완전함을 넓히게 됩

니다.

 

# 둘째 주간을 위한 내면의 변화들

 

좀 전에 이 강의의 둘째 주간 시작을 하면서 여러분들한테 말씀드렸던 내면의 변화들, 역동적

인 움직임들이 지금 이 자매님 안에 고대로 딱 드러나고 있죠.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한 다른 모습, 다른 이미지들을 읽어드렸고 다만 지금 이 자매님이 이야기한 내용

중에는 구체적인 자기의 삶, 체험, 성격 이런 것들을 다른 식으로 보게 됐다 하는 점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예는 없죠.

 

그거는 아마 면담을 하게 된다 하면은 그런 예들이 많이 나올 것 아닌가 싶은 거예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기도를 한다면은 그런 것들을 깊게 건드리면서 들어갔을 것이라고 보여지죠. 그

런데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 관점의 변화를 중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새롭게

나는 봄으로써 새로운 존재 인식,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파악이 바뀌게 되는 것. 그게 너무 좋

고 그러다 보니까 자기가 일하고 있는,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 그 내담자들한테 이거 전해주지

않고는 결딜 수가 없겠구나.

 

그래서 같이 나눠줬더니 역시 그분들도 좋아하고 이런 움직임들이 바로 둘째 주간을 들어가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내적 모습 혹은 일어났어야 할 내면적인 변화들인 거죠. 이런 역동적인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둘째 주간에 진입한다.

 

그리고 여기 이분은 개신교인들이 영신 수련 할 수 있는가? 이래 물으셨는데 예,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제 체험을 봐도. 특히 제 경우에는 전도사님들이나 목사님들이 오셔 가지고 영신 수

련 8일 피정 혹은 한달 피정, 여러분들에게 영신 수련 피정을 제가 준 적이 있죠. 그리고 이분

들은 우리 또 어떻게 보면은 천주교 신자들이 가끔 좀 기가 죽는 게 개신교 신자들은 말씀에,

성경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런 것들을 곧잘 좀 보게 되죠.

 

그래 이분들은 성경 공부를, 말씀 공부를 깊게 많이 아시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뒤 바탕이 되

어 있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마는 영신 수련 피정에 들어가면은 아주 깊게 들어가시는 거예

요. 그래서 좋은 열매들을 맺는 경우 아주 많이 봤죠. 그래서 개신교인들이라도 얼마든지 영신

수련 피정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신앙이 없는 분이라도, 아직은 신앙이 없는 분한테는 영신

수련 줘 본 적은 없는데 제 체험으로는, 얼마든지 줄 수 있겠다 싶은 거예요.

 

인간의 그 본래적인 그런 어떤 내적 태도랄까? 심성 속에서 올바르게 살기를 원하고 좀 더

인간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알고 싶어하고 이런 분이라면은 기도하는 법부터

가르치면서 한발 한발 이끌고 가면은 영신 수련에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죠.

 

#  영신 수련은 예수회 영성을 심으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없어도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영신 수련은 가능하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죠. 영신 수련이라는 것은 예수회 영성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얘기 했나요? 예, 그런 게 아니고 각자 자기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 고유한 생명 그것

을 꽃피워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니까 신앙이 있든, 없든, 개신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

작업이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거죠.

 

영신 수련 [91ㅡ98]

 

그래서 이런 맥락 속에서 우리가 [91ㅡ98]을 좀 보는데 여기에 아까 시작기도에서도 이야기

를 했지마는 [91ㅡ98]하는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꿈이요, 비전인 거예요.

 

# 영신 수련 [91ㅡ98] : 예수 그리스도의 꿈과 비전(vision)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이 세상에 대한 어떤 비전, 꿈, 희망 이것이 [91ㅡ98]이죠. 이것은

보면은 이 영신 수련 첫째 주간이 있고, 둘째 주간이 있고, 이것 다음에 천주 강생을 또 기도

하고, 그 다음에 예수님 탄생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전개되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좀 더 본격

적인 둘째 주간에 들어가기 전의 어떤 가교 역활을 하는, 이음 역활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 [91ㅡ98]이 아닌가 하는 거예요.

