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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과 함께 하는 삶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06 조회수1,007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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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6. 연중 제14주일 즈카9,9-10 로마8,9.11-13 마태11,25-30


주님과 함께 하는 삶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지당한 말입니다.

 

하느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의 말씀 뒤에는 늘 '내가 너와 함께 있다'라는 말이 어김없이 뒤따릅니다.

 

며칠 전의 깨달음도 새롭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앞에서 수도자답게 살면 바로 거기가 수도원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성지가 있어 성인이 아니고 성인이 있어 성지이듯,

수도원 있어 수도자가 아니라 수도자가 있는 바로 거기가 수도원입니다.

 

 

 

오늘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묵상입니다.


 

첫째, 내적공간을 마련하십시오.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 영적과제입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넉넉하고 큰 내적공간입니다.

 

삶은 공간입니다.

공간은 생명입니다.

공간은 자유입니다.

 

싸움의 궁극 원인도 결국은 공간 확보에 있습니다.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이 구체적 사랑 실천입니다.

 

여기 왜관수도원에 머물며 우선적 깨달음이 '참 넉넉하고 커서 좋다.'는 것입니다.

방도 정원도 넓고 크니 마음도 넉넉하고 커지는 느낌입니다.

 

이런 외적공간이 상징하는바 내적공간입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마련되고 확장되는 내적공간입니다.

 

수도원 안뜰의 넉넉한 푸른잔디의 봉쇄지역이 상징하는바 역시 우리 내적공간의 마음입니다.

주님이 계신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 역시 우리 마음의 내적공간을 상징합니다.

 

이런 내적공간을 지닌 이들이 진정 영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을 모실 때,

성령 안에 있게 되어 저절로 내적공간의 마련이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어 주님과 함께의 삶이 전개됩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육에 따라 살 때 내적공간은 사라져 영혼의 죽음이지만,

영에 따라 살 때 내적공간의 확장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삶임을 깨닫습니다.

 

넓힐 것은 외적공간이 아니라 내적공간의 마음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로 주님과 함께 자신을 비우고 버려 가난과 겸손에 이를 때 확보되는

넉넉하고 큰 마음의 내적공간입니다.

 

침묵과 고독을 강조하는 궁극 목적도 바로 내적공간의 확보에 있습니다.

 

아무리 소유로 외적공간 가득해도 이런 내적공간을 지니지 못한 이들은 가난뱅이입니다.

내적공허는 외적공간을 넓히고 채우는 것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주님과 함께 함으로 넉넉하고 큰 내적공간을 지닌 이들이

진정 영적인 사람들이며 부자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둘째, 주님께 가십시오.

 

주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늘보면/마음은/훨훨날아/흰구름 되네'라는 저의 예전 자작시 또한 주님을 찾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늘 가슴 활짝 열고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갈곳은 많은데 갈곳은 없는 오늘의 역설적 현실입니다.

 

하여 외롭고 고독한 잉여의 사람들 넘치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갈 유일한 '분'이자 '곳'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하고도 영원한 영육의 쉼터입니다.

하여 그리도 많은 이들이 성지를 찾고 성전을 찾습니다.

 

아버지 안에서 영원한 쉼터를 찾은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 안에 머물 때

예수님처럼 마음의 눈이 열려 삶의 신비와 은총을 깨달아

저절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주님께 나아가 주님의 학원에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온유와 겸손의 예수성심을 배울 때

비로소 우리는 안식을 얻습니다.

 

정녕 주님의 멍에는 편하고 주님의 짐은 가볍습니다.

주님께 나아가 부단히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울 때 비로소 삶은 짐이 아니라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삶의 불편한 멍에와 무거운 짐을 당신의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으로 바꿔주시는

고마우신 주님이십니다.


 

셋째, 주님을 맞이하십시오.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자 사람을 찾는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영적 삶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를 환대하시는 하느님이요, 하느님을 환대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쌍방향의 만남이 하나로 이루어지는 장이 이 거룩한 미사전입니다.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이요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들입니다.

초월자 하느님이자 동시에 우리와 함께 계신 내재자 하느님이십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

 

바로 주님과 우리의 쌍방향의 만남을 표현한 저의 예전 자작시입니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바로 이런 주님을 환대할 것을 우리 모두에게 명하십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리라.

그분은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딸 시온이, 딸 예루살렘이 가리키는바 우리들이요, 임금이, 그분이 가리키는바 예수님이십니다.

즈카르야의 예언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서 그대로 실현됩니다.

 

당신을 마음 활짝 열어 환대하시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평화를 선사하시어

우리 또한 당신을 닮아 의롭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그대로 주님의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연중 제14주일에 주님은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하는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1.내적공간을 마련하십시오. 내적공간과 함께 가는 풍요한 생명과 자유입니다.

2.주님을 찾아 가십시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울 때 비로소 안식입니다.

3.주님을 맞이하십시오. 주님은 기쁨과 평화에 의로움과 승리의 삶을 선사하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우리 모두의 내적공간을 넓혀주시고

당신의 기쁨과 평화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시편145,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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