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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30 조회수1,291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Mt.8,22)
 
 
제1독서 아모 2,6-10.13-16
복음 마태 8,18-22
 

언젠가 어느 성당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아 성체조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시장바구니를 든 어떤 자매님께서 들어오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십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이 자매님은 자신이 가지고 온 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가시더군요.

시장을 보고 온 상태에서도 주님을 만나기 위해 성당을 들리시는 자매님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살면서 그리고 교회의 일을 하면서도 때로는 바쁘다는 이유로 또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주님과의 대화를 소홀히 했던 적이 꽤 많았거든요. 그러나 이 자매님은 다른 일(시장을 보는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믿음의 방향을 보여주신 자매님께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즉, 어떠한 순간에서도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기에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주님께서는 부족한 저의 깨달음을 위해 시장바구니 자매님을 이용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정작 시장바구니 자매님은 알고 계실까요? 자신이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어 한 사제에게 깨달음을 주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부르심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라는 부르심은 이미 우리 각자에게 이미 다 주어졌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내 자신이 올바른 주님의 도구로 잘 쓰일 수 있도록 제대로 응답하고, 매 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제자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시지요.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인간 삶 안에서 죽음이란 커다란 의미를 갖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님의 죽음을 외면한다면 불효자로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 스스로도 심한 죄책감을 간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조건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효도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시지 않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 당시의 장례문화 때문이기도 했지만,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을 뜻에 맞게 따르는 것, 이것보다 더 큰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지요.

계속되는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요? 혹시 세상의 것을 모두 다 한 뒤에야 주님을 한 번쯤 쳐다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요?

하느님은 잘 들으시지만 빨리 대답하지 않으신다(러시아 격언).


 

끊어버립니까?

해롭고 상한 음식을 굳이 찾아서 드시겠습니까? 만약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나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곧바로 출연 요청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배탈이나 식중독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 당연하니까요.

아무리 겉을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꾸몄다고 해도 상했다면 먹지 않고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혹시 먹고 탈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내 영혼에게는 왜 해롭고 상한 양식을 주려고 하십니까? 겉이 예쁘고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내 영혼에 해로움을 줄 수 있다면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이 해로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종 ‘경험삼아’라는 말을 합니다. 작은 경험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상한 음식을 경험 삼아 드십니까? 상해서 내게 해로움을 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험삼아 먹어보지.’라며 먹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 영혼에 해로움을 주는 그 모든 것을 무조건 끊어버리고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그 유혹을 알면서도 넘어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힘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내 영혼에 해로움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취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내 몸을 살찌우듯이, 내 영혼도 살찌워야 하지 않겠습니까?(혹시 영혼의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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