 

# 영신 수련 [91ㅡ98] : 첫째 주간과 둘째 주간의 이음매

                              첫째 주간의 정리와 둘째 주간으로의 투신

 

그래서 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에서는 첫째 주간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둘째 주간에

온전히 투신하는 그런 내적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이

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관상인 거예요.

 

그런데 아까 시작기도에서도 말했지마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부터 시작해 가지고 

영신 수련 이 둘째 주간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목적이라고 할까 우리가 끊임없이 기

를 통해서 청해야 할 은총은 딱 한가지인 거예요.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따르는 것.

 

# 청할 은총: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따르는 것

 

이것이 끊임없이 청해야 할 은총인 거예요. 그런데 이때 우리가 예수님 하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님 즉 어떤 예수님은 우리 그렇다고 그러죠. 신성과 인성을 온전히 통합하신

겸비하신 분이다 이러는데 신성에다가 촛점을 두는 게 아니고 인성에다가 촛점을 둔 예수님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하느님으로서의 예수님 보다는 우리랑 똑같이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그렇게 생활하시는

인간 예수님의 모습을 깊게 알아듣는 것.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된다.

 

# 예수님에 대해 깊이 알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안 되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사랑이 안 되는 것이지 알게 되면은 반드시 사랑하게 된

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어떤 사람이 도대체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요. 어떻게 명색이 신

자라는 저럴 수가 있을까? 신부라는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저럴

수가 있을까?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면은 만약에 그 사람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 가지고 그 사람

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일생의 이야기를 쭉 듣게 되면은 그 사람의 하는 행동을 잘한다

고는 칭찬을 못할망정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는 반드시 생겨요. 거의 99%는 생길 거

라고 보는 거예요.

 

그런 그 사람의 삶의 괴적(怪寂)을, 전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저 단편적으로 드러나

는 이 모습만 보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가고 화만 나는데 일생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전모를 알게 되면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럴리는 없겠지마는 만에 하나 그

게 다 듣고 났는데도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이기 힘들면은 한 대만 올라가서 그 사람의 부모

님의 일생까지 들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은 할말이 없어질거다 싶은 거예요.

 

내가 저런 상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은, 내가 저런 사람을 만나 가지고 쭉 한평생을 걸

어왔다면은 어쩌면 나는 더했을지도 모른다. 더 험한 꼴을 봤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이 되는

것 아닌가? 즉 어쨌거나 모르기 때문에 사랑이 안 되는 거예요. 예수님에 대해서 깊게 알면

알게 될수록 훨씬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사랑하면은 당연히 같이 있고 싶어지죠. 떨어지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더 잘 따르게 되는 것. 함께 하게 되는 거예요.

 

# 예수님을 사랑할수록 더 잘 따르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묵상부터 시작해 가지고 끊임없이 우리는 기도하면서 청하는

것이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잘 따르도록 .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어떤

꿈, 어떤 생각을 가지셨는가? 이거 보는 거예요. 그랬을 때 이 [91ㅡ98] 기도를 보면은 1부,

2부 이렇게 나뉘어져 있어요. 기도의 형태가.

 

기도 2부가 이게 기도 핵심인 거예요. 이게 핵심인데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1부에서 좀 심리적

인 준비,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초대를 하시죠. 그리고 가상적인 면이라고 그럴까? 시험 삼아

서 한번 그려보고 그 다음에 본 게임에 바로 들어가죠. 그러는데 이 1부에서는 뭐라고 그러시

느냐 하면은 현세의 왕이 있는 거예요. 왕이 있으면서, 그런데 이 현세의 왕은 하느님께서 뽑

으신 왕인 거예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그런 왕인 거예요. 그런 왕이

신하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영신 수련[93] 이 왕이 자기 모든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본다

"나는 불신자들의 땅을 모두 정복하고자 한다.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나와 의식주를

똑같이 할 것이다. 또 낮에 일하고 밤에 파수를 서는 것도 나와 똑같이 해야 한다. 나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승리했을 때 나와 함께 한몫을 차지하게 하겠다."

 

# 영신 수련[93]: '세상 왕의 부르심' :

              "나는 불신자들의 땅을 모두 정복하고자 한다."

