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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은 무엇인가?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29 조회수1,128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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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29. 주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사도12,1-11 2티모4,6-8.17-18 마태16,13-19


 

삶은 무엇인가?


오늘은 초록빛 하느님 사랑 날로 짙어져 가는 6월

예수성심성월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날로 잉여의 사람들 곳곳에서 넘쳐나는 잉여의 시대, 잉여의 사회요 품위있게 살기 참 힘든 세상입니다.

 

어제 끝기도 저녁성무일도 시,

성모찬송가를 바치는 중 난데 없이 떠오른 미켈란제로가 29세에 완성했다는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피에타 상'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 아드님을 품에 안으신 슬픔 가득한 성모님의 피에타상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어이 없이 목숨을 잃은 300명 이상의 꽃다운 아이들,

얼마 전 지오피 총기 참극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5명의 젊은 이들이 오버랩 되면서,

아, 오늘도 여전히 불쌍하게 죽은 당신 아들들을 품에 안고 슬픔에 잠기신 성모님이,

이 땅의 어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하여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성모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찬란한 역사가 아니라 살육의 잔인한 한반도 역사입니다.

조선 500년의 역사가 그랬고, 특히 천주교 박해가 전성기를 이뤘던 19세기 한반도가 그랬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이은 6,25사변 등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야만의 살육의 역사입니다.

또 여기에다 날로 존엄한 품위를 잃어가게 만드는 신자본주의,

잉여의 세상에 날로 늘어나는 잉여의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의 화급한 시대의 화두가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 '삶은 무엇인가'가 되겠습니다.


 

첫째, 삶은 은총입니다.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은총입니다.

이렇게 살아있음이 하느님의 기적이자 은총입니다.

 

공동체의 역사든 개인 삶의 역사든 잘 들여다보면

굽이굽이 하느님 은총으로 점철된 역사임을 깨닫습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바오로처럼 우리도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기도하게 됩니다.

 

보십시오.

오늘 말씀 곳곳에서 감지되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철통같은 감시하의 감옥에서 탈출한 베드로의 사건이 그대로 생생한 은총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빨리 일어나라." "허리띠를 메고 신을 신어라"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베드로를 감옥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주님 천사의 모습이

흡사 절망의 자기 감옥에 갇힌 우리들을 구출해 내는 모습 같습니다.

 

끊임없이 '자기의 어둠'으로부터 '주님의 빛'에로의 엑스도스, 탈출을 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바오로의 우레와 같은 고백 역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비단 바오로의 고백일뿐 아니라 주님을 철석같이 믿는 우리 모두의 복된 고백입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의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 역시

순전히 은총의 산물임은 주님의 다음 말씀으로 분명해졌습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시몬 바르요나뿐 아니라

이 거룩한 미사시간 은총에 힘입어

주님께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고백하는 우리 역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새삼 삶은 은총임을 깨닫게 해주는 미사의 은혜입니다.


 

둘째, 삶은 전쟁입니다.

 

영적전쟁입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요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전사'에 전우들입니다.

'누구'와 '무엇'과의 싸움입니까?

 

언젠가 어느 지인에 대한 저의 통쾌한 답변을 잊지 못합니다.

"여기 수도자들은 싸우지 않습니까?"

"싸우지 않긴요. 매일 싸웁니다."

지인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 봤고, 저는 "매일 나와 싸웁니다." 대답했습니다.

 

대부분 문제는 나에게 있고 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으로 우리는 나와의 싸움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디 따로 있는게 아니라 내 자신이 세상의 축소판이요

싸워야 할 대상은 바로 이기적 소아(小我)의 나입니다.

 

바오로의 장엄한 고백이 자기와의 영적전쟁에 항구했음을 보여줍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영적전투에 최선을 다함으로 무너지지 않고

존엄한 인간 품위를 유지한 바오로요 순교성인들입니다.

매일 하루의 끝날, 또 인생 마지막 날,

이런 고백으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삶이겠는지요.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승리의 비법이나 요령은, 첩경의 지름길은 없습니다.

 

'넘어지면 곧장 다시 일어나' 시작하는 길 하나뿐입니다.

이래야 영적감각도 영적탄력도 손상되지 않습니다.

삶은 영적전쟁이요 우리는 모두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적전투에 항구할 수 있는 힘과 은총을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ㄴ).


 

셋째, 삶은 일입니다.

 

세상에 일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수도자는 물론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업의 일은 하느님을 찾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 일 아닌 다른 일들은 모두 부업일 뿐입니다.

 

요즘 절실히 깨닫는 진리입니다.

이래야 삶의 중심과 질서가 잡힙니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읽으며 처절한 박해 속에 살아간 순교성인들을 보면서 깨달은 진리입니다.

이분들에게서 주님을 믿는 일을 빼면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일하지 않고는 먹지도 말라는 말도 있듯이 저는 먹기 위해서라도 꼭 일을 합니다.

하느님의 일인 기도입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베드로와 바오로에게서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일을 빼놓으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평생 좌우명은 다음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시몬아, 네가 나를 참으로 사랑하느냐?“(공동번역:요한21,16).

 

아마 베드로는 이 말씀을 평생 좌우명 삼아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전념했을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것도 교회의 끊임없는 기도 덕분이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참 소중한 대목입니다.

새삼 신자는 물론 수도자에게 끊임없는 기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삶은 무엇입니까?

삶은 은총입니다. 삶은 전쟁입니다. 삶은 일입니다.

 

이런 철저한 자각에 따른 실천이 존엄한 인간 품위를 지켜줍니다.

이번 서울 주보에 나온 저의 글을 인용함으로 저의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저는 어느 묘지를 방문하든 먼저 살펴보는 게 묘비명입니다.

피정 지도를 할 때에도 묘비명을 써보도록 권고합니다.

좌우명과 직결되는 묘비명이요, 이를 통해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주님과 함께 충실히 살기 위함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참으로 사랑하느냐?“(공동번역:요한21,16)

아마 베드로의 평생 좌우명이자 묘비명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4,7).

아마 바오로의 평생 좌우명이자 묘비명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제 좌우명이자 묘비명을 소개합니다.

올해 '사제 서품 25주년 은경축'을 맞이하여 확정한 자작 고백시 중 일부입니다.

좀 길다 싶지만, 제 묘비명에는 다음 고백을 써 달라 부탁할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永遠)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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