 

이거는 이냐시오 성인 당시의 시대적 배경, 가톨릭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있는 그런 사회

적인, 문화적인 배경이죠. 그 속에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모두 그리스도화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보니까 불신자들을 막 다 정복한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신하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건강한 정신을 가진 신하들이라면은 그 왕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지 않겠느냐? 이러는 거예요. 그것은 이렇게 마음으로 한번 그려봐라. 그려보고

나서 그 다음에 세상의 왕도 그렇다면은 일개 인간 왕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일개 인

인데 일개 인간이 그렇게 초대하는 것에도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은 응당 그런

식의 응답을 취한다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초대를 한다면은, 이 처

음에 왕이 할 때는 그 불신자들을 정복한다 이랬죠. 예수님께서 하실 때는 이러는 거예요.

 

# 영신 수련 [95] '그리스도의 부르심': 

   "나는 온 세상과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여 내 아버지의 영광 안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가는 거죠. 그랬을 때 그런 초대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응답하겠느냐 하는 거예요. 이것을 묻는 거예요.

 

■ 그리스도의 초대와 응답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념했으면 하는 거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 여기까지

표현되는 부분들, 뭐 왕이라든지, 신하라든지, 원수들을 정복한다든지 막 이런 단어들이 나오

죠.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좀 골동품 내가 나는, 좀 이렇게 요즘 감각으로 치면은 잘

와 닿디 않는 생경스런 단어들이 막 나타나고 뭐 전쟁이라든지, 정복이라든지 막 이런 이미지

들이 등장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보면서 사람들이 마음에 잘 안 와 닿으니까 "에이, 뭐 이런 것들이 있냐?" 이러면

서 밀쳐 버릴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는데 그건 아니죠. 이냐시오 성인은 16세기 초엽 때 활동한

분이니까 지금부터 거의 400년 전, 500년 전의 이야기죠.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알아들어야 되지 그저 현대 감각에 맞추어 가지고 표현에만 사로잡혀서 전체를

버릴려고 할 것은 아니죠.

 

쉽게 하는 말로 애를 목욕시키고 나면은 구정물만 버릴 일이지 애까지 같이 버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여러 가지 표현상에 있어서 좀 쾌쾌 묵은 냄새가 나는 이런 것들은 전부

들어내고 이 기도에 담겨 있는 핵심 원리, 그 내용을 깊게 알아들을 필요가 있죠.

 

그래서 여기 보면은 이냐시오 성인은 이 세상을 정복하고, 원수들을 정복하고, 이 세상과 원

수들을 정복한 가운데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간다.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가는

것이 내 꿈이다. 이래 이야기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런 말들을 이 뭐 세상이니, 원수니 이런 다 해 가지고 막 극단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막 이야기 하는 이런 식으로 윽박지르면서 신자로 만드는 거, 제도권

의 교회에 전부 포섭해 가지고 신자로 만들려고 하는 그것을 염두에 두어 가지고는 곤란한 거

예요.

 

단어들은 이렇게 험상굿게 쓰여졌을지 모르지마는 여기에 담겨 있는 뜻은 그런 내용이 아니고

우리가 아까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첫째 주간에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봤을 때 내가

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던 것. 이런 이야기였죠.

 

즉 그전에는 단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은 이원대립론적인 관점에서 우열을 나누고 늘 너랑 나랑

은 다르다 하는 관점에서만 보고 차별을 짓고 이런 식으로만 보고 다른 사람과 나를 그렇게 구

별할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을 보면서도 이런 거는 잘하고, 저런 거는 잘못하고, 이런 거는 옳고

이런 거는 그르고, 어제는 잘했고 오늘은 잘못했고, 이런 식으로 차별을 지으면서 비판도 하고

단죄도 하고, 반성도 하고, 결심하고 이런 어떤 움직임 그런 개념이 아니고,

 

좀 더 통합적이고 전체적이고 완전한 모습이고 아름답고 좋은 모습으로 무엇보다도 귀한 존재

다 이런 관점을 좀 보게 됐던 것, 좀 보게 됐던 것. 전부 다 봐 버렸던 것은 아니고 좀 보게 된

것.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봤던 것이고 이것을 우리는 복음화를 이루어냈다 이렇게 이

야기 해도 되는 거예요.

 

# '세상과 원수들의 정복':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보는 것(복음화)

 

복음화를 이루어냈다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보는 눈으로 내 자신과 인간들 세상들

을 보게 됐다하는 그 말하고 같은 거예요. 그 전에 갈등과 대립 구조 속에서 바라봤던 것을 조화

와 통합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

 

# 갈등과 대립 위주의 세상적 관점에서 조화와 통합인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이전의 그 관점,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 혹은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것. 이 관점을 가리켜서

이냐시오 성인은 세상을 정복하고 원수를 정복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원수를

해 가지고 ?무슨 악마를 쳐부수자 이런 개념 마치 무슨 구체적인 어떤 대상이 있어서 완전히

죽여 없애야 되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인 관점, 세상적인 관점 오직 차별화만 ?시키는 관점 그런 관점이

세상이 바라보는 관점이고 원수가 바라보는 관점이라면은 이런 관점들을 없애버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복음화를 시켜내고, 복음화를 시켜내는 가운데 우리

모두를 종의 모습에서 주인의 모습으로 바꿔내는 것, 노예의 모습에서 자유인의 모습으로

바꿔내는 것.

 

그러면서 우리 안에 있는 각자가 지니고 있는 그 생명력을 하느님의 생명력처럼  그렇게 크고

아름답게, 깊게 일궈내는 것. 이것을 두고 이냐시오 성인은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거예요. 그것을 우리는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은 복음화를 이뤄

내는 것이다.

 

# 아버지의 영광 안에 들어감 : 복음화를 통해 고유한 아름다움과 생명을 키워내는 것

 

예수님께서 어린애들을 바라보시고, 죄인들을 바라보시고, 죄많은 여인을 바라보시고, 중풍

병자를 바라보시는 그런 눈길로 바라보시면서 전부 치유해내시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전부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시고, 분리와 갈등 속에서 허덕이던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고, 자유

를 주시고, 생명에로 이끌어 내시는 그게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듣는 모습이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게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듣는 모습이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됐을 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이야기하셨던 그 의미의 원수들의 정복이

있고, 세상에 대한 정복들이 있는 것 아닌가? 이게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각자 안에서 이런 복음화가 다 이루어진 게 아니고 좀 이루어졌다. 시작되어 가고 있는

과정 속에 있는 거예요.

 

또 내가 좀 일어났다 하더라도 아직 남편이 복음화하고 거리가 멀 수도 있고, 내 자녀들이 복

음화에서 멀 수가 있고, 이웃이 멀 수가 있고, 그런 가족이라든지, 이웃에까지, 이 사횡까지

그런 참된 자유, 참된 생명, 참된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점점점 확장되어 가도록 그렇게 계속

애쓸 필요가 있는 것. 그것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세상과 원수를 정복

해 버리고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가는 것. 내 자신과 이웃, 이 세상 전부를 복음화 시키는

것. 이것이 예수님 자신의 꿈이고, 당신이 품고 있는 비전인 거예요. 원대한 비전인 거예요.

 

# 그리스도의 꿈과 비전:

               각자 자신과 세상 안에 참된 생명과 아름다움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

 

여러분한테 "이것을 원하느냐?", "하고 싶으냐?", "너희들 내 일에 동참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여러분들한테 예수님으로부터 초대장이 한 장씩 전부 발송되었는 거예요.

그래,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어내고 싶다. 세상과 원수들을 정복하고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가고 싶다. 여러분들 이 일에 함께 해 주고 싶은 의향이 없으십니까? 하고 물으시

니까 그런 초대장을 받고는 여러분들 선택하셔야죠.

 

청첩장이 날라와도, 누가 돌아가셨다고 장례에 대한 통보가 와도 그런 거 초대 받으면 그

다음에 여러분들 선택해야 되죠. 갈 건가? 말 건가? 그런데 이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꿈을 알아듣더라도 어떤 면에서는 다소 추상적이고 개념적이고 막연한 것으로 떨어져버릴

위험성이 있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나라, ?맨날 우리 그리스도의 나라, 하늘 나라, 아버지 나라, 이런 이야기 해도 다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거는. 하늘 나라, 뭐 입버릇처럼 아버지의 나라, 하늘 나라, 하느님 나라

뭐 이런 얘기 하지마는 그러면서 뭐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그래 이야기를 하지마는 여러분들

각자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하느님 나라가 어떤 모습인가 한번 그려봐라. 한번 니 말로 표

현해 봐라.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그냥 말로 떡 하면은 뭐 아주 쉽고 거부 반응도 안 일어날 것처럼 보이지마는

음화를 이뤄낸다. 내가 변화된다.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간다. 자칫 잘못하면은 이 아야기

이 뜬구름 잡는 식으로 허공에 떠버릴 위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나라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하면서 여러분들 나름대로 그리스도

의 나라 하면은 탁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는 그런 어떤 이미지, 그런 표현, 단어들을 생각하고

가슴에 그려 놓을 필요가 있죠.

 

#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 정립

 

어떤 분은 그랬어요. 자기가 어떤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그냥 가기 그러니까 식사 때

가 돼 가지고 밥 먹고 가라는 바람에 같이 밥을 먹었다고 그러죠. 그래서 그냥 아버지, 어머니,

친구, 초대 받아 간 자기 이렇게 네 명이 둘러 앉아서 밥을 먹는데 그 밥상 머리에 둘러 앉은

분위기가 너무나 밝고, 따뜻하고, 단란하고, 화기애애했다는 거예요. ?

 

그런데 유감스럽게 그 친구는 자기는 한번도 집에서 그런 어떤 단란한 밥상 속에서 가족다운

그런 분위기에서 식사를 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얘는 하늘 나라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나

라를 생각할 때 그 이미지가 강력하게 들어온다는 거예요. 모두 함께 둘러 앉아서 서로 기쁘고

편안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자리. 거기에 모두 초대하고

함께 밥을 나누면서 생명을, 힘을 길어올리는 그런 자리.

 

예, 그 이미지는 가꾸어 나가면은 나는 어제는 힘이 있었는데 오늘을 힘이 없고, 이런 부분에

서는 힘이 있고 편안한데 저런 부분은 한 되고, 그래서 들쭉 날쭉인데 그런 모습을 다 모아 가

지고 함께 편안할 수 있는 힘을 길어낼 수 있는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죠. ?즉 내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도 그런 이미지를 적용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은 당연히 가족 관계 혹은 이웃 교우들과의 관계 이런 데서도 얼마든지 확대 적용

할 수 있죠. 이런 식으로 나한테 와 닿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 이어서는 예수님께서

도 꿈이라든지 비전만 딱 주시면서 "자, 이래 좋은 일 하고 싶은데 어떠냐? 와라!" 그러면은

전부 다 "아, 좋아요. 좋아요!" 막 갈지 모르죠.

 

그런데 예수님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저 여

고생처럼 아주 낭만에 젖은 여고생처럼 "아, 좋아요!" 이래 가지고 막 뛰어들려고 하지 말고

이 꿈이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거기에 따르는 댓가를 치뤄야 한다. 희생이 따른다.

 

# 그리스도의 꿈에 따르는 대가와 희생

 

의식주를 나랑 같이 해야 되고, 밤 늦도록 일해야 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멸과

조롱을 받아야 되고, 고통 속에서 허덕여야 될지 모른다. 그런 어떤 어려움, 대가가 따른다.

이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이것이 좋은가? 나랑 함께 하고 싶은가?

하고 묻는 거예요.

 

마냥 이런 거 하나도 안 치루는 거 하나도 없이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자고 싶은 거 다 자고,

누리고 싶은 거 다 누리면서 원수들을 정복하고, 세상도 정복하고, 복음화를 이뤄내고, 내

아름다움?을 펼치고 그러면서 아버지의 영광 속에 들어간다. 그러면 야 그럼 누가 마다하겠

어요. 다 좋다 그러지. 그런데 그게 아닌 거예요. 희생이 따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성을 쌓으려면은 앉아서 비용이 얼마나 들겠는지 셈해 보지

않겠느냐? 예수님 이런 거 원하시죠. 그저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깨달음을 얻고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이 현실 감각 없이 허공에 발을 떡 놓고서는 둥둥 떠다니는 것. 이런 이야기

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거예요. 무지개 빛 같은 하느님 이야기 하고, 그저 휘황찬란한

예수님 이야기 하고 이러는 게 아닌 거예요.

 

# 그리스도의 나라는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어렵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온갖 명암이 뒤엉켜 있는 가운데에

서 예수님 읽어드리고, 하늘 나라 만들어 내고 그러는 것이지. 구체적인 내 모습, 구체적인

내 남편, 구체적인 내 이웃 이것 떠나서 하느님 나라 이야기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 하고

신앙 이야기 하는 것은 전부 가짜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이 초대를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된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초대를 받아들이면은 그 다음에는 거기에 따른 보답도 응당 있을 것이

다. 그 보답 하는 것이 없던 쌍커플이 생기고, 단칸 방에 세 들어 살다가 몇십 평 되는 아파트

로 옮겨갈 수 있도록 돈이 생기고 이러는 거 전혀 아닌 거예요. 그런 거 하나도 안 변하는데

세상 보는 눈이 바뀌어버려 가지고, 예수님 닮아 가지고, 마음이 바뀌어버려 가지고 내 안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

 

# 초대에 대한 응답의 열매

        주위 상황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의 관점이 변화되는 것

 

주위의 조건이 좋아서 내가 바뀐다면은 이거는 결국은 종이고 노예죠. 주변의 조건, 상황하고

상관 없이 내가 사람을 대하고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관점이 바뀌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

우리 그러잖아요. 마음 하나 이거 바꾸는 게 얼마나 힘이들어요. 그래서 늘 의지력을 탓하기

쉽고, 어금니 좀 깨물면은 바뀔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천만에요.

 

우리 사람은 그렇게 단순히 결심 좀 한다 해 가지고, 의지의 칼날을 좀 더 간다 해 가지고

그렇게 쉽게 바뀌는 존재 절대 아니예요. 아주 깊고 큰 존재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힘이 건드리지 않으시면은 내 존재의 근본 바탕은 안 바뀐다는 거예요.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훨씬 더 겸손되이 알아듣고 한 발 물러날 필요가 있죠. 그래서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꿈, 비

전을 깊에 알아듣는 것. 우리가 영신 수련을 왜 하느냐?

 

■ 영신 수련의 목적

 

영신 수련에는 큰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는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

두 번째로는 하느님의 뜻이 뭔지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선택하는 그 길을 찾기 위해서

영신 수련을 한다. 이러거든요. 특히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선택한다는 이것하고 관련

지어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 이거는 늘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제일 첫 번째

바로 밑의 기준 잣대가 되는 거예요.

 

삶에 있어서 구체적인 문제로 이사를 갈 건가, 말 건가? 새로 무슨 사업을 해 볼 건가, 말 건

가? 자녀를 어느 학교에 보낼 건가? 교육을 어떻게 시킬 건가? 이런 모든 문제에 있어서 딱

결정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꿈하고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

 

■ 선택의 기준 - 그리스도의 꿈과 일치하는가

 

이것을 정말 원하고 여기에 쫓아서 내가 살아가려고 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여기에 따라서

벌써 선택지가 딱 달라지는 거예요. 이것(예수 그리스도의 꿈)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야

그 다음에 또 다른 길의 식별로 나아가고, 나아가고 이러는 거죠. 안 그러고 이거? 아니, 난

좋기는 좋은데 나는 이런 희생 감당할 자신이 없다. 혹은 관심이 없다. 이러면은 예, 세상이

추구하는 그 방식대로 다른 논리 쪽으로 떠나야 되요.

 

이런 점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늘 머리 속에, 가슴 속에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된다. 그렇게 될 때 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관상 하는 것이 제대로

자리매김 되고, 이 비전이 내 안에 살아있을 때 좀 더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된 신앙인 혹은 참된 영적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길 이런 것들을

짚으려고 할 때 제일 먼저 갈림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꿈 여기에서부터 갈라지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기도를 통해서 이것을 알아듣고 과연 내 것으로, 내 표현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늘 내 가슴에 품고 있는 것.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죠.

예,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영광송으로 마치겠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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